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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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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형상이 없구나” 모든 사람은 지혜와 복덕을 갖추고 있다 스스로 덮고 있어 그 능력이 나오지 않을 뿐 구름이 걷히면 있는 마음이 드러난다 이것을 알고 믿는 것이 불교의 시작이다 마음은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라는 사람은 이 본래부터 있는 ‘마음’을 깨달은 사람이다. 이 본마음은 깨달음의 성질을 품고 있으며 그 이름이 곧 불성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법문이 결집되어 경전이 된 것이다. 이 經 중에 마음을 떠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중에 잘 드러난 것이 약인 욕요지 삼세 일체 불 응관 법계성 일체유심조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 마음을 알면 모든 성인을 한 곳에서 만난다. 모든 조사와 선지식들은 곧 이 마음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중 마조 스님은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卽佛]’라는 말로 다시 세존의 말을 살려 내..
현세의 불행은 지난 생의 빚 갚기!!현재의 삶은 나의 조상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전생의 나의 업이 오늘의 내가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 것입니다.전생에 맺어 놓은 응어리와 전생의 빚덩이 때문입니다.전생에 몸과 말과 생각으로 저절로 놓은 응어리를 풀고 빚을 갚느라고 힘든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그 응어리는 부지런히 기도하고 염불 하면 반드시 풀립니다. 그때는 모든 불행이나 우환이 저절로 사라집니다.부디 불행에 대한 한 생각을 잘 가져서 빚을 갚고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삶을 개척하기 바랍니다.불행은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해서 무시할 수도 없고 고통을 버릴 수도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그럼 어떻게 해야 지난 생의 빚을 모두 갚고 편안한 나날을 살 수 있을까요?전생에 맺은 원결이 크면 클수록 불행은 커지고, 불행이 크면 참회도 간절히 ..
존재 밀당 없는 네 가지 고결한 마음 사무량심 네 가지 마음이 고통 전환할 열쇠!  존재에 필요한 것들을 수행과 네 가지 고결한 마음을 닦으라는 두 가르침첫 번째 오대를 닮는 수행 이것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요소를 다섯 가지로 보고, 이 다섯 가지 요소에 대한 사유를 통해 그 특징을 닮는 수행입니다. 땅과 물과 불과 바람과 허공의 다섯 요소들은 공통으로 더러움과 깨끗함 등 어떤 것이 다가오든지 스스로 좋아서 잡아당기거나 싫어서 밀어내는 밀당을 하지 않습니다.밀당 대신 땅은 자신에게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 새로운 생명을 싹틔웁니다. 물은 스스로 흐르면서 생명을 자라게 합니다. 불은 생명을 따뜻하게 덥혀 보호하거나 풍성하게 만들고, 나아가 태워서 부드러운 재를 만드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특징들은 모두 원래..
文語非義![불법 실천의 상징] 사바세계는 ‘말(言)과 글의 유희’가 판치는 세계다. 교묘한 말과 글, 속이는 언어와 문장, 그리고 비방하는 논(論)과 술(述)이 출렁거리는 세계다. 중생들은 ‘말’로만 모든 것을 재단(裁斷)하고, ‘말’로써 모든 일을 해결하고자 한다. 말과 글을 뒷받침하는 ‘책임 있는 행동’은 하지 않은 채. 그래서 항상 다툼이 일어난다. ‘네가 옳으니, 네가 맞느니’하면서. 앞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로 시작된 다툼은 성냄. 탐욕. 어리석음에 의해 ‘크기’가 더욱 증대된다.불교는 말과 글을 신뢰하지 않는데, 원효스님에 따르면 글과 말은 진리를 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진리를 대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언어와 말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문어비의()’로는 진리를 왜곡할 수 있으나, ‘의어비문(義語非文..
相生하는 세상 만족할 줄 알아야! 달마대사가 전한 법은 말과 문자가 문득 끊긴 ‘불립문자 언어도단’(不立文字 言語道斷)의 진리입니다. 본래 법이라고 이름 붙여서 설한다는 그 자체가 잘못입니다. 입을 열면 이미 잘못된 것(開口則錯)이지요. 명(名)과 상(相)에 사로잡힌 것이지요. 그래서 누가 내게 “불교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언어도단에 심행처(心行處)가 멸(滅)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문을 하더라도 미리 준비하지 않고 그때 그때 대중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근기에 맞는 떠오르는 말을 할 뿐, 법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인데 새삼스레 말씀드릴 게 뭐가 있느냐 이 말이죠.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것이 법문 아닌 것이 없어요. 온 세상과 우주에 법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무슨 신통한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49년간 설법후 열반하시..
