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시간!!
초기경전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이미 4 아승기·10만 대겁 전에 연등불께 수기를 받고
10 바라밀 공덕행을 닦아 2600여 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법화경에서는 이미구원겁전에 부처를 이루셨으나 중생제도를 위한
일대사 인연으로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시어 방편으로 열반에 드셨음을 설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누구를 막론하고 공평히 주어지는 삶의 명제가 있습니다.
늙고 병들고 죽음이며, 사랑하는 이들과 결국엔 헤어져야 하는 것,
자신이 지은모든 선·악업의 상속자는 다시 그 자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다섯 가지 명제는 인과법에 의해 변해가는 무상함,
즉 현상계의 진리 인연기법에 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브라흐마신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된다는 유신론적 세계관,
숙명적 원리에 의해 우리의 삶과 세계가 전개된다는 숙명론적인 세계관,
또 인간과 우주의 모든 것은 그저 물질의 결합일 뿐이라 주장했던 유물론이 그것입니다.
이 모든 사상들은 삶을 변화시키는 주체를 외부에서 찾고 있었기에 자신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없었습니다.
불교는 당시의 이러한 모든 사상적 모순을 타파하며 연기법을 주장한 것입니다.
불교의 연기법은 한마디로 인과법이지만 과거에 지은업을 피 할 수 없이
그대로 받아야만 하는 숙명론적 인과법이 아닙니다.
이 세계가 그물망처럼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그 인연을 만난 동시에 또다시 내가 어떻게 만드느냐,
변화시키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상의상관[相依相關]적 연기법입니다.
우리가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할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어차피 현상계의 모든 것은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는 각자의 몫입니다.
이것이 곧‘수행’입니다.
각자가 보내는 이 시간들은 나이를 막론하고, 또 상황의 좋고 나쁨을 떠나 이 생에서 우리가 보낼 수 있는
가장 젊은 날의 시간입니다. 이 자체만으로 ‘지금’은 생애 가장 소중한 선업을 닦을 기회가 주어졌을 때
지금 최선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인간들은 마치 스스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비추고 있는 밀접한 관계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관계뿐 아니라 세상과 인간과의 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한 인드라망은 불교의 연기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 세상 모든 법이 하나하나 별개의 구슬같이 아름다운 소질을 갖고 있으면서 그 개체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결코 그 하나가 다른 것들과 떨어져 전혀 다른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계의 모든 것이 구슬들처럼 서로서로 그 빛을 주고받으며 하나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