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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

베풀고 살아가면 세상이 따뜻해져요!

 

 

남의 허물 꾸짖기 전에 자기 잘못 먼저 살펴야, 이곳에서 법문을 읽은 보람이 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너무나 혼탁해서 하루라도 빨리 도덕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될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무너져가는 윤리·도덕을 바로 잡는 길은 오직 부처님 법의 실천과 포교뿐임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부처님이 2천5백 년 전 이 사바세계에 오셔서 제일 처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부처님이 일곱 걸음을 걸은신 후에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하신 말씀이‘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부처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중생류, 심지어 미물, 곤충, 초목, 총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불성(佛性) 자리를 가지고 있고, 그 불성 자리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첫 사좌 후로 “이렇게 거룩한 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너희는 왜 암흑세계에서 헤매고 있느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너희들은 내 가르침을 듣고 생각을 돌려서 깨달아라”라고 설하셨습니다. 이렇듯 49년간 설하신 부처님의 법문은 구절구절마다 윤리·도덕 아닌 말씀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3천 위와 8 만수행을 갖추신 분입니다. 위엄과 거동이 3천 가지, 실행에 옮긴 부처님의 행이 8 만수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 3천 위 8 만행을 듣고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배우려고 하지는 않고 그저 부처님 앞에 달라며 바라기만 할 뿐입니다. 화엄경전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얻는 복은 ‘거지’ 복이요. 주는 복은 ‘보살복’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중생들은 거지 복을 계속 지으려고만 하니 참 암담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처님, 나도 남과 같이 남에게 자비심을 베풀게 해 주세요”라고 빌어야 그 사람에게 복이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복을 달라고만 한다면 그 사람은 금생 내내 불교를 믿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부처님께서는 인연으로 종을 삼아 심신을 주창했으며, 믿음으로 실천에 옮기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심(信心)입니다. 신심은 믿을 ‘신’ 마음 ‘심’자 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너희들은 너희 마음을 믿어라”며 스스로의 마음에 가책되는 행을 하는 자는 당신의 제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자는 ‘무위무작(無爲無作)(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고 조작함이 없는 것)’으로 행을 삼아 생을 살아가니 죄지을 일이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니 무슨 애착을 가지고 아웅다웅 싸울 게 있겠느냐는 것이죠. 그리고 공자께서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종을 삼아서 신의를 주창했습니다. 이렇듯 세계 모든 성인을 통틀어서 살펴본다면 그 어느 성인도 윤리도덕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신 분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많은 분 가운데 일거수일투족 도덕에 대한 말씀을 하신 분은 오직 부처님 뿐입니다.

