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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의 곳간

심외 무법

 

법에는 단박에 깨침(頓)과 점차로 깨침(漸)이 없다.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아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見性) 것이다. 깨달으면 원래로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한다. 이 법문은 예부터 모두가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종(宗)을 삼으며 모양 없음(無相)으로 본체(體)를 삼고 머무름 없음(無住)으로 근본(本)을 삼는다. 어떤 것을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모양이 없다(無相)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떠난 것이다. 생각이 없다(無念)고 하는 것은 생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머무름이 없다(無住)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생각(前念)과 지금의 생각(今念)과 다음의 생각(後念)이 생각 생각서로 이어져 끊어짐이 없나니, 만약 한 생각이 끊어지면 법신(法身)이 곧 육신을 떠난다

순간순간 생각할 때에 모든 법 위에 머무름이 없고 만약 한 생각이라도 머무르면 생각마다에 머무는 것이므로 얽매임이라고 부르며 모든 법 위에 순간순간 생각이 머무르지 아니하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머무름이 없는 것으로 근본을 삼아. 밖으로 모든 모양(相)을 여의는 것이 모양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모양을 여의기만 하면 자성의 본체는 청정한 것이다.그러므로 모양이 없는 것으로 본체를 삼아.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을 생각이 없는 것 (無念)이라고 하나니, 자기의 생각 위에서 경계(境界)를 떠나고 법(法)에 대하여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니. 백 가지 사물을 생각하지 않고서 생각을 모두 제거하지 말고. 한 생각 끊어지면 곧 다른 곳에서 남(生)을 받게 된다. 법를 배우는 이는 마음을 써서 법의 뜻을 쉬도록 하고. 자기의 잘못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다른 사람에게 귄하겠는가. 미혹하여 스스로 알지 못하고 또한 경전의 법을 비방하니, 그러므로 생각 없음을 세워 종을 삼아라(無念爲宗).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을 두고 생각 위에 곧 삿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그것을 반연하여 모든 번뇌와 망령된 생각이 이로부터 생기니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문은 무념을 세워 종을 삼아라.

세상 사람이 견해를 여의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서, 만약 생각함이 없으면 생각 없음도 또한 서지 않으니. 없다 함은 무엇이 없다는 것이고 생각함이란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가?

없다 함은 두 모양(二相)의 모든 번뇌를 떠난 것이고, 생각함은 진여(眞如)의 본성을 생각하는 것으로서, 진여는 생각의 본체(體) 요.생각은 진여의 작용(用)이니. 그러므로 자기의 성품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 일만 경계에 물들지 않아서 항상 자재(自在)하니 <유마경>에서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 뜻(第一義)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하였다

 

 

坐禪 - 좌선 

이 법문 중의 좌선(坐禪)은 원래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깨끗함에도 집착하지 않고 또한 움직이지 않음도 말하지 않나니, 만약 마음을 본다고 말한다면, 마음은 원래 허망한 것이며 허망함이 허깨비와 같은 까닭에 볼 것이 없으니 만약 깨끗함(淨)을 본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성품은 본래 깨끗함(淨)에도 허망한 생각으로 진여(眞如)가 덮인 것이므로 허망한 생각을 여의면 성품은 본래대로 깨끗하다

자기의 성품이 본래 깨끗함은 보지 아니하고 마음을 일으켜 깨끗함을 보면 도리어 깨끗하다고 하는 망상이 생기니. 망상은 처소가 없다(忘無處所). 그러므로 본다고 하는 것이 도리어 허망된 것임을 알라. 깨끗함은 모양이 없거늘, 도리어 깨끗한 모양을 세워서 이것을 공부라고 말하면 이러한 소견을 내는 이는 자기의 본래 성품을 가로막아 도리어 깨끗함에 묶이게 되니 만약 움직이지 않는 이가 모든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면 이는 자성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미혹한 사람은 자기의 몸은 움직이지 아니하나 입만 열면 곧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니, 도(道)와는 어긋나 등지는 것이다.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본다고 하는 것은 도리어 도를 가로막는 인연이니라.

