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426)
“마음. 형상이 없구나” 모든 사람은 지혜와 복덕을 갖추고 있다 스스로 덮고 있어 그 능력이 나오지 않을 뿐 구름이 걷히면 있는 마음이 드러난다 이것을 알고 믿는 것이 불교의 시작이다 마음은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라는 사람은 이 본래부터 있는 ‘마음’을 깨달은 사람이다. 이 본마음은 깨달음의 성질을 품고 있으며 그 이름이 곧 불성이다. 세존께서 말씀하신 법문이 결집되어 경전이 된 것이다. 이 經 중에 마음을 떠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중에 잘 드러난 것이 약인 욕요지 삼세 일체 불 응관 법계성 일체유심조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 마음을 알면 모든 성인을 한 곳에서 만난다. 모든 조사와 선지식들은 곧 이 마음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중 마조 스님은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卽佛]’라는 말로 다시 세존의 말을 살려 내..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현재 사람의 몸을 받아 살고 있는 나는 누구입니까?우리는 아득한 옛적부터 수많은 몸을 받으며 윤회를 거듭해 왔습니다.수백 생 벌레로 살았다가 수천 번 짐승이 되었다가 수만 번 남자로 혹은 여자로부모로 자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그 무수한 생애를 통하여 갖가지 버릇, 갖가지 용심(用心)을 키우며 살았습니다.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입니까?수많은 생애동안 익혔던 버릇과 용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나"입니다.따라서 지금의 "나"에게는 벌레 때의 행동도 터져 나오고, 짐승 시절의 버릇도 터져 나옵니다.인간으로 살면서 얽히고 설키고 가슴에 숯이 박히고, 서로 해치고 못살게 굴었던 행동과 마음 씀씀이가수시로 바깥으로 표출됩니다.겉모습만 지금의 모습과 같은 사람의 가죽을 덮어..
찰라의 평상심 !!! 망상은 번뇌의 그림자일 뿐, 마음은 얼마나 맑고 고요한 것일까, 우리도 마음이란 게 있지만 깨달으신 분의 때 묻지 않은 마음의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일까?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지 않으십니까?봄이 오면 꽃이 피고 새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귑니다. 망울 튼 버들가지는 싱그럽고 시냇물은 졸졸졸 소리를 내면서 흘러갑니다. 농부는 밭을 갈고 아낙네들은 봄나물을 뜯고 있습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이런 광경을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쉬워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이 있으면 물을 보고 꽃이 있으면 꽃을 본다는 것. 이게 바로 空寂靈知입니다. 이 자리가 本心의 자리인 참 마음인 것입니다.(있는 그대로 보아야)산에 올라가서 연 초록색 나뭇잎들을 바라보고, 새들이 지저귀는 노랫소리를 듣고, 흘..
현세의 불행은 지난 생의 빚 갚기!!현재의 삶은 나의 조상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전생의 나의 업이 오늘의 내가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 것입니다.전생에 맺어 놓은 응어리와 전생의 빚덩이 때문입니다.전생에 몸과 말과 생각으로 저절로 놓은 응어리를 풀고 빚을 갚느라고 힘든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그 응어리는 부지런히 기도하고 염불 하면 반드시 풀립니다. 그때는 모든 불행이나 우환이 저절로 사라집니다.부디 불행에 대한 한 생각을 잘 가져서 빚을 갚고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삶을 개척하기 바랍니다.불행은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해서 무시할 수도 없고 고통을 버릴 수도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그럼 어떻게 해야 지난 생의 빚을 모두 갚고 편안한 나날을 살 수 있을까요?전생에 맺은 원결이 크면 클수록 불행은 커지고, 불행이 크면 참회도 간절히 ..
