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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곳간

이것도, 저것도 법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커다란 울타리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이 전부인 줄 그렇게 알고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그 안에 있는 것에 익숙해져 갈 때면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나’, ‘내 것’, ‘내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연 따라 잠시 왔다 스쳐 가는 것을 애써 잡아울타리 안에 가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울타리를 쳐서 ‘나’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빠져버립니다.
내가 스스로 만든 ‘나’에 집착합니다.
부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게 전부가 아니야, 그건 네가 아니야 그 울타리만 걷어차고 나오면 무한한 세상이 다 네 것이야.”

지금껏 우리는 이렇게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내 것’을 많이도 늘려놓았습니다. ‘내 것’을 늘리는 일, 그것이 우리네 사는 일상입니다.
우리네 한평생 살림살이입니다. 누구나 ‘내 생각’이 있게 마련입니다. 주관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주관이라는 것은 사실 알고 보면 철저한 객관들의 모임에 불과합니다.
순수한 ‘내 생각’은 쉽게 찾아낼 수 없습니다. 모두가 ‘길들여진 내 생각’이었음을 봅니다.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내 생각이었음을, 지독한 고정관념의 연장이었음을,
사회가 만들어낸 수많은 고정된 틀 그 수많은 고정관념들을 뭉뚱그려 ‘내 생각’으로 만들어 놓고 주관이라그럽니다.
내 생각, 내 가치관이라 그럽니다.

선과 악에 대한 자신의 판단 또한 그렇습니다.
여기에서는 ‘선’이었던 것들이 다른 쪽으로 가면 ‘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정 선과 악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보고 ‘선’이라 하고 ‘악’이라 해야 합니까.

온 형상계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 상황 따라 바뀌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고정관념은 상황이 바뀌어도 한 가지 관념만을 고집하는 것을 말합니다.부처님께서도 공(空)에 너무 치우친 사람에게는 유(有)를깨우셨고,유에 치우친 사람에게는 공의 이치로 일깨워 주셨습니다. 고정됨이 없이 돌아가건만 우리의 생각들은 너 무도편협하게 고정되어 우리가 안고 살아가는 괴로움의 대부분은 바로 이런 고정된 관념 때문에 생기는 경우다.

내 생각을 고집하지만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린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것 고집을 버리면 세상이 고요하고 주위가 평온 해집니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야 세상이 달라져 알에서 나온 병아리처럼, 우물에서 뛰쳐나온 개구리처럼, 그렇게 세상을 보는 기준이 확연히 달라집니다.
내 생각이 옳다는 고집을 버리고 뻥 뚫려 활짝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세상은 이미 내 앞에 활짝 열려 있음을 볼 것입니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상대방이 '꼭 이렇게 해라' 하고 이야기할 때 고집이 많고, 고정관념이 큰 사람일수록
내 생각에 대한 미련 때문에 쉽게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고정된 법은 없습니다. 이것도 법이요, 저것도 법일 수 있습니다. 마음을 열고 보면 세상엔 참 옳은 의견이 많습니다.
이건 이래서 옳고 저건 저래서 옳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지, 이건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는 어두운 마음이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업장소멸은 어떠한 이치로 이루어지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마음 한 번 바르게 가지며, 생각 한 번 착하게 일으키며 행동 하나 바르고 선하게 하는 일상생활의 이 모든 습성들이 우리의 마음 밭인 에 티끌만 한 것도 빠짐없이 선의 종자, 악의 종자로 심어지게 된다는 것을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 그리하여 이 선업종자와 악업종자가 점점 성숙되어 외연을 기다리고 있다가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각자 지은대로 닦은 대로 그 과보를 받을 수밖에는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장차 어떠한 불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또 현재에 불어 닥친 불운한 일들이 있다 해도,
우리가 한량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쌓아 온 악의 종자를 감소시키는 길이 있다면, 그리 불안해할 것도 절망에 빠질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찰나 생멸하는 체(본바탕)가 상주(常住)하지 않으므로, 곧 절대적인 것이 아니므로 변화하여 바뀌는 작용,
즉 전변 하는 작용이 있어서 선도되고 악도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어나고(生) 멸하는 그 바탕(體)이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행을 하여 선의 종자가 증진되면
악의 종자가 감쇄(減殺: 감하여 없어짐)되고, 악행을 하여 악의 종자가 증진되면 선의 종자가 감쇄되는 증감성(增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우리 심성에 따라서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가 있으므로 업장소멸이 가능한 것입니다.

매일 나를 바꾸는 게 인과응보 무소구행(無所求行), 대가를 구하는 바가 없이 선행을 하며 세상을 살라입니다.좋은 일을 하더라도 대가를 받을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행하라는 말입니다. 대가를 바라는 마음, 탐욕과 집착은 계속 업을 쌓기 때문에 아무리 공덕을 베풀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공덕 복덕을 베풀더라도 영원히 불생불멸한 근본 그 자리에 앉아서 공함을 알고 베풀어야지, 그 이치를 모르고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됩니다. 만유는 공하여 항상 함이 없으니 집착함이 없어야 삼독에서 벗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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