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중생제도를 위하여 49년동안 법문을 하셨는데 그 실체는 중생으로 하여금 수행을 통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아라한인 여래(如來)가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은 가아(假我)가 주체역할을 하는 중생이 수행을 통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인 진아(眞我)를 드러나게 하여 그 진아가 주체역할을 하는 득(得)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心者)인 여래(如來)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진아가 드러나 그것이 주체역할을 하는 如來가 되려면 중생심인 중생의 속성을 如來의 속성으로 바꾸는 수행을 해야하고 그러한 수행을 하려면 수행방편을 한가지 선정하여 그것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그것만 생각하는 노력 때문에 다른 경계가 들어오는 것이 차단되는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1.수행의 방향
1)진아(眞我)가 드러나도록 하여 그 진아가 법신(法身)이 되도록 하는 수행을 하여야 한다.
2)속성을 바꾸는 수행을 하여야 한다
3)각종 경계를 차단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
2.수행의 방법
1)중생심인 무기와 번뇌에 함께 대처해야 한다.
2)관(觀)과 염(念)을 함께하는 수행이어야 한다.
3)관법(觀法) : ①결인관(結印觀) ②호흡관(呼吸觀) ③혀붙이기 관(舌觀)
4)염법(念法) : ①염념상속법(念念相續法) ②의심법(疑心法)
3.수행의 단계
1)수다원과
2)사다함과
3)아나함과
4)유여열반(有餘涅槃)의 아라한
5)무여열반(無餘涅槃)의 아라한
1) 진아(眞我)가 드러나도록하여 그 진아가 법신(法身)이 되도록 하는 수행을 하여야 한다.
중생은 진아를 망각하게하는 무기(無記)와 진아를 가려 어둡게 하는 번뇌(煩惱)라는 속성(屬性) 때문에 진아가 주체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 속성의 본질(本質)인 가아(假我)가 주체역할을 하는 삶을 영위하는 존재이다.
중생의 속성 중 무기라는 것은 의식(意識)이 작용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무기는 의식(意識)이 작용하지 않는 중생심이기 때문에 중생은 무기가 진행중일 때에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다만 무기가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러한 상태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무기의 경계는 각성도(覺醒度)를 말하고 이는 뇌간의 망상체에서 생, 주, 이, 멸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중생은 인식할 수 없다.
번뇌라는 것은 중생에게서 일어나는 생각을 말한다. 즉 번뇌는 중생이 색(色), 성(聲), 향(香), 미(味), 촉(觸), 법(法)의 경계를 접하게 될 때에 그 경계가 그것을 받아 들이는 근(根)을 통하여 의식(意識)에 들어오면, 그 경계는 번뇌로서 생주이멸(生住異滅)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번뇌는 인식할 수 있는 중생심이다.
중생과 같이 가아가 주체역할을 하게 되면 가아가 주도하는 번뇌와 무기는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쳐 법(法)이 되고 그 법은 업(業)을 있게 하며 그 업은 과(果)를 받게 한다. 따라서 중생은 영원히 중생고(衆生苦)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에 부처님의 중생제도를 위한 법문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중생들로 하여금 중생고를 벗어 나도록 하기 위하여 진아가 드러나게 하는 수행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금강경(金剛經)에서 그 드러난 진아가 주체역할을 하는 법신(法身)이 되도록 가르치시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중생심인 중생의 속성을 바꾸는 수행을 하여야 한다.
중생은 무기와 번뇌라는 속성 때문에 중생고를 벗어날 수 없게 되어있다. 이러한 중생이 부처님과 같이 대자유인(大自由人)이 되려면 중생자신을 중생으로 묶어놓게 하는 원인 요소인 자신의 속성을 바꾸는 수행을 해야 한다.
