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올리면 은근한 깨우침과 감동으로 가슴을 적셔주는 말들이 더러 있다. 헌신이라는 말도 그 하나이다 몸과 마음을 바쳐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우리들의 관계를, 나아가서 우리의 사회를 훈훈하고 평화롭게 해주는 덕성이다. 헌신이라 음미해 보면 해볼수록 마음이 낮아지고 다소곳해지며 옷깃을 여미게 하는 말이다.
다소 성글거나 서둘렸던 마음을 다잡아주며 커다랗게 마음을 넓혀주는 마음이다, 다 주고도, 다 놓고도, 다 바치고도 가장 넉넉한 마음이게 하는 말인 듯싶다. 누군가를 (獻身的)으로 사랑해 본다는 일, 누군가를 헌신적으로 섬겨오는 일, 어딘가에 헌신적으로 몰두해 본다는 것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침이 없으리라. 그 자체로서 지고한 행복이요, 아름다움이요, 품격이기에 말이다.
헌신적이게 되려면 자신을 내세워서는 아니 될 것이요. 헌신적이게 되려면 온전한 사랑이 아니면 안 될 것이요. 또한 헌신적이게 되려면 확실한 가치로 받아들일 때일 것이다. 제대로의 헌신 속에는 일체상이 없어진 끊긴 자리 청정한 보리심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무아를 실현하면 한없는 가피를 만나고, 머리로서 사랑이 가슴으로 들어와 참 존재 덕성을 구현하는 삶이 되어야 할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헌신은 희생(犧牲)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차이는 두되 차별을 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 희생 속에는 자칫 생색이 묻어있을 수도 있고, 보상심리가 배어있을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서나 가까운 우리 주변에서도 헌신의 삶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우리를 깨우치게 하며, 아울러 우리를 자랑스럽게 하는 분들이 있다. 그 가운데 우리들의 어머니, 어머니들의 삶은 이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 사랑의 대표가 아닐까 사유해 본다. 헌신적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효성 지극한 자녀들의 일화에도 많다. 우선 우리들에게 거듭 감동하고 또 감동하는 내용이 있다. 그 이유야 많이 있겠지만 가장 유력한 이유 하나로서는 심청의 효성을 통하여 드러난, 사람 속에 내재되어 있는 헌신의 덕성을 최대한 찬양하며 따라 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염원(念願)에서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아무튼 심청의 헌신적 효성은 어느 시대의 사람이건 따라 해 보고 싶은 고결한 덕성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이상적 목표는 대원(大願)이다. 이 세상 모두의 지극한 행복을 염원함이다. 대원정신(大願精神)은 우리 모두에게 권장하고 있는 기초 덕성이다. 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세상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며, 각자 나름의 정성으로 일상의 모든 것들이 대원행(大願行)이 되도록 노력해 갈 것이며, 나아가서는 세상 행복을 위해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삶이 되도록 정진해 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대원의 삶의 모토로 삼는다. 대원의 긍극적 실천은 아마도 헌신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신을 재물로 심청의 헌신적인 섬김, 이 모두가 가슴을 아리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또한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대원행의 본보기이다. 우리에게 맑은 소망을 안내하는 스승으로서의 가르침들이다.
나는....! 좀 더 마음을 비우고, 순간순간 임하는 어느 곳에든 오롯이 바칠 수 있는 삶을 살아보자고 다시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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