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하루하루 마음공부를 하고 있지만,
가장 소중한 것은 깨달음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모르고 사는 사람과 깨달음을 알고 사는 사람은 분명 차이가 납니다.
우리는 깨달음을 통해서
그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도 범부(중생)일 적에는 우리와 똑같은 고통을 겪으셨어요.
갖가지 욕망에 대해서, 또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꾸역꾸역 일어나는 분별심에 의해서 괴로움을 겪은 거예요.
종교라고 하는 것은 인생을 보다 맑고 행복하게
또 사람답게 바르게 살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의 사명이 아닌가 사유합니다.
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보니까,
인간의 육신은 참된 ‘나’와 거짓 ‘나’가 있다는 걸 알게 돼요.
그 참된 ‘나’ 는 마치 가을 하늘처럼 맑고 깨끗하며,
연꽃처럼 진흙에 물들지 않는 청아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된 ‘나’의 성품으로 살지 못합니다.
갖가지 욕망겳壤�때문에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그래서 우리 모두 부처님처럼 맑고 넉넉한
가을 하늘 같은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 하지요
맑은 물과 흙탕물을 비교해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맑은 물은 깨끗하고 투명해요. 하루 종일 흔들어도 맑은 물입니다.
그 이튿날 또 흔들어도 맑은 물이에요.
물은 흔들릴지언정 맑은 성품을 잃지 않습니다.
그런데 흙탕물은 가만히 놓아두면 흙이 가라앉아 맑은 물로 보이는데,
흔들면 온통 흙탕물이 돼요.
또 가만 놓아두면 맑은 물이 되고, 흔들면 다시 흙탕물이 됩니다.
흙탕물은 중생의 마음이고,
맑은 물은 깨달은 성자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수행(마음공부)을 좀 하고나면 마음도 맑아지고 기분도 좋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 공부가 좀 됐지 않나 싶은데, 누군가가 와서 속이 뒤틀린 말을 하면
온통 그 마음이 뒤집어지고 화가 나고 증오심이 나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심이 막 일어나죠. 마음이 온통 구정물이 돼버립니다.
그러니까 구정물도 됐다, 맑은 물도 됐다 그럽니다.
그러니까 수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근본 마음을 보지 못하면
, 흙탕물처럼 조금 맑았다가 조금 흐려졌다를 계속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근본 마음은 가을하늘처럼 맑고 청정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맑고 청정한 마음에다 끊임없이 생각을 일으켜 그림을 그려요.
이 생각도 했다 저 생각도 했다,
좋은 생각도 했다 나쁜 생각 했다 그럽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시작해서 밤에 잠잘 때까지 온갖 생각에
한 생각이 끝나면 또 다른 생각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어리석은 범부(중생)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공부를 한 성인에게도 일어날 수가 있어요.
그럴 때 성인은 어떻게 하는가 하면, ‘어떠한 생각이 맑고 청정한 내 마음 가운데서
춤을 추고 있구나’ 하고 전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 즉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그린 그림을 그림자로 보지 않고 실체로 봅니다.
그러니까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또 괴로움이 일어나게 되지요.
그래서 깨달은 사람과 깨닫지 못한 사람은 백지 한 장 차이밖에 나지 않는 것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고뇌가 없다.
왜 그렇겠습니까? 맑고 청정한 마음 바탕에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그림자로 보고 속지 않으니 고뇌가 없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시시때때로 일으킨 생각을
실체로 착각하고 이끌려 다니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_()_
'소소한 삶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유하는 함이 없음(無念) (1) | 2020.09.06 |
---|---|
끊임없이 올라오는 번뇌,망상은 어디에도 없다 (1) | 2020.08.29 |
나 혼자 만의 길 (2) | 2020.06.21 |
무상한 행복 (0) | 2020.06.10 |
자각 (1) | 2020.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