즉 중생은 진아를 망각<忘>하게 하고 진아를 가려 어둡게<昧>하는데 이러한 속성을 진아를 불망(不忘)하게 하고 진아를 불매(不昧)하게 하는 속성으로 바꾸는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생의 속성을 바꾸는 수행방법은 수행의 방편을 한가지 선택하여 그것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그것만 생각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면, 그 수행방편이 망각되어지지 않고<不忘> 수행방편이 어둡지 않게 되는<不昧> 단계에 이르러 돈오견성(頓悟見性)하게 된다. 돈오견성하게 되면, 수행방편의 불망과 불매는 진아인 성품(性品)의 불망과 불매로 바뀌게 된다. 여기에서 돈오견성이라는 것은 문득 깨치면서 자신의 성품(性品)을 보게 된다는 말이고 성품을 보게 된다는 말은 자신의 진아인 성품이 드러났다는 말이다. 돈오견성으로 인하여 자신의 진아가 드러나면 수행방편의 불망과 불매는 진아가 망각되지 않는 불망(不忘)과 진아가 어둡지 않는 불매(不昧)라는 진아의 속성으로 바뀌게 된다.
이상과 같이 중생의 속성이 진아의 속성으로 바뀌는 수행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속성을 바꾸는 수행이라는 것은 그 속성의 주체를 바꾸는 수행인데 무기와 번뇌의 주체인 가아를, 불망과 불매의 주체인 진아로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이러한 사실에 입각하여 수행의 진위(眞僞)를 가려 바른 수행의 길을 찾아 가라고 부탁함이 이 법을 펴신 부처님의 소망이다.
3) 각종 경계를 차단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
부처님의 말씀에서 경계(境界)라는 말과 법(法)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뜻을 모르고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계라는 말은 설명을 들으면 일반 중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法이라는 말은 여러가지 뜻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경계(境界)라는 말의 세속적인 의미는 사물과 사물이 서로 맞닿는 점을 경계점이라고 하고 그 맞닿는 점이 선으로 이어질 때에는 그것을 경계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에서 경계라는 것은 육근(六根 :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으로 들어올 수 있는 색, 성, 향, 미, 촉, 법과 무기(無記)에 빠질 수 있는 상황(狀況) 즉 번뇌가 없는 상태에서 각성도(覺醒度)의 분포상태를 말한다.
법(法)이라는 말도 세속에서는 법(law) 즉 법률 또는 방법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에서 법이라고 하면 첫째, 성품이 법신이 된 다음, 법신(法身)이 무념(無念)과 반야(般若)를 구사하는 것을 불법(佛法)이라고 하는데, 이를 법(法)이라고도 한다. 둘째, 육근으로 들어온 경계가 의식(意識)에서 생주이멸(生住異滅)의 과정을 거친 것과 무기의 경계가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친 것을 법(法)이라고 한다. 셋째, 의근(意根)으로 들어오는 경계를 법(法)이라고 한다.
수행자가 수행방편을 한가지 선택하여 그것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그것만 생각하는 노력을 하게 되면 드디어 의근(意根)이 수행방편만 받아들이게 되면서 다른 근으로 들어오는 경계는 차단되는 현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러한 경계를 차단하는 수행이 계속되면 수행자는 어느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수행의 방향과 차단해야 할 경계와 삼매를 알게되면서 스스로 그리고 저절로 팔정도(八正道)를 닦는 수행자가 된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반드시 수행방편 외 각종 경계를 차단하는 수행인 팔정도를 닦는 수행을 해야 한다.
1) 무기와 번뇌에 함께 대처해야 한다.
중생의 속성은 무기와 번뇌이기 때문에 두가지 속성 중 한가지에만 대처하는 수행을 하게 되면 그 한가지 속성이 적어지는 만큼 다른 속성은 증가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행은 속성의 비율에는 변화가 생기게 되겠지만 속성의 합(合)의 절대치는 조금도 변하지 않게 된다. 요즈음 수행자들은 대부분 번뇌에만 대처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수행은 번뇌가 적어지는 만큼 무기의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무기를 조장하는 수행이 된다.