한 호흡이 생사의 갈림 길! 한 호흡지간에 달린 생과 사 우리의 생과 사는 한 호흡지간에 달려 있어요.숨 한 번 들이마셨다가 못 내쉬면 죽는 겁니다. 이승에 산다고 하는 것은 저승에 사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어요. 딴 데 가는 것이 아니에요. 얼마 전 제주도의 마지막 해녀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참으로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는 소리를 들었어요. 여든이 넘은 해녀 할머니의 말씀이 법문처럼 들렸습니다.바다는 딴 세상입니다. 이승과 다른 것입니다.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생사를 담보할 수 없어요. 그런데 그러한 저승에서 돈을 벌어서 이승의 삶을 산다고 말했습니다. 저 바다가 저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다를 부정하고 외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다를 가는 것입니다. 바다가 죽음과 고통을 주더라도 그..
山中 孤獨! 찾아 오는이 없기에 기다리는 이 없는 법이 머무고외롭고 험한 산길을 오르면 어김없이 오롯이 앉은 암자를 만난다산새 소리만 찾아드는 산중에서 다툼과 분별이 끊긴 자리....깨달음에 공덕을 구하겠다는 다짐이다 햇살 드는 법당 마루에 앉아 멀리 구름 너머를 바라보며 온 산줄기가달려온다 해도 그저 묵언으로 정진에 하루를 보낸다 산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영봉들 높디높은 영봉들을 호령한다 겨울산 봉우리마다 하얀 눈꽃을 뽐내겠지만 산 아래 사바는 온통 고통으로 가득한 세간 일 뿐이다   봄볕을 기다리는 마음이야 눈 쌓인 산줄기와 얼어붙은 논두렁이 어찌다를 수 있으랴!그러나 아직은 산등의 추위는 기다리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릴 뿐이다  푸른 대나무 숲에 호위를 받으며 솟구쳐 오르는 전나무는 한그루속세를 벗..
문은 이분법적 규정에서 나와야 집이나 방으로 들어서려면 문을 통과해야 한다.사찰 법당에 들어서려면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등이 쭉 들어서 있다.부처님의 세계, 진리의 세계, 열반과 행복의 세계로 들어서게 하는 문이 법문(法門)이다.그런데 정말 정해진 어떤 문을 통과해야만 그 세계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일까?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선(禪)에서는 진리로 통하는 입구에는 문이 없다고 한다.법문(法門)은 무문(無門)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그 이유를 물은즉 무문 혜개(無門慧開) 선사는 “문을 통해 들고 나는 것은 잡스러운 것들이요,인연을 통해 얻은 것은 마침내 부서지고 말 것이다.”라는 옛사람의 말을 든다.이미 갖추어져 있는데 뭐 문을 통해 찾고 들어설 일이 이겠느냐는 말이다.문이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일 뿐인데 그것으로 통해 ..
청정한 참마음 “모든 부처님과 일체 중생은 한 마음일 뿐 거기에는 어떤 법도 없다. 이 참마음은 본래 생기거나 없어진 적이 없다. 정해진 틀이나 모양도 없으며 있고 없음에 속하지 않고 예전과 지금을 따질 수도 없다. 또한 길거나 짧지도 않고 크거나 작지도 않다. 그것은 모든 한계와 분량, 개념과 언어, 자취와 상대성을 뛰어넘어 바로 그 상태 그대로일 뿐이다. 그러므로 분별심을 내고자 하면 어긋나 버린다. 이것은 마치 허공과 같다. 끝이 없으며 재볼 수도 없다. 이 한 마음 그대로가 부처일 뿐이니, 부처와 중생이 새삼스레 다를 바가 없다.”  “본래 부처인 참마음 자리는 실로 그 어떤 것도 없다. 탁 트이고 고요하여 밝고 오묘하며 안락할 따름이다. 스스로 깊이 깨달으면 당장 그 자리이므로 원만 구족[圓滿具足]하여 모자람..