<초발심자경문>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서 보면 부처님께서는‘큰 자는 형으로 삼고, 작은 자는 아우를 삼으라’ ‘높은 소리로 침 뱉지 마라’ ‘옷깃을 헤치고 팔을 흔들고 돌아다니지 마라’ ‘병든 사람이 있거든 자비한 마음으로 간호를 잘해라’ ‘음식을 먹을 적에 쩝쩝 음식 씹는 소리, 후루룩 물 마시는 소리를 내지 마라’등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결론적으로‘자기 몸 가운데 잘못됨을 항상 꾸짖고 고쳐 착한 데로 옮기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8만 대 장경의 경·율·론에 윤리·도덕 아닌 것이 없습니다. <율장>에는 ‘자기의 잘못을 먼저 살피고 다른 사람의 흉을 보지 마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제일 근본입니다. 남의 허물을 말하는 사람의 허물은 열 가지도 넘기 마련입니다. 자기 허물없는 사람은 남의 허물을 입에 담지 않는 법이죠. 그래서 부처님의 율장은 불문에 귀의했을 때 오계(五戒)를 설해줍니다.
[오계]는 ‘산 목숨 죽이지 마라. 도둑질 하지 마라. 음행 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는 것으로 이것은 전체 윤리·도덕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팔관제계를 봐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또 스님들 비구 250계 비구니계 348계 모두도 ‘~해라, ~하지 마라’ 등으로 전체가 윤리성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논장, 또한 그렇습니다. <능엄경>에 보면 ‘한 국토에 생(生)하는 자, 한 나라에 태어나는 자, 전체가 동업(同業) 중생이다’ 했습니다. 동업중생이란 업을 같이 지었기 때문에, 똑같이 한 나라에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 태어난 사람들은 모두 동업중생인 것입니다. 그런데 동업으로 태어난 우리 중생이 서로 치고받고 얼굴을 붉혀서 되겠습니까 남북이 가로막힌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여러분 마음 가운데 담장이 높이 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제 각각 다른 마음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남북통일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능엄경에서는 ‘동업중생’화엄경에 “일체중생의 뜻을 거스르지 아니하고 일체중생의 숙원 하는 바를 따라 베풀어 주는 것이 가히 다함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위해 베푼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이 험악한 세상을 풍요롭고 따뜻한 세계가 될 것입니다. 또한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해 중생업이 다하고, 중생번뇌가 다하더라도 나의 원은 다 할 날이 없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일체중생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베풀어 주는 이 생각, 허공계 내지 중생업· 번뇌가 다 하더라도 내 원이 다 할 날이 없다는 광대무변한 보현보살의 행원이 있는데도 여러분들은 얼마나 실천을 하고 있습니까. 행하려고는 아니하고 욕심 보따리만 안고 있으시겠지요. 욕심을 버리고 텅 빈 마음으로 법문을 들어야 제대로 들릴 것입니다. 마음 그릇을 먼저 비워야 물건이 담깁니다. 또 다른 예로, 여러분은 모두 보살계를 받았을 텐데 경전 구절에 ‘부모·스승·삼보를 효순 하는 법’이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또 부처님이 설하신 <부모은중경>에 보면 ‘나를 낳아 키워 준 부모를 양 어깨에 모시고 수미산을 돌고 돌아 이 몸이 닳아 미진이 될지라도 부모 은덕은 만 분의 일도 보답하지 못하니라’ 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은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는 세상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너희들이 극락을 가고자 하다면 욕심부터 버려라. 성불을 하고자 하면 욕심을 버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절에 오면 법회 시작전이나 끝난 후에 엎드려서 빈다는 게 ‘달라’ 소리만 합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자신들이 금생에 부모님에게서 몸 받고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과 이웃에게 사소하고 조그마한 것이라도 베풀고 도와주었는지 자신들이 자각하고서는 부처님에게 도움청하는 것이 도리와 의무인 줄 알아야 한다. 부처님은 “목숨이 짧은 사람은 죽어가는 목숨을 살려주면 네 목숨이 길어질 것이다. 병든 자를 구완하면 네 병이 없어지고 건강해질 것이다. 복이 없는 자는 복덕 종자를 심어 베풀어라. 베풀면 온다. 결과의 열매를 스스로 거둔 것이다”라고 윤리·도덕의 실천을 말씀하셨을 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복도 주고, 명도 주고, 모든 것을 나눠 주리라’처럼 ‘오너라, 준다’는 요행의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2천만 불자는‘달라’ 소리 하는 사람만 많고 부처님 말씀을 듣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적은 것 같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 포교를 못한 스님들에게 있겠죠. 그러나 여러분들의 짧은 실천력에도 그 원인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법문을 실천하려 하지 않고 ‘그냥 하는 말이다’라며 지나치지는 않습니까? 설령 그렇다고 한들 악한 사람보다는 착한 사람이 더 많은 이 세상에 착한 사람이 조금 더 신경 써 악한 몇몇 사람을 교화시키면 이 사회는 밝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행하는 사람이 윤리도덕을 제대로 행하는 사람이고 참다운 불자가 되는 길입니다.

 


부처님 법에는 발로 참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드러낼 것을 확 드러내 ‘용서해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발로참회입니다. 그렇게 솔직하게 살 때 집안이 화평하게 됩니다.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세상이 확 트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아상을 버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반조하지 아니하면 경을 아무리 봐도 이익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진리를 실천으로 행하고 있습니까. 이 그릇된 세상을 바로 잡을 이는 부처님 밖에 없습니다. 또 부처님 법을 전하는 스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사회를 부처님 법으로 밝히지 아니하면 영영 이 세상을 밝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 법문을 듣는 여러분이 모두 하심 해서 포교사가 돼 보세요. 날마다 이 세상이 달라질 것입니다.
바른 소리만 하고, 부처님 법을 전달하며 사세요. 그것이 부처님 뜻을 이어 이 세상을 밝히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밝히는 선구자가 돼야 하고 인도자가 돼야 합니다. 이 세상에 나신 것은 그 나름대로 다 뜻이 있어 나셨을 테니까요.

나무 석가 모니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