무기도 멍한 무기가 많아지는 수행을 하게 되면, 짐승의 길로 가게 되는 수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수행은 무기와 번뇌에 대처하는 수행을 하여 무기와 번뇌가 수행시에는 수행방편의 불망과 불매로 바뀌도록 하고 돈오 견성(頓悟 見性)하면 진아인 성품의 불망과 불매로 바뀌도록 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 이러한 수행은 수행
방편으로서 무기와 번뇌에 함께 대처하기 때문에 수행중 무기와 번뇌는 절대치가 줄어들고 그 줄어든 영역은 수행방편의 삼매와 삼매의 관성으로 채워져 드디어는 돈오 견성할 수 밖에 없게 된다.
2) 관(觀)과 염(念)을 함께해야 한다.
관법(觀法)은 의근(意根)으로 들어 올 수 없는 무기를 의근으로 들어오도록 하기 위하여 가장 밝은 상태의 무기가
되도록 그 각성도(覺醒度)를 고조시킨 상태에다 수행방편을 결부시키게 되면 결부된 그것이 의근으로 들어와
의근에서 수행방편이 망각되어지지 않는 경계, 즉 수행방편이 불망하는 경계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염법(念法)은 의근만 열어 놓고 수행방편만 들어오게 함으로써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등의
오근(五根)으로는 경계가 들어오는 것을 차단되게 하여 수행방편만 생각하게 되면, 드디어는 의근에서
수행방편의 드러남이 어둡지 않는 경계, 즉 수행방편의 불매의 경계(不昧)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수행을 함께 하게 되면, 그 두가지는 의근에서 동일한 주기(cycle)로 교대하는 현상인 수행방편의
삼매(三昧)상태에 들게된다.
그리고 삼매상태에서 경계를 만나게 되면, 삼매의 관성(慣性)상태에서 경계에 대응하게 된다.
3) 관법(觀法)
관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초보자일 때에는 여러 방법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반드시 해야할 것으로는
① 결인관(結印觀)
부처님의 결인중 선정인(禪定印)이 대표적인 예로써 선원에서 스님들이 하는 관법이다. 이는 엄지손가락 끝에 각성
도의 고조를 유지시키는 방법이다. 선정인을 하고 있을 때 순간이라도 각성도의 고조를 놓치게 되면 모양이 비뚤어
지게 되므로 선정인을 바로 함으로써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하는 방법이다. 이외에도 염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거나 한 손으로 엄지와 중지를 붙이고 있거나 무릎에 중지의 끝을 붙이고 있는 방법들도 모두 결인관에 해당한다.
② 호흡관(呼吸觀)
호흡은 항상 각성도가 고조되는 호흡이어야 한다.
중생들의 보통 호흡은 저절로 하게 되므로 각성도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각성도를 고조시킬 수 있는 수행자 호흡을 익혀야 한다.
③ 혀붙이기 관(舌觀)
입천정에 혀끝을 약간 뒤집어 말아 붙여서 그 뒤집어진 혀끝으로 윗턱을 약간 밀어올려 윗니와 아랫니가 1-3mm
정도 떨어지게 하는 관법인데 이는 뒤집어진 혀끝에서 무기의 각성도를 고조시켜 그것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4) 염법(念法)
염법은 수행방편만을 염하여 수행방편만이 의근(意根)으로 들어오게 함으로써 육근(六根) 중 의근 이외의 다른
오근(五根)으로는 여타의 경계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수행방편의 불매(不昧)를 이끌어내는 수행법이다. 염법은
염념상속법(念念相續法)과 의심법(疑心法)이 있다.
염념상속법(念念相續法)은 수행방편을 염함이 단절되지 않도록 간절하게 하여 간절성의 삼매에 들게하는 수행법
인데 그 목적은 추번뇌를 막는데 있다. 염불, 주력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의심법은 수행방편을 의심하여 심각성의 삼매에 들게하는 수행법으로 간절성의 삼매로는 막을 수 없는 세(細)
번뇌를 삼매의 밀도를 고밀도화시켜 막겠다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와 같이 염념상속법과 의심법은 그 목적하는 바가 다르므로 수행자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수행에 임하여
그것을 시의적절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 만약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수행에 임하여 그것을 잘못 쓰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수행의 단계를 인정하지 않는 착각도인이 되거나 자신의 건강만 해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경전의 여러 곳에 다음과 같은 수행의 단계를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단계에
알맞는 수행이 아니면 부처님의 제자가 아닌 줄 알아야 한다.