이제 너희들에게 말하나니, 이 법문 가운데 어떤 것을 좌선(坐禪)이라 하는가? 이 법문 가운데는 일체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앉음(坐)이며,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은 것이 선(禪)이니라. 어떤 것을 선정(禪定)이라 하는가?

밖으로 모양을 떠남이 선(禪)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정(定)이다. 설사 밖으로 모양이 있어도 안으로 성품이 어지럽지 않으면 본래대로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정(定)이니라. 그러나 다만 경계에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부딪쳐 곧 어지럽게 되니 모양을 떠나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定)이니 밖으로 모양을 떠나는 것이 곧 선(禪)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定)이다

밖으로 선(禪)하고 안으로 정(定)하므로 선정(禪定)이라고 이름하여 <유마경>에서 '즉시에 활연히 깨쳐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는다'하였고, <보살계>에서 '본래 근원인 자성(自性)이 깨끗하다'고 하였다. 자기의 성품이 스스로 깨끗함을 보아라. 스스로 닦아서 스스로 지음(自修自作)이 자기 성품인 법신(法身)이며, 스스로 행함(自行)이 부처님의 행위(佛行)이며, 스스로 짓고 스스로 이룸이 부처님의 도다(自作自成佛道)."

 

 

無念 - 생각이 없음

법에는 단박에 깨침(頓)과 점차로 깨침(漸)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으니.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見性) 것이다. 깨달으면 원래로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한다. 이 법문은 옛부터 모두가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종(宗)을 삼으며 모양 없음(無相)으로 본체(體)를 삼고 머무름 없음(無住)으로 근본(本)을 삼는다

어떤 것을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모양이 없다(無相)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떠난 것이다. 생각이 없다(無念)고 하는 것은 생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머무름이 없다(無住)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생각(前念)과 지금의 생각(今念)과 다음의 생각(後念)이 생각 생각 서로 이어져 끊어짐이 없고 만약 한 생각이 끊어지면 법신(法身)이 곧 육신을 떠나고순간순간 생각할 때에 모든 법 위에 머무름이 없으니, 만약 한 생각이라도 머무르면 생각마다에 머무는 것이므로 얽매임이라고 부르며 모든 법 위에 순간순간 생각이 머무르지 아니하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머무름이 없는 것으로 근본을 삼고. 밖으로 모든 모양(相)을 여의는 것이 모양이 없다

오로지 모양을 여의기만 하면 자성의 본체는 청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양이 없는 것으로 본체를 삼아.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을 생각이 없는 것(無念)이라고 하니, 자기의 생각 위에서 경계(境界)를 떠나고 법(法)에 대하여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니 백 가지 사물을 생각하지 않고서 생각을 모두 제거하지 말라. 한 생각 끊어지면 곧 다른 곳에서 남(生)을 받게 되니 법를 배우는 이는 마음을 써서 법의 뜻을 쉬도록 하고 자기의 잘못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다른 사람에게 귄하겠는가.

미혹하여 스스로 알지 못하고 또한 경전의 법을 비방하니 그러므로 생각 없음을 세워 종을 삼으니(無念爲宗).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을 두고 생각 위에 곧 삿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그것을 반연하여 모든 번뇌와 망령된 생각이 이로부터 생기니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문은 무념을 세워 종을 삼는다.

세상 사람이 견해를 여의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서, 만약 생각함이 없으면 생각 없음도 또한 서지 않으니없다 함은 무엇이 없다는 것이고 생각함이란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가? 없다 함은 두 모양(二相)의 모든 번뇌를 떠난 것이고, 생각함은 진여(眞如)의 본성을 생각하는 것으로서, 진여는 생각의 본체(體) 요생각은 진여의 작용(用)이니라. 그러므로 자기의 성품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 일만 경계에 물들지 않아서 항상 자재(自在)하느니 <유마경>에서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 뜻(第一義)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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