깨달음이 깊어지면 모든 존재는 공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空)이다.깨달은 자의 으뜸가는 자질은 무엇일까? 아마도 대자 유함일 것이다. 깨닫지 못한 범인(凡人)은 가둔 자가 없어도 스스로 욕망의 성에 갇혀 산다. 내 성을 더 높이, 내 창고를 더 가득 채울수록 내 삶이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습관적인 믿음은 창살 없는 감옥이 되어 자유의 숨통을 조이기 일쑤다.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갖가지 의무조항과 내일을 위한 시간표에 쫓기다 보면 자유와 풍요가 함께 동행하는 삶은 늘 요원하기만 하다. “아상의 고정과념… 하게 되면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조건들은 늘 저만치에서 모습을 달리 하며 유혹을 계속하고, 끝날 줄 모르는 운명의 장난에 지치다 보면 불현듯 거울 앞에 서서 진정한 나 자신의 주소를 확인하고 싶어 진다.구도 여정은 삶에 대한 ..
말과 행동을 가려서.... 자신이 지은 죄는아무리 가벼운 죄라 할지라도그대로 소멸되어버리는 법이 없습니다.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그대로 씨앗이 되어민들레 꽃이 되어 날아 갑니다.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들은나쁜 결과를 맺고 악의 꽃을 피웁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들은그대로 사라지는 법이 없이샘을 이루고, 내를 이루고강을 이루고, 생명의 바다로나아가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생각은 행동을 낳고행동은 습관을 낳고습관은 성격을 낳으며성격은 운명을 낳습니다.우리가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생각을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투덜대지 말고 해결책을 찾으세요어둡다고 불평하는 것보다작은 촛불을 하나라도 켜는 것이 더 낫다. 공자님 말씀 우리에겐 언제나 문제가 있습니다문제가 없는 인생이란 없고,문제가 없는 순간도 없..
거짓 나 를 버리고! 삼라만상[森羅萬象], 일체현상이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변해 간다.무상(無常)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하지 못하다는 뜻이지요.제법(諸法)은 연생연멸(緣生緣滅)이라. 인연 따라 생기고 인연 따라 사라집니다.이처럼 인연 따라 생기고 멸하기 때문에 나라는, 자기라는 고정불변하고 영원한 실체 또한 없습니다.이것을 무아(無我)라고 합니다. 이러한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이치를 알면 바로 안락을 얻게 됩니다.이 도리가 바로 삼법인(三法印)입니다. ‘본래부처’라는 것이지요.그런데 중생들의 마음속에는 불성 대신 중생 심이라는 아주 ‘잘난 놈’이 하나 들어앉아분별하고 사량하면서 주인노릇을 합니다. 이 잘난 놈 때문에 나를 괴롭히고 남에게 상처를 줍니다.그런데 요상한 것은 이 잘난 놈이 실체가 없습니다. 우리가 있다고 착..
마음이 거울 있는 그대로 비추는 마음이 거울  보통 선이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나요. 무엇이 선이냐. 우리가 듣기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쉽다고 하면 이것처럼 쉬운 것이 없고, 어렵다고 하면 이것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가장 어렵고 가장 쉬운 것이 하나입니다. 경전에 보면 서산 대사의 『선가귀감』에 보면 ‘선은 부처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부처님 마음이라고 하나요? 사람마다 누구든지 너도나도 갖추고 있는 원래 마음을 선이라고 하고, 그 마음으로 돌아가도록 가르친 것이 부처님 말씀입니다. 그러면 원래 선은 무엇입니까. 불자가 불문(佛門)에 들어와서 경전도 보고 책도 보고 남의 말도 들어보고 법문도 들어보고 나름대로 화두도 타서 앉아도 보고, 뭘 터득해 보겠다고 애를 ..
얼굴이 평온함은 대자유 봄인가 싶더니 만물이 무성해지는 여름입니다. 계절과 같이 우리 인생도 잠시도 머물지 않고 만물과 함께 흐른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화엄경의 한 구절로써 과거와 미래는 물론이고 현재에도 머무르지 않을 때 비로소 불교 수행의 궁극점인 진정한 자유를 성취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현실 생활은 집착이 기본 되고 삼독심을 줄기로 삼아서 영위되고 있습니다. 자신과 가족 혹은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서 명예와 지위, 재산, 건강 등의 문제로 해서 한 번은 기쁘다가 곧바로 슬픔으로 바뀌고, 한때는 영예롭다가 얼마 후 실망하고 위축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중생의 굴레이며 끊이지 않는 반복입니다. 이러한 놀음에 휩쓸려 공적함을 깨달을 때와는 점점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녹야원에 계실 때 한 외도가 와서 물었습니다...
