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척하는 마음 내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심(下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교수행의 궁극으로 삼고 있는 무심(無心)조차도 사실 하심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하심이 안 되는데 무심이 될 수가 있을까요?
첫째도 하심, 둘째도 하심, 셋째도 하심 하심이란 스스로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행자시절 최고의 덕목은 하심이었습니다. 첫째도 하심, 둘째도 하심, 셋째도 하심이었지요. 그래서 행자 당시에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허리를 꺾고 절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당연히 하심을 연습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마음을 낮추는 데서 참다운 공부는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한다면 누가 감히 나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당신들은 스스로를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나 자신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앎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잘난 척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 얼른 알아차리고 ‘이 마음이 어떤 걸까,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참구해나 가는 것이 마음공부의 비결이 아닐까요? 진정 ‘나’라고 하는 것은 어떤 걸까요? 있는 걸까요? 없는 걸까요? ‘나의 마음’은 또 어떤 걸까요? 어떻게 생겼을까요? 이를 분명히 알지 못한다면 크게 하심하고 선지식을 찾아 공부를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선지식 스님이 계시는 곳에 안거를 지내고자 많은 수행자들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그 곳의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었으므로, 상당수의 사람은 돌려보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떠날 기미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 스님은 법당 앞에 장작불을 피웠습니다. 의아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루 이틀 사흘 이러한 행위가 거듭되자 마침내 사람들이 스스로 걸망을 싸서 가버렸습니다. ‘ 대단한 선지식인 줄 알았더니 사람을 잘못 봤군.’ 하면서 말입니다.
결국 두세 사람만 남고 모두 떠나버리자, 그 스님은 그때서야 장작불을 치워버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쭉정이는 모두 떠나고 알맹이만 남았으니, 이제 공부 한번 제대로 해봅시다.” 잘난 이는 잘난 척하지 않는다 쭉정이가 될 것인가, 알맹이가 될 것인가? 선지식을 자신의 잣대로만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온 온갖 알음알이, 분별심, 고정관념을 일시나마 쉬어야 선지식이 보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해야 공부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암자에도 이런저런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중에는 불교에 대해서, 혹은 수행에 대해서 물어보러 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가만히 대화를 하다 보면 이 사람이 진짜 가르침을 받으러 온 것인지, 도리어 가르치러 온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혀 하심이 안 된 상태에서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잡다한 지식을 늘어놓기에 급급한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별로 해줄 말이 없습니다. 자신이 굉장히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남의 말이 들어올 여지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임제할(臨濟喝: 임제 스님의 고함), 덕산방(德山棒: 덕산 스님의 몽둥이)이 있는 게 아닐까요? 한편 자만심과 자존심은 다릅니다. 자만심은 ‘자기만’ 잘났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남들은 자기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 ‘나의 주장’만이 무조건 옳고, ‘남의 신앙’ ‘남의 주장’은 무조건 그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심입니다. 자만은 그대로 독선과 이어지고, 결국 대화와 타협보다는 일방적 자기주장과 투쟁만이 있을 뿐이지요.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시끄럽게 합니다.
자존심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스스로를 존중하듯이 남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나의 신앙이 소중하듯이 남의 신앙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나만 잘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잘난 이로 봐주는 것입니다. 모두가 본래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진정 잘난 이는 잘난 척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는 이는 결코 잘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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