위 없는 법의 말씀

둘이 아닌 하나로 통한다

법등5 2025. 4. 6. 18:06

나와 너 따로 없는 불이사상 실천할 때 공생공영이 가능합니다. ‘불이’ 모른 채 분별심으로 인한 시비 갈등은 불행을 낳을 뿐 과거 명멸한 국가들도 시비 갈등 줄였으면 역사 달라졌을 것 불이 화두삼아 삶의 순간순간 살펴 중도 견지하는 불자 되길 바랍니다.

“유무, 깨끗함과 더러움, 기쁨과 슬픔도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중도의 길을 따라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허름한 대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요란한 소리가 이른 봄밤을 더욱 깊은 사유(思惟) 속으로 몰고 갑니다. 산골의 초막에 봄바람은 때에 따라 유난히 거세어서 느끼는 체감 역시도 무척 차갑습니다. 분별의 오르내림이 다소 혼란스러웠던 어제, 마음속으로 종일토록 달궈낸 구차스러운 열기는 밤을 새워 뒤척인 오늘 아침에야 부담스러운 입술 끝으로 또 작은 산 하나를 키워냈습니다.

지난밤 분별심으로 혼란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너와 내가 따로 없거늘 우리는 늘 분별심을 일으켜 시비하고 갈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불이사상(不二思想)’에 대해서 서술합니다.

이 세상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입니다. 즉,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반야심경’을 독송하면서 늘 마주하는 말인데, 일상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가 마음공부하는 수행 속에서 살다 보니 어제와 같이 새삼 모두가 ‘불이(不二)’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고, 불이사상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면서 온몸이 더욱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불가에 ‘중생과 부처는 둘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세속과 부처도 둘이 아니고 선악과 유무, 깨끗함과 더러움, 기쁨과 슬픔 등 상대적 개념에 대한 모든 대상 역시도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금은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세상 소식을 들으면서 생각하다 보니 역시 모든 것이 ‘불이’로 회통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단선적(單線的)인 존재 역시 자연과 사회로부터 조건적으로 생성되어 조건적으로 소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양극을 지양하는 중도(中道)의 길을 따라 마지막까지 삶을 다해야 할 것이기에, 더 이상의 이런저런 설명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사물의 근본에 깔려있는 것이 바로 불이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이 불이사상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임에 있어서 오늘은 불교적인 설명이 아니라 옛 신화와 역사 이야기를 통해 화두처럼 말씀드려 봅니다. 

키케로로부터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는 인류의 역사를 “하늘의 역사에서 인간의 역사로 바꿔놓았다”라고 했으며, “신이 아닌 인간의 행위적 사실을 밝히는 행위 즉, 사실을 증거 함에 의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다”고도했습니다. 이는 자신을 긍정하기에 앞서 인간의 사고와 행위적 사실들이 우선함을 지적하는 것으로, 인간의 역사 자체가 오늘날 인류의 발전사이기도 하지만 그 발전과정에 있어 또 다른 극단적 이데올로기로 사회적 이념의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또한 역사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외부에서 들어온 요인에 의해 내부가 무너진다’는 뜻으로 사용될 만큼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는 것을 말합니다. 더불어 적은 이익을 얻으려고 중요한 가치를 포기하면서도 마치 큰 것을 얻은 것처럼 착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그 이면을 통해 지금의 삶을 잘 살펴보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인간이 존재하는 이 지구상 어디에나 각종 신화와 그에 버금 하는 종교적 의미는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또한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우리들의 역사는 당대 신들에 비해 얼마만큼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으며, 신들의 세계보다 더욱 아름답게 자신을 향유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 시대의 우리 모두가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행동하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 가치관과 이념은 현대의 폴리스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다시 한번 음미해 보아야 할 기록들이라고 , 그리고 그 기록들을 살펴보면 그 안에서 분별심으로 인한 시비와 갈등이 낳은 불행한 결과를 확실히 엿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불이사상을 이해하여 분별심을 줄이고 시비와 갈등 대신, 조화와 화합의 길을 모색했다면 역사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시대에는 감성적 절대 공영의 이데올로기는 정말 생존할 수 없는 것일까?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국력이 분열됐을 때, 과연 우리 개인과 모두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을까?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너와 내가 따로 없다는 불이사상을 이해하고 생활에서 실천해갈 때 이러한 의문은 저절로 풀려서 지구촌 전체가 공생공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불이사상을 화두로 삼아 삶의 순간순간에 살펴보고 의식을 바로하여 중도를 견지할 수 있는 불자가 되도록 공부합시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