인과 연 사람은 우연히 태어나는게 아니라고 합니다.인연 또한 우연히 찾아 오는게 아니랍니다.세상에 우연히 없다는 말은 인연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그런데 그 인연은 꼭 내 맘에 맞는 것만은 아닙니다.어떤때는 슬픔으로 어떤때는 기쁨으로 갖가지 형태로 다가옵니다.내가 맞이할 인연에 대해 지나친 환상은 갖지 않는 것이 좋고요.인연을 이끌어 가는 자세가 필요함니다.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모르고, 보통사람은 인연인줄 알고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소매 끝만 스쳐도 살려냅니다.그 인연을 통해 사랑을 하고 나눔을 통해 정이 드는거라고 합니다.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지켜보고 있기에 마음속 깊이 그 사랑을 품으면 기쁨이 두배로 차오르고 그리움으로 물들이는  향기조차 온통 즐거움으로 가득 채..
공덕과 복전 ! 하심(下心)하는 자에게는 만 가지 복(福) 불법을 닦는 수행자에게 있어 반드시필요한 것이 하심(下心)과 묵언(默言)수행이다.하심은 나의 마음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경한다는 뜻으로 겸허와 겸손을 의미, 묵언은 일상생활에 있어서필요 없는 말은 삼가고 꼭 필요한 말만 하라는 불교의 기초수행.특히 묵언과 하심은 처음 불문에 들어온 수행자들에게 실천해야 할 과제로 되어있으며불교를 신행하는 불자들에게도 꼭 필요한 수행이다.불교는 모든 생명체를 평등한 입장에서 바라본다. 반야경에서도 모든 중생들은 평등하다는생각을 일으켜야 한다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모든 생명체에는 각각의 불성을 함유하고 있다.불성이란 부처의 성품을 의미한다. 마음은 중생들 속에 있기 때문에 중생들은 모두가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가능성을 ..
항상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세요 오늘은 ‘인연’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인과’라고 하는 것은 우리 불교 교리의 큰 기둥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떠한 원인에 의해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인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을 들여야만 하겠습니다. 불교는 어느 신을 전제로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모든 신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 무신론적인 종교가 바로 불교입니다. 불교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 요, 마음을 찾아서 깨쳐가는 수행의 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는 한 마디로 말해서 ‘마음’입니다. 이 마음 하나만을 주장하는 종교가 불교입니다. 우리는 흔히 운명이다, 숙명이다 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면 운명과 숙명은 우리 에..
속세의 소리없는 소리! 俗世의 소리 없는 소리!덧없어지며 잎새 사이도 미혹과 사악함은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다마음이 굳혀지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낡은 것은 버려야,새것은 얻는 것처럼 말이네어리석음과 증오는 낙수를 따라 떴다 지고고정관념은 홀로 떠나는 겁, 몇 번의 환생은 겪었던가떨치지 못한 과거에 어지러워지는 마음세간[속세]에 들어서면 많은 혼란 겪게 되어집착과 분노는 혼란으로 인한 것이니중생의 무지몽매함이 불어온 덧없는 운명의 굴레벗어날 수 없는 나락을 세상의 먼지가 되리라흩어진 꿈속의 하룻밤 인연은아득한 세월을 뛰어넘어 황량한 세상의 끝에서믿음으로 다시 만나리...하늘이시여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은원을 따져 물어 신선을 정하는 이 누구인가연분은 하늘의 뜻이며, 재난을 복으로 바꾸고앞길을 순탄하게 살펴 주세요다 인연이리라.....
((어둡고 우둔함이 곧 밝고 총명함)) ((어둡고 우둔함이 곧 밝고 총명함))“어둡고 우둔함을 능히 알 수 있는 그것은 결코 어둡고 우둔하지 않습니다.그러니 다시 어느 곳에서 초월하고 깨달을 것을 찾겠습니까?지식인이 이 어둡고 우둔함에 의지하여 들어가야 만약 어둡고 우둔함에 집착하여 스스로나에게 돌아올 몫은 없다고 여긴다면 어둡고 우둔함이라는 마귀에게 붙잡히는 것입니다.대개 평소에 지견(知見)이 많으면 깨달음을 찾는 마음이 앞에서 가로막기 때문에 자기의올바른 지견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이러한 장애도 역시 밖에서 온 것은 아니며, 또한 별다른 일도 아닙니다.다만 능히 어둡고 우둔한 것을 알 수 있는 주인공일 뿐입니다.”어두우니 밝으니 우둔하니 총명하니 하는 것은 이미 사념(思念)에서의 일이다.어두움을 어두움으로 알고 우둔함을 우둔함으로..
