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도 대신 못하는 마음공부”
한치의 빈틈도 찾아오는 산중 초막은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
선(禪)이란, 설명해서 되는 게 아니다.
만상 만물(萬象萬物)이 모두 선을 갖추고 행하고 있는데,
그것을 말로 하면 흠집이 나게 됩니다.
선이란 원래 누구나 하고 있는 것인데 선을 이야기로 드러내게 되면 도리어
두 머리(二頭)에 떨어지는 결과가 됩니다.
선은 (머리로) 이해하거나, 언어문자로 알 수 없습니다.”
선을 언어로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지만,
마치 이 자리에서 같이 차를 하고 있지만, 나는 차를 마시지 않았고 그대는 차를 마셨는데,
내가 ‘차맛을 나한테 주시오’라고 해서 전해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아니 다른 누구에게나 전해줄 수 있는 것이 선이라면 선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건 주듯 주어버리면 좋겠지만 주어서 될 것도 아니고 말로 될 것도 아닙니다
선을 공부는 스스로 체험해서 알 뿐 ‘사람 사람이 자기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음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세인들은 마음이란 이름을 만들어 놓은 틀에 집착합니다.
마음이 무엇인지 마음의 실체는 어떠한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내가 내 마음을 바로 보고 바로 알면 부처가 되는 것, 이게 바로 선입니다
본래 마음은 “중생들은 외형적인 생활의 흐름에 따라갈 줄만 알지,
돌이켜 볼 줄을 모릅니다. 흐름에 묻혀 살다 보니, 본래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말할 수 없는 갈등, 시기, 투쟁, 욕심 등 중생의 업을 짓는 쪽으로만 삽니다.
그것은 단지 본래 마음을 돌이켜 보지 못하고, 세상의 한쪽 면만 보기 때문입니다.
생활하는 모든 속에서 흐름을 따르되 따라가는 이놈이 무엇인가를 돌이켜서
안으로 자신을 찾아 깊이 생각해 보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정말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모든 것이 고통이 아니고 생활 자체가 安樂國입니다.
세상 흐름에 매이지 않고 공부하려면
“흐름을 따라가면서 나를 잃지 않으려고 공부하는 것이 바로 참선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흐름만을 따라가다가 속기만 합니다.
일체 모든 생활을 마음이 주재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이놈’을 잃고 삽니다.
이놈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항시 순간포착을 해서, 이놈이 무엇인지 생각해 낚아채야 합니다
“일체 모든 생활 속에서 살아가는 모양은 천태만상으로 다르지만,
그렇게 하는 놈은 하나입니다.
이 몸을 운전하는 이놈이 무엇인가를 일할 때마다 분명하게 챙겨서 생각하고
무엇일까 찾아내면서 사회생활을 병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자기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고 존재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살아가는 안목이 투철해집니다.
모든 생활에 진정한 행복과 영원한 행복 그리고 편안함을 알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