일일시호일 일일시호일 저는 이렇게 법상(法床)에 올라오지 않고 그냥 소참법문(小參法門)으로 하면은 횡설수설(橫說竪說) 말이 제법 잘 나옵니다. 이렇게 격식 바르게 올라와 앉아 놓으면 위축이 되어서 좀 거북합니다. 그러나 할 수 없이 무슨 말씀을 해야 하겠지요. 상당(上堂)이라 하는 이것은 그렁저렁 상대(相對) 유한적(有限的)인 말을 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오직 상(相)을 떠나고 개념(槪念)을 떠난 그런 절대적(絶對的)인 말을 하는 자리입니다.따라서 여느 도인(道人)들은 지지리 애써서 상당(上堂)에 모셔 놓으면 눈만 끔벅끔벅하시다 이제 그냥 내려와서 가버립니다. 그러기에 원주(院主) 스님이 뒤따라 가면서 우리가 애쓰고 모셨는데 왜 한마디도 않고서 가시느냐고 하니까 "경(經)을 잘 설(設)하는 데는 강사(..
스스로 다가온다 깨달음은 자기를 찾는 공부. 자기를 돌아보는 공부. 마음자리 주인공을 찾는 공부. 이 공부는 마땅히 평생을 두고 해야 할 공부이다. 조금 해보고 잘 안된다고 해서 나약해지거나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순간이 더욱 중요하다. 앞서 도를 깨달은 무수히 많은 분들을 생각하며 용맹심을 일으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깨달음이 나에게로 다가온다. 많은 옛 스님들은 후학들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보지 못하였는가? 역대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이 옛날에는 우리와 같은 범부였음을! 저도 장부요 그대도 장부. 다만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 할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니라." 이 말씀을 다시 한번 풀어보도록 하자. "이미 지난 세상에 도를 이룬 분들을 살펴보라. 모두가 그대와 다를..
본래 무일물 부처님 법이라는 것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불진언 언불진의(書不盡言 言不盡意)’라. ‘글로써 말을 다 할 수 없고, 말로써 뜻을 다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부처님 법이 그렇습니다. 어찌 글로, 말로 다하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 법은 ‘불가시 불가설 비사량분별지소능해 (不可示 不可說 非思量分別之所能解)’라 했다. 보여줄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니 사량분별로 헤아려 풀 바가 아니라는 것 에는 그 깊고 깊은 불법의 이치가 다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을 보면 부처님 법이 보인다. 부처님 법이 들립니다. 방편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이치를 알게 해 준다. 대한민국이라는 말에 산하가 다 포함돼 있듯이 에는 일체 경의 진리가 다 들어있다. 법화경> 그러니 경 제목만 계속 염송해..
無盡 功德 생산처가 나한테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빈집과거에 집착하면 그게 업이 되고 그냥 뛰어넘으면 도입니다 우리나라를 한번 둘러보십시오. 우리가 지금 다른 나라처럼 기술이 요요합니까? 마음이 깨어서 삽니까? 정신세계를 추구하며 삽니까? 물질을 좇으면서 자기 분수 에 맞춰서 살 줄 모르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정신세계는 언제 돌아다보겠습니까. 미래의 세계에서 본다면 지금 현실 세계가 과거가 되고, 과거의 세계에서 본다면 정신세계가 미래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미래의 세계와 정신세계가 둘이 아니요, 또는 과거와 현실이 둘이 아닌 까닭에 항상 마음으로 다스려 가면서 모든 거를 놓는다면, 크면 큰 대로 다스리고 작으면 작은 대로 다스려서 놓는다면 화목이 오지 않을 수 없고 조화를 이루어서 끝간 데 없이 평..
감사하다는 생각과 말 감사하다는 말과 생각이 운명을 바꾼다고통을 없애고 행복을 창조하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언제 어느 때나 자신의 진실생명이 반야바라밀인 사실을 관하고 어떤 경우라도 어두운 것을 생각하거나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쇠퇴하고 대립하고 투쟁하고 파괴하는 것을 생각하거나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언제나 화합하고 성장하고 향상하고 전진하고 평화하고, 원만한 것, 건설적인 것을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노쇠나 쇠약이나 대립이나 투쟁을 생각하고 말한다면 생각하는 힘, 말하는 힘에 의해서 쇠퇴와 파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각과 말은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생각하고 말한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바뀌었을 때 환경이 바뀌는 것처럼 어두웠을 때, 불행할 ..
