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곧 자비의 가르침이잖아요. 불교의 자비는 자아완성의 실현에서 오는 수행의 단계로 절대 사랑이며 평등의 사랑입니다. 만유(萬有)가 동체(同體) 임을 깨닫고 자기 몸을 보살피듯 하는 사랑입니다. 출가 전에는 자비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 내 것 아깝다는 생각 않고 내주는 것을 자연스럽게 행했으니 부처님 제자가 될 종자가 있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불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자비로워야 합니다. 요즘은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해서인지 불자들까지도 조금치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남을 배려하거나 양보하면 손해 본다고 생각하고 자기 것을 나눠줄 생각은커녕 마음에서도 여유가 없어 딱합니다.
그러나 자비의 마음은 자기 수행을 위한 진실적 마음의 표출인 것입니다. 남에게 한량없는 즐거움을 주려는 마음, 어떤 사람이 좋은 일을 하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마음, 어여삐 여기는 마음, 아버지 같은 마음이 자(慈) 요, 일체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참사랑의 마음, 누군가 슬픈 일을 당하면 가슴 아파하고 그것을 없애주려는 마음, 측은히 여기는 마음, 어머니 같은 마음이 비(悲)입니다. 대상이나 경계가 없는 참된 사랑이 자비요, 절대평등한 것이 자비입니다.
범부중생은 탐 진 치 삼독으로 속이 꽉 차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들어가 앉을 자리가 없어요. 그러니 복을 짓더라도 죄는 그대로 있게 되는 것이지요. 복을 짓는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생들의 몸은 삼독의 가시가 꽉 박혀서 썩어 들어가고 있어요. 끊임없이 불타고 있는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 본래의 평상심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수행입니다
나라는 것이 없는데, 내 것, 네 것 하며 싸움하고, 쫓겨다니고 모두들 불안하게 살고 있습니다. 벗고 앉았으면 어때요.
내가 해보니까 부처님이 이르기를, “너에게는 내일이 없느니라” 했어요. 오늘 죽을 수도, 내일 죽을 수도 있어요. 이런 이치를 알고 깨닫는 것이 불교입니다.
어떻게 살다가 어떤 모습 남기려나” 두 개가 서로 의지하여/ 비로소 사람 인자를 이루네 입속에는 날카로운 이빨과 부드러운 침이 있어서 백가지 잡된 것을 모조리 부수어 먹고 한 구멍으로 황금을 배출함이로다. 어느 누가 ‘인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확실히 인생을 알려면, 참선을 통해서 자각(自覺)해야만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12인연법을 깨달았고,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인연이 모여 하나의 육신을 이루었는데, 이 육신을 받쳐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람과 짐승이 다른 것은 지혜가 있고 없음에 있습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좀 높은 차원에 있지만, 본성을 깨닫지 못하여 어리석고 어둡기 때문에 중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중생은 무엇 때문에 사는지를 물으면, 왜 사는지를 잘 모르고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중생은 살기 위해 살지만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떠한 모양을 보여주고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사찰성지에 하루 수십만 관람객이 들어와도 제대로 포교하나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너무 아쉽습니다. 종단 내분과 갈등이 끝이 없으니 언제 적나라(赤裸裸)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는지 아득함을 느낍니다.
“기이하다. 일체중생이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의 덕상을 갖추고 있건만, 다만 망상에 집착해서 능히 깨달아 증득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라는 것도 없고 중생도 없고 죽는 것도 또한 없나니, 만일 이렇게 그 모양을 알면 그는 곧 위없는 사람이 되리.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마음 다 비추고, 두려움 다 없애고 깊은 법 연설하네. 시방(十方)의 한량없는 일체중생들 모든 바른 법의 문(門)에서 모두 편안히 머물게 하네.”
그 마음이 한 법이 되어 맑은 바람이 언제 아름답고 추한 것을 가려서 불어주던가요. 밝은 달이 언제 선악을 가려서 비추어 주던가요. 맑은물 역시 그러합니다. 깨끗해 티가 없고 탈속한 사람은 꾸미지 않아도 훤칠하게 드러납니다. 밖으로 마음 맑은 물 역시 그러합니다.
'심안의 곳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은 이분법적 규정에서 나와야 (3) | 2024.12.11 |
---|---|
불교 인연이란! (1) | 2024.11.28 |
더불어 함께사는 존재 (1) | 2024.11.20 |
법계가 본래 평등함을 아는 실천인데! (6) | 2024.10.27 |
위대한 가피! (3) | 2024.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