자성불[일심]! 몸을 끌고 갈 때는 마음이 필요하니. 마음을 이용해야 하되 업을 이용하지 말고 자성불을 이용하라육체만 쓰고 마음을 쓰지 않으면 육체를 넘어설 수 없고, 또한 마음만 쓰고 자성불을 쓰지 않으면, 마음을 쓰면 쓸수록 마음은 더 강해져서 마음을 넘어설 수 없어서 자성불을 쓸 수가 없고 자등명에 이를 수가 없다. 자등명에 이르고 자성불을 쓰기 위해서는 마음을 쓰되 자성불이 행하도록 하여야 한다. 처음은 자성불로 행하는 것이 어려울지라도 행하고 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자성불로서 객이 아닌 주인공으로서 행하지 않겠는지요? 육체에 끌려가며 살기보다 마음으로 살고, 업의 마음으로 살기보다는 자성불로 사는 날이 되어야 함.마음이 건강하면 몸도 건강해지고 마음이 병들면 몸도 병이 생긴다. 부정적인 생각과 고민은 스트..
보리의 마음! 보리의 마음 빈 배와 같은 자유인 대상을 높게 볼 것도 없고 낮게 볼 것도 없다훌륭하다 해서 훌륭한 게 아니고, 높다 해서 높은 게 아니며, 낮다 해서 낮은 게 아니니 평등하게 보라대상을 내 몸과 같이 보라. 그것이 불심이다.부처님이 지금 내 앞에 계신다 하더라도 높이 보지도 말 것이며 개미 새끼 한 마리, 풀 한 포기라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벌레를 보고 징그럽다 하고, 오물을 보고 더럽다 하지만 그것은 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상대를 보고 어떻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형상, 그 마음이 둘이 아니니 주인공 자리에 계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높은 산 위에 올라서서 마음을 내려다 보라. 그러면 크다 작다의 구별에 앞서서 평평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그와 같이 생활에서도 그 위치를 활용해 보라. 모든..
일체만물은 한몸 남을 해칠수 없어요 너와 나 관계없다 생각할 때 ‘악’ 싹터 一切男子가 是我父요 一切女子가 是我母로다 故로 六道衆生이 皆是我父母로다. 모든 남자가 나의 아버지요 모든 여자가 나의 어머니로다 그러므로 육도의 중생이 모두 나의 어버 이로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영원히 변치 않을 진리의 말씀이지요. 일체중생이 내 아버지 어머니요, 형제 동생이 된다는 이 말씀은 ‘내 혈통’ ‘너의 혈통’이 아무 의미 없는 구분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金가니 李가니 朴가니 하는 것은 사람들이 살기에 편하도록 인위적으로 姓을 갈라놓은 결과일 뿐이에요. 근원적으로는 혈통의 구분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전세(前世)의 인연으로 인해 잠시 어머니 뱃속을 빌어 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어머니가 낳고 싶어 낳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만물이 ..
생활불교 菩薩行 이런 예가 있어요. 제가 예전에 시장에 다니다 보면 어린애를 업고 시들시들하게 마른 배추며 무 같은 야채를 요만큼씩 놓고 파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노인네들도 조금조금씩 놓고 파는데 물건이 많질 않으니까 빨리 시들까 봐 그게 참 애가 타요. 그러면서 섰다 앉았다 섰다 앉았다 한다고요. 시든 야채를 뒤집어 놨다가 바로 놨다가 하면서요, 그런 걸 보면 깎지도 않고 그냥 삽니다. 그러면 옆에서 그러죠 스님은 왜 시들시들한 것만 찾아다니며 사느냐고 야단입니다. 아 못 먹을 걸 왜 사느냐는 거죠, 그러나 그것이 그런 분을 위해서 야채를 사들이는 게 아니에요. 또 보시를 하려고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단, 내 마음이 아프니까 내 마음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을 좇아 다니면서 사는 거예요. 그분..