1) 수다원과
①수다원과의 의미
수다원과는 금강경에 언급되어 있는 수행단계 중에서 첫번째 단계이며 성의의 흐름에 들어 갔다는 의미로 입류(入流)라 하며 중생의 흐름을 거스른다고 하여 역류(逆流)라고도 한다. 수행자가 항상 정신차린 상태에서 수행방편만을 생각하는 노력을 계속하게 되면 드디어 각성이 고조된 무기와 수행방편이 결부되어 수행방편의 불망(不忘)으로 인하여 수행방편의 불매(不昧)를 이끌어내게 되면서 불망과 불매 이 두가지가 동일한 주기(cycle)로 의근에서 교대하는 상태인 수행방편의 삼매가 있게 된다. 그리고 다른 경계가 들어옴으로 인하여 삼매가 지속될 수 없을 때에는 삼매의 길이에 비례하여 삼매관성이 있어주게 된다. 수다원과는 삼매와 삼매관성이 어묵동정간이나 몽중에도 이어지는 수행단계를 말한다. 수다원과는 의식이 있는 때에는 수행이 거의 완벽하게 이어지는 수행과위이다.
수다원과의 수행자는 수행상에 있어 다음 두가지의 경우에 수행의 단절이 발생하게 되는데, 첫째는 이 단계의 수행자가 삼매에서 경계를 접하게 되면 삼매관성 상태에서 경계에 대응하다가 그 경계가 끝나면 순간적으로 무기에 빠졌다가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감지하고 다시 삼매에 들어가게 된다. 즉, 삼매관성이 끝나는 즉시 삼매에 들지 못하고 삼매관성이 끝날 때에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서야 삼매에 드는 것이다. 둘째는 숙면시에 공부가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②수다원과를 넘기 위한 수행자의 호흡
수다원과의 수행자가 사다함과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행자의 호흡을 터득하여야 한다. 수다원과의 수행자가 각성도의 고조를 호흡에 의지하여 그것에다 수행방편을 결부시키게 되면 삼매관성이 끝날 때 무기에 빠지지 않고 바로 삼매에 들 수 있게 되어 수다원과를 지나서 사다함과에 이르게 된다.
2) 사다함과
①사다함과의 의미
사다함과는 일왕래(一往來)라고 번역한다. 수행자가 수행방편의 삼매와 삼매관성이 어묵동정간에 일여하고 몽중에도 일여하게 된 이후에 수행방편을 자신의 호흡에 동반하는 노력을 한 결과 드디어 깊은 잠 속에서까지 삼매가 한결같이 이어지게 되는 것을 숙면일여라고 한다. 이와같이 숙면시에도 수행이 한결같아지는 수행단계를 사다함과라고 한다. 사다함과위는 수행자가 도달하기 가장 어려운 고비이다.
사다함과의 단계에서는 삼매상태에서 갑작스런 경계, 예컨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뒤에서 등을 탁 친다든지 벼락이 치는 때 등의 경우에 깜짝 놀라면서 삼매가 순간적으로 깨어져 무기에 빠진 다음에 그 경계가 번뇌로 생주이멸을 거친 후에 삼매관성이 붙어주게 된다. 즉, 순간적으로 무기에 빠진 후에 '억'하고 놀라는 번뇌를 일으킨 다음 곧바로 삼매관성의 상태에서 상대방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다함의 수행자는 갑작스런 경계를 접하게 되면 삼매관성이 시작되기 전에 삼매관성이 붙어주지 않는 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경계에 접할 때 삼매관성이 시작되기 전에 그 경계가 순간적으로 번뇌가 되는 것을 세번뇌(細煩惱)라 한다. 사다함과는 찰라간에 무기에 빠졌다가 세번뇌인 한 번뇌만 일어나므로 이를 일왕래(一往來)라고 한다. 사다함과 이전의 수행자는 똑같은 상황에서 이와 같이 찰라간에 경계가 번뇌가 되지만 이를 감지하지 못한다.
