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못 속입니다
“돈, 벼슬, 재주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3대 요소이지만
절에서는 자비와 지혜가 제일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는 십 시(十施)가 있는데
첫째는 법시(法施)라 하여 중생에게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둘째가 두려움을 없애주는 무애보시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약을 지어주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해 주는 것
물질로 하는 재시(財施), 밥을 해 준다거나
청소를 해주는 등 몸으로 하는 신시(身施)
눈으로 미소를 지어 주는 안시(眼施)
얼굴 가득 웃음을 지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안시(顔施)
편안한 자리를 내어 주는 좌시(坐施)
방을 내 주는 방시(房施), 좋은 말을 해주어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는 언시(言施)가 있어요
남에게 이익이 되고 깨우침의 길로 이끌어 주는 말은 살아있는 말이요
남에게 불이익을 주고 마음을 헤치는 말은 죽은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한 마디를 해도 살아있는 말, 기쁨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십시는 마음만 먹으면 실천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말은 미 사어와 수식 어을 화려하게 도배하여
잘하는데 실천행이 부족해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
수행자의 삶이라 생각하고 부단히 살아갑니다
참선이 좋다 염불이 좋다고 말하지 않는다
“참선과 염불은 둘이 아니며 깊이 들어가면 다 똑같아요
염불은 최고 진리의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참선이든 염불이든 사경이든 자기에게 맞는 것을 선택하여
극진히 하면 됩니다. 많은 경전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을 얼마나 깊이 받아들여 실천하는가가 중요하지요
도(道)란 거친 것이 삭아져서 고요함에 가닿는 것입니다
고요함에 이르지 못하면 밝음도 보지 못합니다
마음을 쉬고 쉬어서 더 쉴 수 없는 곳까지 다다랐을 때 공부가 된 것입니다.”
천겁을 지나도 이것은 옛것이 아니요
만년을 자라도 이것은 그보다 더 긴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수행의 깊이는 감히 짐작할 수 없기에
날마다 새롭게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한다
“자비심은 관음이요, 지혜심은 문수로다. 청정심은 석가요, 평상심은 미타로다.”
마음속에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석가모니 부처님,
아미타 부처님이 다 갖추어져 있음을 뜻하는 바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잘 단속하는 것이 도에 이르는 길임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내딛는 발걸음마다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것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세상 살기가 힘드는데, 신경 안 쓰고 수월하게 사는 법이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장난 삼아 객담으로 한 말이지만 가끔 우리는 자기 생활의 어려움을 이런 식으로 토로하는 수가 있다.
확실히 세상은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되어주지를 않는다.
아무리 착한 마음으로 이상적인 꿈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현실 속에서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던가.
인생을 괴로움으로 설명하는 부처님의 교설 가운데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求不得苦)’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 마음대로 안 된다는 말이다.
사람이 사는 생활에 있어서 마음대로 안 되는 불만이 항상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세상살이는 불만의 연속이다. 또한 이것은 원초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욕망을 가지는 자체가 불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마음에 번뇌가 없어져야 열반에 들어간다고 한다.
또 수행적인 면에서 하는 ‘마음공부’라는 말이 있다. 사실 마음을 공부하는 것이 불교요 그것이 바로 인생의 공부다.
마음공부가 다 된 사람은 마음이 항상 비워져 있다고 한다.
마음이 고요하여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따라서 욕망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되면 마음 공부가 성취된 것이다.
이른바 도를 깨친 도인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 된다. 오늘날 제도권 사회 속에서 평범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의외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다.
개인적인 신상의 문제에서 공적인 입장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마음에 아픔을 느끼게 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생긴다.
세상은 누구나 바라보기만 하여도 느낌이 오는 법이다.
마치 하늘을 바라볼 때 쾌청하거나 구름이 끼였거나 비가 오는 등의 일기 변화에 따라서 사람의 느낌이 다른 것처럼,
시절을 따라서 장소를 따라서 감상은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이렇게 감상적 느낌이 나를 편하게 하는가 하면 나를 불안하게 하고 괴롭게 하는
경계의 위순(違順)을 통해서 내 살아가는 삶의 애환이 점철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우여곡절 많은 세상을 우리는 스스로 자위하고 살아야 한다.
남에게 위안받으려 하지 말고 스스로 위안하고 살아가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나를 달래고 타이르면서 산다는 말이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좌절할 필요는 없다.
슬프다고 하여 인생을 염세적으로 비관하고 살 필요도 없다. 화가 난다고 하여 노발대발할 필요도 없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야 한다.
무심해져서 살아야 하는 법이다. 슬플 때는 눈물 한 방울 흘리고 나면 그뿐이다.
힘들 때 한숨 한 번 쉬고 나면 그뿐이다. 세상은 끝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는 것이다.
사실 욕망에 들뜨지 않을 때 실제로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본래 우리에게는 욕망이 없었다고 부처님은 가르쳐 주셨다.
본래 우리는 살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죽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업에 매여 구속되다 보니 살려고 발버둥 치고 죽으려고 환장하는 짓들도 하는 것이다.
자포자기하여 스스로의 목숨을 끊기도 하는 것이다.
“살지 마시오! 또한 죽지 마시오!” 어느 날 원효 스님은 이렇게 외친 적이 있었다.
생사를 벗으나 살지 않는 듯 살고 죽지 않는 듯 죽는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삶이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서 자고 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민요처럼 전해지는 옛시조 가사다.
우리는 스스로 타이르고 달래가면서 자기의 길을 쉬임 없이 가야 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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