존재 밀당 없는 네 가지 고결한 마음 사무량심 네 가지 마음이 고통 전환할 열쇠!  존재에 필요한 것들을 수행과 네 가지 고결한 마음을 닦으라는 두 가르침첫 번째 오대를 닮는 수행 이것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요소를 다섯 가지로 보고, 이 다섯 가지 요소에 대한 사유를 통해 그 특징을 닮는 수행입니다. 땅과 물과 불과 바람과 허공의 다섯 요소들은 공통으로 더러움과 깨끗함 등 어떤 것이 다가오든지 스스로 좋아서 잡아당기거나 싫어서 밀어내는 밀당을 하지 않습니다.밀당 대신 땅은 자신에게 오는 모든 것을 받아들여 새로운 생명을 싹틔웁니다. 물은 스스로 흐르면서 생명을 자라게 합니다. 불은 생명을 따뜻하게 덥혀 보호하거나 풍성하게 만들고, 나아가 태워서 부드러운 재를 만드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특징들은 모두 원래..
나는 어떤 길을 찾고 있는가! 돌들아!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마음수행법 화두참선법이 올곧게 전하는 나라가 없다는 게 누구나 인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불보살님들은 마음의 행복을 찾아서 가는 곳곳마다 내 삶이 곧 행복인데, 우리 중생들은 지금 과연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우들 아버지 어머니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오로지 아들딸들을 위해서, 내 아들 딸들을 위하면 다 행복할 걸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재산만 많이 물려주면 행복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의 복을 짓고 있는가, 행복지수가 과연 얼마인가를 물어봐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불법이 살아있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만일 법보만 있고 그것을 실참해서 참구 하는 수행자가 없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우리 부모님이..
일물불장래시여하! ‘한 물건도 가진 것이 없을 때는 어찌합니까.’라고 해석한후 여기서 말하는 ‘한 물건(一物)’이 사물의 근원,본체, 핵심으로 변하지 않는 진여, 실상, 자성,불성, 법성 등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논조를 펴는 이도 있는데,엄양이 큰스님을 상대로 정색을 하고법거량을 한 것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그저 젊은 사람이 어른을 찾아오면서‘한 물건도 없이(선물도 없이) 빈손으로 와서 송구합니다’ 라는의미의 인사말을 한 것은 아닐는지그런데 조주 선사가 평범한 인사를시쳇말로 법거량으로 업그레이드 시켜서‘방하착’ 즉 내려놓으라고 한 것이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 불교는 합리주의와 객관주의 매우 중시 미혹으로부터 깨달음으로 이끄는 종교 고통을 벗어나 행복을 성취하려는 종교 모든 중생을 부처로 만들고자 하는 종교 모든 종교는 인간에게 고통과 불행이 없다면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계의 모든 종교가 존재하는 것은 그 방법이 옳건 그르건 간에 인간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할 수 있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종교의 역사는 인간이 역사를 시작하면서부터 함께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시시대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느끼는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 능력 밖의 불가사의한 힘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것에 의지하고 제사 지냄으로써 재앙을 이기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원시종교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보다 진보된 체계를 갖춘 고등종교하 해도 따지고..
芒種 침묵하고 귀를 기울이라!!!자신이 쏟아 놓는 말을 누군가가 가까이서 듣고 있는 줄을 안다면 그렇게 도나 캐나 마구 쏟아 놓을 수 있을까?그러나 명심하라, 누군가 반드시 듣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무심코 하는 말이건 뜻을 담은 말이건 간에 듣는 귀가 바로 곁에 있다.그것을 신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고 영혼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은 곧 그사람의 속마음을 열어 보임이다.그의 말을 통해 겹겹으로 닫힌,그의 내면 세계를 훤히 알 수가 있다. 입 다물고 귀 기울이는 습관을 익히라, 말이 많으면 진리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말이 끊어진 데서 새로운 삶이 열린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말이 많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가 경탄할만한 것을 말한다 할지라도 그의 내부는 텅 비어 있다. 무엇 보다도 침묵..