②사다함과의 수행방법
사다함과에서 이상과 같은 세번뇌(細煩惱)를 평정하고 수행을 한 단계 높이려면 관법으로써 각성도를 높이는 상태에서 수행방편인 화두(話頭)를 의심하는 방법인 의심법(疑心法)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 때를 당하여 비로소 의심법으로 수행하여 삼매의 밀도를 고밀도화(高密度化)시켜야만 세번뇌를 평정할 수 있게 된다.
수행방편을 의심하는 의심법은 두가지의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의심이 생길 경우 심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염념상속법(念念相續法)의 삼매가 간절성의 삼매라면 화두를 들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할 때의 삼매는 매우 심각하게 되는 심각성의 삼매이다. 사다함과의 세번뇌는 염념상속하는 삼매로는 아무리 간절하게 해도 막아낼 수 없다. 오직 의심법으로서 삼매를 고밀도화시켜야 삼매관성도 고밀도화 되어 갑작스런 경계에 접하더라도 무기에 빠질 틈이 없게 되어 세 번뇌를 평정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의심의 돌파구를 찾으려는 특성으로서 이에 의하여 무기와 번뇌가 다 평정된 아나함과의 수행자로 하여금 돈오라는 돌파구를 찾게 하는 것이다.
화두의 종류에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무'자나 '정전백수자'와 같이 사다함에게 주는 수행방편으로서의 화두가 있고, 둘째는 무기와 번뇌가 모두 평정된 아나함에게 깨침을 유도하기 위해서 주는, 소위 줄탁용 화두가 있고, 세 번째는 '삼처전심'등과 같이 무기와 번뇌가 모두 평정된 상태에서 일어난 바른 깨침인 돈오인지의 여부를 점검하는 점검용 화두가 있다. 수행자의 공부가 사다함과에 이르게 되면 선지식은 숙면일여의 검증법으로서 수행수준을 점검하여 진위를 가린 연후에 수행자에게 다음 단계의 공부를 제시하게 되며 이때 첫 번째 유형인 수행방편으로서의 화두를 주게 된다.
이와 같이 의심법은 사다함과 이후에 사용해야 한다. 만일 사다함과에 이르지 않은 수행자가 의심법으로 수행하여 돈오견성(頓悟見性)했다는 견해를 갖고 이를 굽히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람은 부처님께서도 제도할 수 없는 착각도인이요, 사마외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3) 아나함과
아나함과는 불환(不還)이라고 번역한다. 사다함과에서 세번뇌를 평정하고 아나함과위에 이르면 모든 무기와 번뇌는 수행방편의 불망과 불매로 평정되기 때문에 중생으로 되돌아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되돌아 갈 수 없기 때문에 불환이라고 한다.
아나함과는 비록 중생의 속성인 무기와 번뇌가 모두 수행방편의 불망과 불매로 평정되었지만 불망과 불매의 대상이 수행방편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진아인 성품이 드러나지 못하므로 수행방편을 밀어낼 수 있는 극적인 경계가 등장하여야만 아나함을 벗어나게 된다.
4) 유여열반(有餘涅槃)의 아라한
아나함인 수행자가 극적인 경계에 의하여 지금까지 수행방편에 가려져 있던 진아(眞我)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문득 드러나게 되면 이를 돈오견성(頓悟見性)했다고 말하고 이러한 존재를 유여열반의 아라한이라고 한다. 성품이 드러나는 것은 극적인 경계가 들어오는 순간인 찰라간이므로 돈오(단박에 깨닫는다)한다고 말하며 성품이라고 말하는 진아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드러난 것을 성품을 본다고 하여 견성이라고 하며 이러한 존재를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라고 한다.
