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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곳간

매 순간 일어나는 경계에 끄달리지 말라

 

 

어떤 경계 닥쳐도 ‘공부’로 알아야 -“마음에 묻고 맡기는 습관에서 답이 나와요”-

-“苦를 苦라 집착하면 별도에 이르지 못하죠”-  “항상 좋은 일만 생기지 않는 것은 파도나 잔잔한 물이나 동등하듯

그 이치 알게하기 위해서죠” 우리에게 제일 급한 게 뭐냐 하면, 자기 뿌리를 자기가 믿는 겁니다. 배를 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선장을 믿지 않는다면 누구를 믿습니까?  그래서 파도가 치든 잔잔하든 양면을 다 놓고  그 선장한테 맡겨 놓는다 이겁니다.

선장이 배를 끌고 갈 수 있게끔 만들어야지, 파도가 친다고 해서 우왕좌왕하며 마음이 흔들린다면 결국에는 배가 뒤집히죠.

우리 몸뚱이를 배로 비유한다면선장인 주인공이 자기를 이끌고 가는데 바깥으로 자꾸 끈 달린다 면목적지까지 목적지까지목적지까지

제대로 끌고 갈 수가 없습니다. 현재는 부(父)와 자(子)가 상봉을 못했다 하더라도 한군 데다가 몰두해서,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거기서 하는 거니까 되게 하는 것도 너야!’ 하고 굴려 놓으세요.

 이 ‘법륜을 굴린다’ 하는 것도 바로 이렇게 굴리는 걸 말합니다. 그렇게 굴려 놓을 때 찰나에 대뇌를 통해 사대로

통신이 돼서 정수의 컴퓨터에 입력이 된다면, 그 입력대로 그냥 나오게 돼 있습니다.

깨우쳤다 깨우치지 못했다 를 떠나서 진짜로 자기 근본자리를 믿는다면 말입니다.

내가 항상 그러죠. 이 세상에 누구를 믿을 데가 있느냐? 못났든 잘났든 네가 이 세상에 나와서 너만이 너를 믿을 수가 있잖아!

그래서 누구나에게 자불(自佛)이 있다고 했습니다. 부모 자식간에도 대신 똥 눠줄 수 없고 밥 먹어 줄 수 없고

잠자줄 수 없고, 아파 줄 수 없고 죽어 줄 수 없고, 깨달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밖으로는 믿을 놈이 하나도 없어요.

자기를 이끌어 가는 자기 주인공, 자불 밖에는 믿을 수가 없어요. 그 자불로 인해서 수없는 제불이 찰나찰나 엮어지니까요.

그리고 통신도 되면서 항상 들고 나시거든요, 그 자불 주인공에. 우리가 영화를 한편 보더라도 주인공이 고생은 해도

죽는 건 드물죠?  결과는 항상 회향을 잘하고 끝내지 않아요? 그러듯이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우리가 바깥으로 끄달리지 말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주인공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 하고

관하면서 진실되게 행하세요.  자기가 자중자애하면서 자꾸 관하면 어떻게 해야 될 건지 답이 나와요.

그래서 실천에 옮기고 실험을 해보고, 그러다 보면 차차 경험이 되고 그래서 깨우쳐진단 말입니다.  

그리고 ‘아,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하는 걸 알고서 좇아가니까 어떤 게 닥쳐와도 해결을 할 수 있고,

또 ‘이 줄이 바로 반야줄이구나! 이게 바로 부처님의 세계로 가는 길, 미세한 그 티끌 수와 같은 세계로 가는 거구나!’ 하고

그냥 생각을 할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은 그 헤아릴 수 없는 세계로 가는 길이 수천 수만이 된다 하더라도 어디건 간에 한 찰나입니다.

만약 이 육체를 새 둥우리라고 합시다. 새 둥우리 속에 새가 들어있죠. 몸이 형성됐으니까 그 속에 잔불이 들어있는 거지,  

지붕도 안해놓고 부처님 모시는 것 봤습니까? 다 집을 마련해 놓고 잔불을 모시는 거죠. 잔불은 영원한 겁니다.

여러분의 자불은 모두에게 다 같이 있죠. 그러기 때문에 누구든지 함부로 업신여기지 말고 미워하지 말고 섭섭하게 하지

말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벌레 하나도 네 생명처럼 아끼며 살생하 하셨고요.

공부하는 것도 살아서 하는 거지 죽으면 공부 못해요. 부딪치는 체가 있어야 느끼고 경험할 텐데 체가 없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공부를 못하고 차원에 따라서 인간의 모습뿐만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도 태어나게 되는데 살면서 습이 쌓이니까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무척 고생을 해야 되죠. 우리가 공부하면서 자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을 믿는다 하면서도

어려운 경계에 부딪치면 쉽게 좌절을 하고 답답해하고 그러는데  어떤 경우라도 반드시 그건 공부라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불도 꺼졌다 켜졌다 하는데 사람 사는 일이 항상 좋은 일만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밤낮도 돌고 있고 바다에 파도도 일었다 꺼졌다 하지 않습니까. 파도나 잔잔한 물이나 동등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동등한 이치를 알게 하기 위해서 자꾸 그런 일이 생기거든요.

