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동안 몸과 마음이 편안했느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엔 “부자 되십시오”한다면서요?
단순한 일상에서의 인사말이라 하지만 곱씹어 보아야 합니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은 이전과 비교해
가치관과 세계관이 얼마나 달라져 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서입니다
. 나와 남이 경쟁하는 회사에서 남보다 더 많이 갖고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만 행복이 오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식과 재물을 많이 소유할수록 행복합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어 보고 있습니다
. 나는 주관이고 보이는 대상은 객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와 남을 항상 둘로 나누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이(不二)의 철학 정신으로 살아왔습니다
서양 철학에서는 ‘이성’을 중시하고
‘이성주의’는 주관과 객관을 나눈 이원론을 원칙으로 하는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이 이성주의는 ‘내가 사유하는 정신은 우월하고
저 대상인 물질은 내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만 봅니다.
그러니 하인주의와 지배주의,
개발의식이 이원론에서 싹트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화두참선법에서는 주관과 객관이 떨어져 나가야 합니다.
모두 그림자일 뿐입니다.
어제 저녁 꿈에서 주관이니 객관이니 하던 것이
아침에 눈을 딱 뜨고 보면 결국은 주관도 객관도 꿈이었을 뿐,
이원론이라는 것도 인간의 생각에서 만든 것일 뿐,
일원론, 이원론을 생각하는 순간 그 이름이 갖는 구속력이 곧 나를 구속하고야 맙니다.
그 구속은 결국 물질만능과 경쟁만을 조장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주의 이치를 홀연히 깨달으시고서는 하시는 말씀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부처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주관과 객관을 나누어 보지 않으셨기에 고구정녕한 말씀을 하신 겁니다.
중생은 자기 나름대로 판단한 번뇌망상에 의해
자신이 부처인 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저 태양광명이 이 도량을 비추고 있지만
문을 닫고 커텐을 쳐 버리면 빛이 들어올 수 없듯이
, 번뇌망상이라는 커텐을 탁 쳐서 나는 나고 너는 너,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어보기 때문에 자신이 부처인 줄 모르는 겁니다.
광명을 가로 막고 있는 커텐을 버리고,
나와 남이라는 벽을 부수고 마음의 눈만 뜨면
일체 유정무정이 다 불성임을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유정무정 개유불성’(有情無情 皆有佛性)이라는 말씀을 바로 듣고
알면 정말 춤을 덩실덩실 추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체유심조’라 하지 않았습니까?
섬진강, 낙동강도 바다가 되면 짠 맛 하나로 통합니다.
순간순간 변해가는 지금의 ‘마음’만을 쫓아 가는 강이 되지 말고
바다가 한번 돼 보라 이 말입니다.
강에서 바다가 되어가는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인생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자세를 분명하게 하고,
다음 생, 몇 백 생 후에라도 언젠가 해결하겠다는 원력을 세워야 합니다.
이왕 할 일이라면 인간 몸 받아서,
그것도 부처님 법 따르는 불제자 되어 참선법 믿는 이 때
바로 지금 안하면 다시는 못 한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남에게서 찾는 일 절대 조심해야 하니
자신이 갖고 있던 의심이 일순간 풀린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처와 같이 일어나고,
저녁에도 부처와 같이 잠을 자고,
한 발짝 한 찰나까지 당당한 부처로서
행복한 평화로움을 느껴보는 삶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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