文語非義![불법 실천의 상징] 사바세계는 ‘말(言)과 글의 유희’가 판치는 세계다. 교묘한 말과 글, 속이는 언어와 문장, 그리고 비방하는 논(論)과 술(述)이 출렁거리는 세계다. 중생들은 ‘말’로만 모든 것을 재단(裁斷)하고, ‘말’로써 모든 일을 해결하고자 한다. 말과 글을 뒷받침하는 ‘책임 있는 행동’은 하지 않은 채. 그래서 항상 다툼이 일어난다. ‘네가 옳으니, 네가 맞느니’하면서. 앞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로 시작된 다툼은 성냄. 탐욕. 어리석음에 의해 ‘크기’가 더욱 증대된다.불교는 말과 글을 신뢰하지 않는데, 원효스님에 따르면 글과 말은 진리를 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진리를 대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언어와 말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문어비의()’로는 진리를 왜곡할 수 있으나, ‘의어비문(義語非文..
무시로 사유하고 보는대로 장엄한 대자연을 사유한다 인과응보는 피해갈 수 없는 불변의 진리!업장이 뜨는 찰나에 알아차리고, 인과응보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수행도 바르게 하고, 기도도 바르게 해야 좋은 결과로 이어집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수행법 중에서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올바르게 수행해야 진정한 기도이고 수행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수행으로 나의 몸과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두운 업장들을 지우고, 나를 맑고 밝게 정화시키면 나의 마음들이 잘 보입니다. 나라는 속에서 나오는 별 볼일 없는 마음들이 잘 보이고 알아차려지면 내 속에 존재하던 시커먼 업장과 번뇌망상은 사라지고 지혜롭고 자비로운 선업을 짓게 됩니다. 이렇게 알아차림 하면서 정법으로 올곧게 수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
불설연명지장보살경 佛說延命地藏菩薩俓[불설연명지장보살경]여시아문일시불재구라다산   여대비구중 만이천인구 보살삼만 육천인구 일체재천 및용야차인비인등 금륜은륜제륜왕등 종십 방래 이시세존 설시대승 무의행이 시유제석 명무구생 백불언세 존 아욕호세 약불멸 후 법미중생 당가발재 불고제석 유일보리명왈 연명지장보살 매일성조 입어제정 유화육도 발고여락 약 재삼조 어차보살 견차이명 생어인천 혹생정토 재삼선도 문기명자 득현과보 후생불토 하황억념 심안득념 결정성취 역시보살 득십종복 일자여인 태산이자 신근구족 삼자중병설제 사자수명장원 오자총명지혜 육 자재보영일 칠자중인애경 팔자곡미성숙 구자신명가호 십자증대보리 역제팔대희 일제풍우수시 이자타국 불기삼자자계불판 사자일월불식 오자성숙불섭 육자귀신불래 칠자기갈불발 팔자인민무병 불고제석 어말래세 약유중생 ..
佛說延命地藏菩薩俓 불설연명지장보살경如是我聞 一時佛 在邱羅多山 與大比丘衆 萬二千人俱 菩薩三萬여시아문일시불재구라다산   여대비구중 만이천인구 보살삼만六千人俱 一切諸天 及龍夜叉人非人等 金輪銀輪諸輪王等 從十육천인구 일체재천 및용야차인비인등 금륜은륜제륜왕등 종십方來 爾是世尊 說是大乘 蕪依行已 時有帝釋 名蕪垢生 白佛言世방래 이시세존 설시대승 무의행이 시유제석 명무구생 백불언세尊 我欲護世 若佛滅 候 法末衆生 黨何拔濟 佛告啼釋 有一菩薩名존 아욕호세 약불멸 후 법미중생 당가발재 불고제석 유일보리명曰 延命地藏菩薩 每日晨朝 入於諸定 遊化六道 拔苦與樂 若 在三왈 연명지장보살 매일성조 입어제정 유화육도 발고여락 약 재삼逃 於此菩薩 見體聞名 生於人天 或生淨土 在三善道 聞其名者 得조 어차보살 견차이명 생어인천 혹생정토 재삼선도 문기명자 득現果報 後..