고정관념 사고방식 타파하라!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는 종교가 불교 밖에 없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가 불교가 국교였기 때문입니다.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불과 100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종교가 불교든 개신교든 천주교든 우리 민족의 모든 사람들의 몸속에는 불교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떻습니까.? 기독교인들은 마치 미친 사람들처럼 극성스럽게 다니면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쳐대고 다니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어느새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설치고 다니고 있습니다. 워낙 기복적인 종교이다 보니 귀가 얇고 근기가 하열下劣한 많은 사람들이 흡수된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자기들의 종교만..
남과 이웃을 위하여 날마다 기도하세요! 첫째,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이 진실한 것이어야 하고 내 영육으로 간절한 것이어야 하며 내 마음에서 분노, 미움, 원망, 짜증이 전혀 없어야 합니다. 둘째, 마음에 평화와 평정과 청정이 있어야 하고 이성과 감정으로는 불화가 없어지지 않기에 혼을 바쳐야 합니다. 셋째, 내가 구하고 원하는 것이 나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타인과 세상에 이익과 평화와 안락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기도는 이 세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구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내가 진실하면 화나는 일이 너무 많고, 내가 화를 안내면 거짓된 경우가 너무 많으며 내가 화도 안 나고 진실하면 대부분 나만을 위한 기도인 것이 대부분입니다. 대부분은 이 세가지 중에 하나가 안 맞아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지요. 그러니 이것을 잘 보고 기도하세..
찻잔 속에 미소 도반처럼 마주 앉아 있어도 연인 되어 옆에 다정히 앉아 있어도 되고 싫다하여 그냥 향이라도 좋다오 눈 꽃송이 화원을 병풍치고 뭇새 노래 삼아 마주한 동공 속에 마음 자리하나 무심의 언약이라 오늘 쪽빛 하늘을 담은 늘 싱그런 향을 채운 차나 함께할 이는 없는가요? 뾰뜨르르... 찻잔 소리 물결 되는 보고픔 정녕 우려낼 수 없는 것인가요? 보고 파서 독백을 하는 것인지 외로워서 푸념을 하고픈 것인지 찻잔 속에 미소만 가득하구나! 오시는 분마다 웃음 가득한 미소차 한 잔 드시고 가세요 _()_
묵은지 보살의 수행 보살의 수행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마음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작용하는 마음이에요. 작용 이전의 마음, 생각 이전, 분별 이전 본체의 마음을 본다고 한다면 그것이 변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변하지 않는 그 마음자리를 다이아몬드, 금강석과 같다고 표현하는 거예요. 지금 쓰고 있는 마음은 끊임없이 변해 가지만 그 마음의 본체는 불변 심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마음을 변화시키면서 바깥으로 상像을 취한다 이 말이에요. 눈으로 보고 상을 취하고, 귀로 듣고 상을 취하고, 향기로, 맛으로, 감촉으로, 그리고 생각으로 끊임없이 상을 취하고서 내가 만든 상을 붙잡고 오염되어 살고 있어요. 세상에는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지요. 부자이면서 부자인 척을 하면 부자상에 빠진 겁니다. 가난에는 두 가지가 있..
無所求行 매일 나를 바꾸는게 인과응보 무소구행(無所求行), 댓가를 구하는 바가 없이 선행을 하면서 세상을 살라 입니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대가를 받을 것이라 기대 하지 말고 행하라는 말입니다. 대가를 바라는 마음, 탐욕과 집착은 계속 업을 쌓기 때문에 아무리 공덕을 베풀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공덕 복덕을 베풀더라도 영원히 불생불멸한 근본 그 자리에 앉아서 공함을 알고 베풀어야지, 그 이치를 모르고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만유는 공하여 항상함이 없으니 집착함이 없어야 삼독에서 벗어납니다. 그러고 나면 칭법행(稱法行)이라.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본래의 마음, 성품의 근본자리, 선악시비와 공덕 복덕을 다 떠나 불생불멸, 부증불감, 선악도 끊어지고, 시비도 끊어진 영원한 진여자성의 자리에 앉아서 살라는..
돌에서 피가 배어나올 만큼의 믿음이라면…. “먼저 우리는 우리 속에 부처를 이룰 수 있는 힘, 불성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정원사가 꽃나무를 가꾸듯이 불성을 살려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불성을 잊고 있다. 우리는 여러해살이 꽃나무가 계절 따라 피었다 져도 이듬해 다시 꽃을 피울 힘을 그 나무 안에 지니고 있는 줄 알지만 자신들에게도 그와 같은 불성이 있다는 것은 잊고 있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일단 몸을 바꾸게 되면 전생의 기억을 까마득히 잊고 말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가 다겁생을 거쳐 지금 진화의 위대한 순간에 와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면 꽃나무에 꽃 피우는 힘이 있음을 믿듯이 우리 속에 부처될 힘이 있음을 믿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진화의 원동력, 그 불성을 믿어야 한다.” 일체 중생에게 빠짐없이 다 불성이 깃들어 있다고 부..
