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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곳간

매일 나를 바꾸는게 인과응보!

무소구행(無所求行)의 삶!

대가를 구하는 바가 없이 선행을 하면서 세상을 살라입니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대가를 받을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행하라는 말이다. 대가를 바라는 마음, 탐욕과 집착은 계속 업을 쌓기 때문에 아무리 공덕을 베풀어도 소용이 없다. 공덕 복덕을 베풀더라도 영원히 불생불멸한 근본 그 자리에 앉아서 공함을 알고 베풀어야지, 그 이치를 모르고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된다. 만유는 공하여 항상 함이 없으니 집착함이 없어야 삼독에서 벗어나, 그러고 나면 칭법행(稱法行)이라.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본래의 마음, 성품의 근본자리, 선악시비와 공덕 복덕을 다 떠나 불생불멸, 부증불감, 선악도 끊어지고, 시비도 끊어진 영원한 진여자성의 자리에 앉아서 살라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억천만사가 떠오르고 일어날 때라도 그 자리를 지키고 알아야 한다. 그 자리에 삼보도 들고 지혜광명도 들고 법계도 모두모두 다 들었습니다. 생사 공덕 시비를 떠난 그 자리를 알면 무엇이 두렵고 어렵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을 실재한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잡으려 하고 보려 하면 또 없습니다. 하지만 있습니다. 그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성정(性淨)의 이치를 보고 관함을 삶의 법(法)으로 삼아야 합니다. 참된 성품의 이치를 보고 관찰하는 수행의 자세로 사세요.

그 본성(진여자성) 자리에서 온갖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여 물리치고 법에 충만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모든 상은, 모든 선악 시비는 다 무상한 것, 그것이 잘 안돼서 업이 쌓이면 다시 참회하고 수행하고, 그래서 업을 소멸하고 이렇게 일생동안 살다 보면 큰 악을 안 짓고 나중엔 작은 악도 짓지 않고 그렇게 살다 보면 죽을 때쯤 돼서는 진여자성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인연 과보란 내가 어디 가서 무엇이 되어 태어날 것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가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탁’ 하고 내가 무엇이 되는 결과를 받는 것이 인과응보가 아니다.

불자의 마음가짐과 安分知足의 삶!

정녕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과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가? 앞에서 꿈같은 인생, 불타는 집 속에서 사는 인생, 사대(四大)로 구성된 이 몸의 노예가 되어 사는 인생을 이야기할 때 은근히 답을 밝혔지만, 그 방법은 참으로 간단하다. 애착을 비우고 소유욕을 비우는 것이다. 처음부터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무소유의 정신을 기르고 무소구행(無所求行)을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인간의 모든 괴로움은 ″나″의 것으로 만들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곧 구하고 소유하려고 하면 괴로움이 뒤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구하고 더욱 많이 소유하고자 한다. 사람도 내 사람, 물질도 ″나″의 것이 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자연히 모든 것을 ″나″쪽으로 끌어당기게 된다.

그러나 이와같은 욕구는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도 내가 원하는 것을 잡아당기게 된다. 이렇게 양쪽에서 서로 끌어당기니 경쟁심이 불붙고, 경쟁을 하다가 이기면 승리했다며 뽐내게 되고 지게 되면 실망과 패배감에 젖어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생놀음이다. 이러한 중생 놀음을 벗어나려면 한쪽에서 놓아버려야 한다. 놓아버리고 살아야 한다. 죽이면 죽, 밥이면 밥, 형편대로 인연에 맞추어 살 일이지 무리하게 살아서는 안된다. 무리하게 살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기고, 부작용이 생기면 괴롭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인과응보요 과거 전생의 업연(業緣) 따라 될 뿐이다. 욕심대로라면 못 이룰 일이 없지만 현실은 전혀 달리 나아간다.

이 일 저 일을 기웃거리지만 뜻과 같이 되지를 않는다. 돈벌이가 될 일이라고 하면 너도 나도 달려들지만 많은 돈을 번 사람은 과연 몇이며, 명예를 얻고자 하는 이는 많지만 후세까지 길이 명예로운 이름을 남긴 사람은 몇이며, 권좌에 오르고자 하지만 절대적인 권력을 누린 자가 어디에 있었던가?

조그마한 틈만 있으면 ″처처(處處)에 탐착″하여 구하고 소유하고 이루고자 하지만, 결과는 전혀 엉뚱한 데로 귀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뿐만이 아니다. 구하는 것이 크면 클수록, 탐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괴로움도 크게 돌아오는 법이다. 왜 뻔한 결과를 직시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며 살아가는가? 지혜롭게 마음을 닦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하늘은 자기 먹을 것 없는 사람을 내어놓는 법이 없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자라나게 하지 않는다 (天不生無錄之人 地不長無名之草)″는 이치를 알고 있다. 누구든지 분수를 따라 먹고 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등바등 산다고 하여 더 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 지혜롭다는 것이 무엇인가? 한 생각 잘 돌이켜 탐착을 벗어버리는 것이 지혜이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