相生하는 세상 만족할 줄 알아야! 달마대사가 전한 법은 말과 문자가 문득 끊긴 ‘불립문자 언어도단’(不立文字 言語道斷)의 진리입니다. 본래 법이라고 이름 붙여서 설한다는 그 자체가 잘못입니다. 입을 열면 이미 잘못된 것(開口則錯)이지요. 명(名)과 상(相)에 사로잡힌 것이지요. 그래서 누가 내게 “불교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언어도단에 심행처(心行處)가 멸(滅)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문을 하더라도 미리 준비하지 않고 그때 그때 대중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근기에 맞는 떠오르는 말을 할 뿐, 법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인데 새삼스레 말씀드릴 게 뭐가 있느냐 이 말이죠. 살아가면서 느끼는 모든 것이 법문 아닌 것이 없어요. 온 세상과 우주에 법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무슨 신통한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49년간 설법후 열반하시..
불정심 관세음보살 모다라니경 △ 불정심 관세음보살 모다라니경⇒ 관세음보살께서말세의 중생을 위하여 설하신 진언☆ 아침에 깨었을 때 병이 몸에 침입하여 정신이 산란하면 맑은 마음을 하고지극 정성으로 이 다라니 신주를 외운다면⇒ 관음보살과 모든 금강밀적 등 신장들이밤낮으로 옹호하고 보호하므로 소원하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진다 하셨다. ☆ 불정심 관세음보살 모다라니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 아리야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마하사다 바야 마하가로니가야다냐타 아바다 아바다 바리바제 인혜혜다냐타 살바다라니 만다라야 인혜혜바리마수다못다야 옴 살바작수가야 다라니인지리야 다냐타 바로기제 새바라야살바돗따 오하야미 사바하
깨달음이 깊어지면 모든 존재는 공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空)이다.깨달은 자의 으뜸가는 자질은 무엇일까? 아마도 대자 유함일 것이다. 깨닫지 못한 범인(凡人)은 가둔 자가 없어도 스스로 욕망의 성에 갇혀 산다. 내 성을 더 높이, 내 창고를 더 가득 채울수록 내 삶이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습관적인 믿음은 창살 없는 감옥이 되어 자유의 숨통을 조이기 일쑤다.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한 갖가지 의무조항과 내일을 위한 시간표에 쫓기다 보면 자유와 풍요가 함께 동행하는 삶은 늘 요원하기만 하다. “아상의 고정과념… 하게 되면 행복하고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조건들은 늘 저만치에서 모습을 달리 하며 유혹을 계속하고, 끝날 줄 모르는 운명의 장난에 지치다 보면 불현듯 거울 앞에 서서 진정한 나 자신의 주소를 확인하고 싶어 진다.구도 여정은 삶에 대한 ..
일체사 일체처 일체심, [살필 수 있는 마음] 좌법을 익혀놓으면 참 힘들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에서 습이 되어 버리거든요. 생활에서도 해야 하는데 잘 안됩니다. 막연한 수행관이 자기한테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고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부처님 당시 수행법을 모아놓은 을 보면 행주좌와가 다 공부거리로 되어 있습니다. 일체사 일체처 일체심, 일체 어느 곳에 어느 때 있든지 모두 수행 꺼리라 했습니다. 내가 번뇌가 일어나면 일어난 줄 안다, 또 번뇌가 계속되면 계속된 줄 안다, 번뇌가 멈췄으면 멈췄음을 안다, 번뇌가 멈춰서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다시 일어나지 않는 줄을 안다,순서가 번뇌가 생겼고 있다가 없어지고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번뇌가 일어나서 선정경지에 들었다. 번뇌가 있는 것이 점점 없어져서 없는 것이 목적으로 ..
