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마음 밝히는 등불을 자성 깨쳐 부처 이룬다”!
백 년 동안 쌓은 재물은 하루아침에 허물어지지만 3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동안 보배가 됩니다.
부처와 조사스님들은 ‘명심견성성불(明心見性成佛)’이라고 했습니다.
거친 마음을 다스려 맑게 밝히면 자성을 볼 수 있고 자성을 확연히 깨치면 곧 부처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마음 닦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흔히 부처가 다 된 것처럼 말하는 자들이 있는데 막상 경계에 처하면 살림살이가 다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자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옳고 그른지는 스스로가 알고, 부처님의 말씀을 자기 식으로 잘못 해석해서 말하면 사도요, 마도가 되니 신앙생활은 제대로 해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훌륭한 눈 밝은 선지식을 찾아 법을 묻고 되묻고 공부한 것을 점검받으면서 나아가야 엇길(수마)로 빠지지 않는 법입니다.
자장율사께서는 “하루동안 계를 지키며 살다 죽을지언정 계를 파하면서 백 년을 살지는 않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율이란, 보다 근본적으로는 ‘맑고 밝은 마음으로 진리를 실천하라’는 경책입니다. 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늘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하루 3번 참회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스님들만 수행자가 아니라 계를 지키고 진리를 참구해 나가는 자는 모두 마음공부하는 수행자입니다.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못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재물이나 사랑에 눈이 멀면 부모형제도 보이지 않게 되니 수행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내가 저지른 행위의 결과는 내가 받게 된다는 인과응보의 도리를 명심하고 선업도 악업도 놓아야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돌려 말하자면 본시 선업도 악업도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사람만 좋으면 되는 게 아닙니다. 사람 좋다고 해서 육도윤회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까닭이지요. 또한 수행자는 모름지기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서원을 세워야 합니다. 목표가 없는 수행은 나침반이 없는 항해와 같아서 얼마가지 않아 좌초하고 맙니다. 방일하거나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히말라야 설산에 ‘한고조’라는 새가 살고 있었는데
이 새는 너무 게을러서 낮에는 실컷 놀기만 하다가 밤만 되면 “아이고 추워라, 추워. 날만 새면 꼭 집을 지어야지”하고 다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새면 날씨가 따뜻하니 노래 부르고 놀다가 또다시 추운 밤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이 시대의 베짱이) 곤경에 처하면 부처님을 찾다가도 형편이 좋아지면 술집이나 도박장을 기웃거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산에서 만난 도적은 쫓아내기 쉬우나 자기 자신의 마음도적은 쫓아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마음도적을 항복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수행자가 복만 쌓고 지혜를 닦지 아니하면, 마치 코끼리가 비단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아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옛날 지혜와 복을 닦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동생은 복을 닦고 형은 지혜를 닦았는데 형은 동생이 불쌍하고 동생은 형이 불쌍해서 서로 복과 덕을 닦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먼저 죽었는데 하루는 형이 길을 가다가 코끼리가 비단옷을 입고 있어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을까” 하고 혜안으로 보니 바로 자기 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형이 법문을 해 주니 동생이 뉘우치고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머리를 담벼락에 부딪혀 죽어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중생구제를 제대로 하려면 복덕(福德)과 지혜를 동시에 닦아야 합니다.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서는 어렵습니다.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도 큰 서원을 세운 다음에는 복덕과 지혜를 함께 닦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그리고요 글만 읽어보고 무시로 들락거리는 사람들에게는 위와 같이 실천하는 덕목으로 삼으시고 실천해 옮기시면 선근공덕을 쌓으시는 기초가 됩니다.
나무 석가 모니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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