그 사람이 할 수 있을 만큼의 알맞은 일들이 생겨요.  텔런트가 배역을 맡아서 그때그때 역할을 해내고

본래자리로 돌아오는 것처럼요. 그러니까 그것을 빨리 수습하려면 ‘날 공부시키느라고 이렇게 답답하게 만들고

끄달리게 만드는구나!‘ 하고 바로 내 안에다 관하게 되면 답답한 게 한 순간에 다 없어지죠. 이치가 그러한데 얼마동안 잘 되더니

지금은 안된다고 하면서 답답하다고 해요.  그래서 하는 소립니다. 답답하다 생각지 마시고,

답답하고 모르고 그러는 것이 도니까 모르고 답답하고 말도 안 되고 이날까지 살아오면서 공부했어도 이게 뭔가? 하고

한탄하지 말고, 모든 걸 그 자리에다 맡기세요. ‘한탄하게 하는 것도 너고, 답답하게 하는 것도 너고, 모두가 너다.

’ 하구선 거기다 맡겨놓을 때, 그게 습관이 되면 어떤 거든지 다 거기다 놓게 되죠. 그리고 실험을 통하고

또 체험을 하게 되면 자연적 문이 열리는 그런 이치거든요.

본래 깨우치라고 돼있는데 여러분이 딱 막아놓고는 안 하니까 안 되는 거죠.  

살아 생전에 그 도리를 알아야 죽어서도 떳떳하고 어디든지 내 자유 거 갈 수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살아서 인가가 됐기 때문에 죽어서도 인가가 돼 있는 거죠.  

여러분도 언제까지나 불쌍한 생명들을 보고 살고,  또 그 생명으로 다시 떨어지고 하는 중 세계에서만 살 수는 없거든요.

여러분이 차원이 높아져서 한세계에 한도량으로 한데 모여서 만화영화에 나오는 은비까비처럼 남이 알지 못하게

도와줄 수 있고 건져줄 수 있다면 자기네 자손들을 건질 뿐만 아니라 자기 부모 대대 종손들도 다 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렵다 했습니다. 람중에서도 진짜 사람이 돼야 부처님 한 도량에 태어난다 했습니다.

이 중세계는 상천세계로 올라가느냐 아니면 하천세계로 떨어지느냐의 교차로인데 그 차원도 내 한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닥쳐오는 고를 고라고 생각하면 고가 되는 것이고 , 고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고가 아니 되는 겁니다.  

고(苦) 라고 집착을 한다면 그건 별이 되질 않으며 도를 이루지 못하죠.

그러니까 여러분의 한 생각에 따라서 도의 길을 걷느냐, 망상의 길을 걷느냐가 달려있어요.

그러니 이 한철 나면서 때로는 이런 경우가 있죠. 나무가 자기 뿌리를 간절히 믿고 의지해야 나무가 크게 자랄 텐데

자기 뿌리는 믿지 않고 이 나무, 저 나무 찾아다니면 나무가 자랄 수 있나요?

그것처럼 우리 공부하는 것도 이것 조금 해보고 또 저기 가서 또 조금 해보고  이러면 정말 시쳇말로 죽도 밥도 안되죠.

큰 바다로 나갈 수가 없어요. 자기가 이 세상에 형성돼서 나온 자리도 그 자리이고 들어갈 자리도 그 자리거든요.

때문에 죽어서 들어가는 것보다도 살아있을 때 공부하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은 깨우치지 않았어도 관하면 자꾸 닿는단 말입니다.  

닿아서 모르는 게 없어요. 그런데 그걸 못 참아서 ‘관해도 안됩니다.  열심히 해도 이것밖에 안됩니다. ’ 이러거든요.

진짜로 믿는다면 닿게 된다는 걸 알게 돼요. 진실로 이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은요, 죽는다 하더라도 겁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내버렸어요.  내버린 건 왜냐하면 항상 얘기하듯이 봐도 본 게 없고 들어도 들은 게 없고 만나도 만난 게 없고,

또 가고 와도 가고 온 게 없고, 모두 해도 한 게 없기 때문이예요.  내가 어떤 걸 먹었을 때 내가 먹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먹은 것도 없고 한 것도 없는 겁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그것이 바로 변하지 않는 금덩어리가 돼서다불과 통하게 됩니다.

만약에 의사의 진단이 암이라 하더라도 그게 이름뿐임을 알고서  ‘주인공, 아프게 하는 것도 너라면 건강하게

이끌고 가는 것도 너잖아.  그러니 너만이 낫게 할 수 있어.’ 하고 관해 주십시오.

그 암이라는 이름에 덜컥 걸려서 ‘아- 이제 죽는구나’ 라고 미리 생각부터 죽어버리니 몸안에 있는 생명들이

무슨 기운을 차리겠습니까?  

가족들이나 친지들한테도 미리미리 관하는 법을 일러줘서 스스로 문제해결을 할 수 있게끔 하세요.  

그게 바로 눈물 덜 흘리고 사는 길이예요. 이 공부를 자손들한테 가르쳐준다면 아마도 가장 소중한 유산이 되겠죠.

왜냐하면 한 마리의 물고기를 던져주는 것보다도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면 평생의 양식이 구족 할 테니까요.

부처님께서는 항상 자기 자신이 그대로 자불임을 알아서 여여하게 살아라 그랬습니다.

스스로에게 다 갖추어져 있고 만법을 들이고 내는 것도 다 자신 안에 들어있다고요.

사계절이 오는 것을 다시한번 보세요.  전부 스승입니다. 세상만물이 전부 스승 아님이 없이 갖추어져 있는데,  

마음이 들떠서 여기 저기 말을 구하러 다닙니다. 말이 아무리 좋고 이론이 좋았던들,

몸 떨어지면 입도 떨어지고 입 떨어지면 말도 떨어질 텐데 그 말을 좋다고 들으러 다닌다면 그 나무에 싹이 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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