心眼 心眼으로 보세요!껍데기로 들으면 쭉정이만 남을 뿐, 오로지 자신의 혼으로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흙탕물 같은 소리를 내가 참마음으로 듣는 순간에 청정수로 변하는 이치 세상의 소리를 잘 듣는 사람은 지혜를 얻지만, 필요한 소리만 잘 듣는 사람은 편협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탐욕과 음욕에 시달리는 이유는 육체의 귀로 듣기 때문, 참마음으로 들어야 하며 귀를 막고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그 모든 소리는 참생명의 깨달음의 소리로 들립니다. 이것이 참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깨달음의 가장 유익한 방법은 들어서 깨닫는 것, 나를 비방하는 소리도 귀로 들으면 화나고 괴롭지만 나의 참마음 자리에서 들으면 나를 완전히 해탈시키는 위대한 반야선에 오르는 것이지요. 항상 마음을 열고 들으세요. 네모..
말과 행동을 가려서.... 자신이 지은 죄는아무리 가벼운 죄라 할지라도그대로 소멸되어버리는 법이 없습니다.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그대로 씨앗이 되어민들레 꽃이 되어 날아 갑니다.나쁜 생각과 나쁜 행동들은나쁜 결과를 맺고 악의 꽃을 피웁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생각과 좋은 행동들은그대로 사라지는 법이 없이샘을 이루고, 내를 이루고강을 이루고, 생명의 바다로나아가는 것입니다.그렇습니다.생각은 행동을 낳고행동은 습관을 낳고습관은 성격을 낳으며성격은 운명을 낳습니다.우리가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무엇보다 먼저 우리의 생각을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투덜대지 말고 해결책을 찾으세요어둡다고 불평하는 것보다작은 촛불을 하나라도 켜는 것이 더 낫다. 공자님 말씀 우리에겐 언제나 문제가 있습니다문제가 없는 인생이란 없고,문제가 없는 순간도 없..
나비와 꽃의 대화 마음 공양     보시, 보시하면 우선 마음이 그렇습니다.보시하는 마음을 갖고자 감히 몇글 올립니다.주제넘다 뭐라마시고 보아 주신다면 힘 입어 올립니다.보시 아주작지만 정말 보람있고 행복하고......자신이 부처님이 된양 부처님 법을 다배운양 무한안 행복에 겨웁답니다.제가 조금은 부끄럽습니다만은 제부모님 생전에 못한 孝(효) 당신께서 가신 지금 너무도 후회스럽고 안타까움에- 단단히 뉘우치며 이제 남은 생에 누구를 위해 무엇인가해야 하겠기에 경재적인 보시는 못하지만 내마음에서 울어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게 없을까 생각 끝에 내가할 수있는 게 힘없고 의지 할 곳 없는 외로운 요양 시설 을 찾아 어른들을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그래서 요양원에 외롭고 힘 없는 어르신들께 지금은 조..
꽃들과 소소한 속삭임으로 나와 너 따로 없는 불이사상 실천할 때공생공영이 가능합니다.!‘불이’ 모른 채 분별심으로 인한 시비 갈등은 불행을 낳을 뿐, 불이 화두삼아 삶의 순간순간 살펴 중도 견지하는 불자 되길허름한 대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요란한 소리가 이른 봄밤을 더욱 깊은 사유(思惟)속으로 몰고 갑니다.산골의 바람은 때에 따라 유난히 거세어서 느끼는 체감 역시도 무척 차갑습니다.분별의 오르내림이 다소 혼란스러웠던 어제, 마음속으로 종일토록 달궈낸 구차스런 열기는밤을 새워 뒤척인 오늘 아침에야 부담스러운 입술 끝으로 또 작은 산 하나를 키워냈습니다.지난 밤 분별심으로 혼란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너와 내가 따로 없거늘 우리는 늘 분별심을 일으켜 시비하고 갈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