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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의 곳간

어둡고 우둔함이 곧 밝고 총명함도 아니다



“어둡고 우둔함을 능히 알 수 있는 그것은 결코 어둡고 우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다시 어느 곳에서 초월하고 깨달을 것을 찾겠습니까?
지식인이 이 어둡고 우둔함에 의지하여 들어가야 만약 어둡고 우둔함에 집착하여 스스로 나에게 돌아올 몫은 없다고 여긴다면 어둡고 우둔함이라는 마귀에게 붙잡히는 것입니다. 대개 평소에 지견(知見)이 많으면 깨달음을 찾는 마음이 앞에서 가로막기 때문에 자기의 올바른 지견이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도 역시 밖에서 온 것은 아니며, 또한 별다른 일도 아닙니다. 다만 능히 어둡고 우둔한 것을 알 수 있는 주인공일 뿐입니다.”

어두우니 밝으니 우둔하니 총명하니 하는 것은 이미 사념(思念)에서의 일이다.
어두움을 어두움으로 알고 우둔함을 우둔함으로 아는 것은, 밝음을 밝음으로 알고 총명함을 총명함으로 아는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 어둡고 우둔하다는 생각도 하고 밝고 총명하다는 생각도 하지만, 그것은 어두움도 우둔함도 아니고 밝음도 총명함도 아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어둡고 우둔하다고 생각할 때에 이미 어둡지도 않고 우둔하지도 않은 그것이 드러나 있다.
그것이 어둡고 우둔함도 나타내고 밝고 총명함도 나타내니, 어둡고 우둔함을 떠나서 따로 밝고 총명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어둡고 우둔함도 있고 또 밝고 총명함도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어둡고 우둔하다는 망상에 사로잡히는 것이며, 밝고 총명하다는 망상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이것은 분별심이니, 선에 들어가려면 이런 분별심을 극복해야 한다. 세속에서는 옳고 그름·좋고 나쁨· 네 것 내 것을 잘 판단하는 것을 총명하다고 말하고, 지식인은 이러한 총명함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다. 그러나 선에 들어가려면 이런 총명함에서 물러나야 하니, 분별심에서 하는 일은 전부 망상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식인이 선를 배우려면 도리어 어둡고 우둔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생각(망상)이 일어나 앞을 가로막으면 생각만을 보게 되고, 능히 사유할 줄 아는 스스로는 오히려 보지 못하니. 이와 같이 어떤 망상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그 망상이 스스로와 다른 별개의 무엇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상이 앞을 가로막으면 망상만을 보고 망상을 만들어내는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것이며. 이처럼 분별심이 앞을 가로막아서 늘 취하고 버리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눈이 바깥만을 바라볼 줄 알고 스스로는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눈은 항상 바깥의 다른 대상들만을 바라볼 수 있고 자신을 볼 수는 없지만, 지혜를 가지고 보면 도리어 바깥의 다른 대상들을 바라본다는 그 사실이 바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어리석고 근기가 부족한 중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는 바로 그 사실이 자신은 본래 어리석지도 않고 근기(공뷰)가 부족하지도 않고 중생도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눈이 자신을 자각(自覺)할 지혜가 없으면 다시 따로 자신을 찾아서 헤매어야 하듯이, 사람이 생각만을 따라다니고 생각하는 자신을 자각할 지혜가 없으면 생각한다는 그 사실이 명명백백히 항상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따로 자신의 존재를 찾아다녀야 하는 것이다. 눈은 바깥으로 보이는 차별되는 모양 속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결코 자신을 찾을 수가 없다. 오직 지혜로써 자신을 자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듯이 마음도 생각 속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자신을 찾을 수가 없다. 오직 생각 속에서 찾는 마음을 쉴 때에만 자신의 존재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생각의 입장에서 보면 잘 생각하는 것이 밝음이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어두움이지만, 마음의 입장에서 보면 잘 생각하는 것이 도리어 어두움이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밝음이다.
그리고 마음을 알고 보면 생각하든 생각하지 않든 아무 차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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