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 오는이 없기에 기다리는 이 없는 법이 머무고
외롭고 험한 산길을 오르면 어김없이 오롯이 앉은 암자를 만난다
산새 소리만 찾아드는 산중에서 다툼과 분별이 끊긴 자리....
깨달음에 공덕을 구하겠다는 다짐이다
햇살 드는 법당 마루에 앉아 멀리 구름 너머를 바라보며 온 산줄기가
달려온다 해도 그저 묵언으로 정진에 하루를 보낸다
산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영봉들
높디높은 영봉들을 호령한다
겨울산 봉우리마다 하얀 눈꽃을 뽐내겠지만
산 아래 사바는 온통 고통으로 가득한 세간 일 뿐이다
봄볕을 기다리는 마음이야
눈 쌓인 산줄기와 얼어붙은 논두렁이 어찌다를 수 있으랴!
그러나 아직은 산등의 추위는 기다리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릴 뿐이다
푸른 대나무 숲에 호위를 받으며 솟구쳐 오르는 전나무는 한그루
속세를 벗어나 천상으로 가는 길인가!
푸른 대나무 숲길을 따라 계단을 말없이 오르며 거친 숨을 몰아쉰다
작은 마당에 홀로 서서 산 줄기를 바라보며 무엇을 구하고 얻고자 여기를 왔던고....
아니. 무엇을 더 보태고자 왔는가 말이다
그윽하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의 울림은~~
지나가는 나그네 발길을 멈추고 붙들어 세운다
산중에 법이 머무는 곳에서 저녁 예불시간 알리는 소리가
사바세계에 울리면 한량없는 마음으로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해 두 손 모아 합장한다
찬 바람 부는 겨울지나 쌓인 눈 녹을 때쯤이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그곳을 찾아 만날 수 있을까?
묵언하심, 초로의 산길 모퉁이 지친 몸 고목나무에 기대어
그 한가운데서 깨달음을 갈구한다
_()_
지혜. 자비가 바로 부처!
내 주변에 생기는 어려움, 역경, 시련은 누구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즉 밖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신과 같은 존재가 있어서 “너희들은 전쟁을 하라”라고 시킨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공업입니다. 모든 고난과 시련은 공업 결과, 우리가 부처님의 위신력에 의지한다고 했을 때
그 부처님은 인격체가 아닙니다. 자비와 지혜는 부처님을 떠받치는 두 기둥입니다.
자비가 곧 지혜이고 지혜가 곧 부처님입니다. 위신력 그 자체입니다.
인격적인 대상이 아닌 지혜와 자비, 그리고 위신력 그대로 곧 부처님입니다.
감각과 인식, 지식과 생각으로 알아지는 인격적인 부처님이 아닙니다.
그러니 사유로서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혜와 자비로서의 부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감각, 인식을 벗어나 있는 부처님은 쉽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마치 허공처럼 생긴 지혜와 자비를 부처님이라 느끼고 믿는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 부처님을 믿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이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는 용기와 결단.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을 조성할 때 우리 조상들은 바로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위신력, 본래 지혜인 부처님, 본래 역경과 시련이 없는 그 부처님을 믿고
온 국민들이 일심으로 단합해 부처님의 말씀을 새긴 것입니다. 그 말씀을 새기며 국난을 극복한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베푸는 마음이 우선돼야 합니다.
부처님 자체가 그런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에 무엇인가를 베풀어 줍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새가 지저귀 나에게 기쁨을 줍니다. 강물이 편안히 흘러감으로써
나에게 넉넉함을 주고 바람이 불어서 시원함을 줍니다. 자연은 무엇인가를 끝없이 주고 있습니다.
꽃은 피어서 꿀을 벌이나 나비에게 주고, 성장하고, 죽으면 거름이 됩니다.
모든 생명들이 서로를 죽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를 살리고 있습니다.
내 몸, 또는 무엇인가를 줌으로써 다른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처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한없이 넉넉하고 편안한 마음입니다.
기쁨의 마음, 자비심, 자연이 주는 이 자비를 느끼고 온 천지에 자비가 가득함을 느끼게 될 때,
스스로가 또한 그렇게 돼야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을 모르면 불교를 아무리 믿어도 부처님의 자리에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을 믿어야겠다고 했으면 이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마음이 부처님에게 가까워지는 최초의 마음입니다.
그다음은 내가 바라는 모든 소망이 반드시 이뤄진다는 철두철미한 믿음입니다.
단 내 소망은 착한 소망이어야 합니다.
다른 존재를 해코지하는 소망이 아닌 모든 존재를 살리는 소망이어야 합니다.
‘이건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는 상식과 지식을 뛰어넘는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그런 존재입니다. 반드시 이뤄진다는 굳센 마음을 가질 때 우리의 주변은 점점 변해갑니다.
역경이 순경으로 서서히 바뀝니다. 그럴 때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좋아집니다.
탐욕심을 제거하고 부처님의 생각에 부합했을 때, 모든 것이 이뤄지는 평안이 찾아옵니다.
내가 사는 세상이 극락이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을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망상, 어리석은 마음입니다. 내 생명이 부처님의 무량공덕생명이라는 진리를 믿지 못하고
‘나는 범부 중생’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곧 망상이며 어리석은 마음입니다.
이것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손가락에 붙어있는 혹과 같아 떼어버리면 됩니다. 그것이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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