허공에걸려 넘어지는 사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육신의 고통이나 정신적인 번민도 세월이 흐르다 보면 가라앉게 되고, 사무치던 그리움도 시들하게 되어 그럭저럭 견딜 만 해진다는 뜻으로 하는 한편으로는 내성이 생긴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체념하게 되거나 감정이 바래진 것이다. ‘좀 더 냉각기를 두고 생각해 보자’, ‘ 내일 다시 생각하자’는 것은 바로 이 시간이라는 약방문이 제법 유효한 줄을 알기 때문에 내리는 처방이다. 요는 시간이 아니라 한 생각이다. 그러나 실은 ‘시간이 약’은 아니다. 그 말의 뜻은 다름 아닌 ‘시간을 벌고 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라는, 우리들 의식작용의 속성을 꼬집은 것이다. 요는 시간이 아니라 한 생각이다. 가령 누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해 왔을 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할 수도 있겠지만 한..
의심이 없으면 법계도 없구서리![자리이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산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살아가는데 무엇이 제일 중요합니까? 잘 살게 해 달라고요? 돈 많이 벌게 해 달라고요? 행복, 건강? 그것보다 먼저인 건 없습니까?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하려고 사는 걸까요? 자신을 버리고 살면 된다고요? 그런데 자기를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도 생각할 수 없거든요. 문제는 나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은 이기심을 버리라는 말이지 나를 어떻게 버립니까. 그리고 나를 위하는 마음이 없으면 남을 위할 생각도 못해요 . 그래서 부처님 법문에 ‘자리이타’라는 말이 있죠. “나를 위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남을 위할 줄 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지 나를 위하는 것도 아니고, 남을 위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나를 버리겠다는 겁니까. 그러니까 “나를 버린다”라..
下心 잘난 척하는 마음 내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심(下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수행의 궁극으로 삼고 있는 무심(無心)조차도 사실 하심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심이 안 되는데 무심이 될 수가 있을까요? 첫째도 하심, 둘째도 하심, 셋째도 하심 하심이란 스스로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행자시절 최고의 덕목은 하심이었습니다. 첫째도 하심, 둘째도 하심, 셋째도 하심이었지요. 그래서 행자 당시에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허리를 꺾고 절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당연히 하심을 연습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마음을 낮추는 데서 참다운 공부는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한다면 누가 감히 나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당신들은 스스로를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나 자신을 ..
자비로운 불자님들 이시여! 우선 자신이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해 반성하는 자신이 잘못 살아온 가치관으로 남에게 아픔을 전가한다면, 넘어진 얘기, 부끄러운 얘기를 하자는 것이다. 실수하고, 또 욕심부린 얘기, 그래서 감추고 싶은 얘기를 고백하여 가자는 것이다. 고백에도 전제 조건이 있음. 먼저 자기 자리를 지켜보며, 왜 넘어졌고, 왜 실수했는지, 그 연유가 무엇인지, 그 원인의 중심이 `나, 는 아닌지, 살펴보고, 내려놓고, 뉘우치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자기 고백이며 참회하는 것이고 또한 자기 치유의 길이기도 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시간이 모든 것을 치유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잘못하여 저지른 업은 꼭 받고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의 가슴에 뽑히지 않을 철못을 박은 피 멍도 그 ..
생각하는 그림자(망상)에 끌려 다니지 마세요 사유하는 그림자(망상)에 끌려 다니지 마세요! 나 몸은 나 스스로가 아닌 우주의 에너지가 만든 것 그렇기에 내 자신을 자학한다면 대단히 오만한 사람이다 석가세존께서,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구나. 나의 생명이 소중하면 남의 생명도 소중하구나’라는 말씀은 ‘내 생명과 남의 생명이 둘이 아닌 주인공이다. 즉, 전체가 주인공’이라는 말씀입니다. 제가 오른손 들었습니다. 그리고 왼손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때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오른손을 들거나 왼손을 들거나 똑같은 에너지입니다. 그럼 이 에너지는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밤새 나무가 만들어 준 산소를 우리가 코를 통해 들이마십니다. 즉, 우리는 에너지를 빌려 쓰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떠오르는 태양열 에너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