번뇌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즉 경계가 의식에서 생주이멸한 번뇌와 사상인 번뇌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번뇌가 되는 어떠한 경계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근(根)을 통하여 의식에 들어오면, 그 경계는 번뇌로서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쳐 법(法)이 된다. 즉, 경계 그 자체가 의식으로 들어와서 번뇌가 된다. 이러한 번뇌는 아나함과에 이르면 모두 평정된다. 두번째, 사상 중의 어는 상(相)과 상응할 수 있는 경계가 육근 중 어느 근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 경계가 번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와 상응하는 어느 사상(四相)이 번뇌로서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쳐 법(法)이 된다. 이와 같은 사상인 번뇌는 돈오하더라도 없어지지 않을 수 있다.
아나함에서 돈오하여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가 된 존재는 대부분 세가지 관을 철저히 통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상(四相)이 남아 있다고 하여 남음이 있는 열반 즉 유여열반(有餘涅槃)의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한다. 사상이 남아있는 유여열반의 아라한은 결인과, 호흡관 및 설관을 철저히 터득해야만 사상(四相) 중 어느 상(相)과 상응할 수 있는 경계가 들어오더라도 돈오하여 드러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 그 경계에 대응하여 반야(般若)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유여열반의 아라한에게 보시행을 통하여 사상(四相)을 극복하도록 함을 금강경(金剛經)에서 가르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금강경에서 유여열반의 아라한에게 보시행을 하라고 말씀하신 의미 속에 세가지 관 터득이 들어있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5)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아라한
무여열반의 아라한에는 다음의 세가지 유형이 있다.
①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아라한
법화경에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백억나유타겁(劫) 전에 이미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아라한인 여래(如來)가 되셨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부터 2600년경 전에 중생제도를 위한 원생(願生)으로서 인도에 태어나셔서 6년 동안의 수행을 한 뒤 어느날 새벽에 반짝이는 별을 보는 순간 돈오하셨으며 이후 49년 동안 중생제도를 위한 설법을 하셨다.
중생제도를 위하여 오시는 부처님은 몸이 바뀌더라도 여래심(如來心)을 잊어 버리고 다시 중생심(衆生心)으로 되돌아 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처님이라도 몸이 바뀌게 되면, 과거 자신이 했던 수행에 관한 모든 것을 자세히 기억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중생제도를 위하여 다시 한번 수행의 시작부터 그 끝까지를 일관되게 해보시고 중생제도에 임하셔야만 중생들에게 수행에 관한 모든 것을 자세히 가르칠 수 있게 되며 수행에 관한 어떤 질문에 대해서든 즉문즉답(卽問卽答)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님에게도 6년간의 수행경험이 필요하셨던 것이다.
② 부처로서 출현하기에 앞서 복덕을 닦기 위하여 나오는 보살
이러한 보살은 전생에 이미 무여열반의 아라한이 되었지만 부처님과 같이 수행의 시작부터 그 끝까지를 다시 한번 해 봄으로써 수행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복덕(福德)을 닦는 일에 임하게 된다. 이러한 보살이 부처님과 다른 점은 금강경의 설법을 듣거나 보아야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알게되고 복덕을 닦기 위한 보시행(布施行)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보살은 수행에 있어서 더 닦아야 할 것은 없기 때문에 무학(無學)이라고 한다.
③ 사상을 극복한 무여열반의 아라한
유여열반의 아라한이 세가지 관을 철저히 통달하여 사상(四相)을 극복하게 되면, 남음이 없는 열반이라는 뜻의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아라한이 된다. 그리고 아나함에서 돈오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가 수행의 과위(果位)에 이르게 될 때부터 결인관, 호흡관, 그리고 설관에 통달하여 사상(四相)인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도 극복할 수 있었더라면 금강경(金剛經)의 설법을 보거나 듣게 되면서 바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이르게 된다.
무여열반의 아라한은 미래에 부처로서 출현할 것을 대비하여 보시행으로써 복덕(福德)을 쌓게 된다. 자신이 부처로서 출현하게 될 때에 그 승단(僧團)에 복이 되게 하기 위함과 자신이 다음에 제도할 중생들과 인연을 짓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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