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저 허공 속에 꿈을 꾸며 빛나는 별보다
아련히 보이는 별이 되어 꿈을 찾는 나그네
내 마음 걸망에 담아 저 허공 속에
유성이 흐르는 길을 따라
彼岸의 길을 가는 나그네
정처없이 가야 하는 저 피안의 언덕을 바라보며
저 굽이쳐 흐르는 험난한 苦海의 바다에
조그만 떡갈잎배를 띄워 六塵에 지친
나그네의 몸을 실어 잠깐 쉬어간다
人生도 저 험난한 바다도
허공 속에 길잃은 별들의 영혼도
三毒山에 울어 지친 새들도 나의 가냘픈 번뇌의 떡갈잎마져
저 끝이 없는 길을 따라 般若의 길을 찾아 떠난다
멀고먼 고갯길 따라 삼독산을 넘고 오욕의 山을 넘어
無生化가 피어 있는 山으로 간다
저 넓고도 넓은 十方의 외로운 들판에 無明草
그 無明草에 꽃이 필때
저 아득히 멀어져 간 외로운 하늘가에 잊혀진 無明草
또한
잊혀지지 않는 무생화를 피우고 있다
법보시!!
그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불교에서는 우연이란 없다고 말한다. 그것 또한 그 사람의 인연이요 업이다.
사람의 목숨이 아무런 인연도 없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연으로 죽을 수는 없는 노릇, 생사라는 것은 정확하게 인연 따라오고 갈 뿐이다.
그 인과응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과관계라면 이해가 가지만,
사람과 물질 사이에서 어떻게 인과관계가 성립할 수 있는가?
그러나 사람과 물질 사이에서도 인과관계와 인연법은 성립한다.
이 우주의 법칙은, 이 법계의 인연법이라는 법칙은 인간에게만,
혹은 생명이 있는 유정물(有情物)에게만 한정되는 법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뿐 아니라, 유정 물뿐 아니라 모든 무정물(無情物)에게까지 확장되는
우주의 법칙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유정물 뿐 아니라
무정 물에게도 자비와 존귀함과 따뜻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보내야 하는 이유다.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기고 인연 따라 소멸한다. 우연은 없다.
그렇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더 엄밀히 말해 우리 모두는 큰 틀에서 인연법이라는 법계의 큰 진리의 흐름 속에서
나고 죽으며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니까.
불교에서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 나무와 풀과 개미와 이끼들조차
모두가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며, 그들을 결코 인간 아래에 두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과 인간은 다르지 않다.
인간이 인간에게 죽음을 당할 수 있듯, 인간이 동물에게도 죽음을 당할 수 있고,
식물에게도, 심지어 위에서 보았듯 무정 물에게도 죽임을 당할 수 있다.
그들과 인간은 인연법의 차원에서 서로 동등하다. 우주적인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이 법계 우주가 각본을 쓰고 그 차는 단지 조연을 했을 뿐이다.
아니 법계와 공동감독에 공동주연의 연극이라는 편이 옳겠다.
어쨌든, 주연이었든 조연이었든 법계의 일부분인 나를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며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할 것이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무정물 또한 인간과 유정 물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존재이며, 존귀하고 신비로운 존재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유정무정 유형무형(有情無情 有形無形)’의 모든 존재가
다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무정이란 나무나 돌 같이 감각이 없는 것을 말하며, 무형이란 형체가 없는 것을 말한다
그 모든 것에 불성이 있다. 신성이 있다
옛 스님들은
“푸른 대나무숲 모두가 진여(眞如) 요,
피어 늘어진 노란 꽃은 반야(般若) 아님이 없다.”라고 했다.
[보장론(寶藏論)]에서는
“불성은 모든 것에 가득하고 풀이나 나무에도 깃들어 있으며,
개미에게도 완전히 퍼져 있으며, 가장 미세한 먼지나 털끝에도 있다.
불성이 없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현대 과학에서도 유정 물과 무정 물을 정확히 구분 짓기 어렵다고 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유정 물, 다시 말해 생명체는 DNA라는 복제 가능한 유전물질 지니고 있어
생식활동을 통해 자손을 만들어 내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무정 물, 무생물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와 광우병의 원인체를 규명하면서 밝혀진
프리온이라는 원인물질이 유전자가 전혀 없는 단백질에 불과하지만
생물체내에서 증식하고 전파되어 확산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부터
생물과 무생물의 구분은 전면적인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때 비로소 생명과학자들은 생물과 무생물, 유정 물과 무정 물이란
경계가 따로 없음을 깨닫게 된다.
유정, 무정이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분류이자 분별이었을 뿐이지,
본래 그렇게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큰 한 바탕으로부터 비롯되어
여러 원인과 결과에 의해 만들어진 모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을 밝힌 미국의 프루지너 교수는 97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유정 물이나 무정 물이라는 것은 단지 이름일 뿐,
그리고 그에 따라 우리 인간이 더 귀하고 천하다고,
더 우월하고 열등하다고 나누어 놓았을 뿐이지, 그 본바탕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
아무리 하찮다고 생각되는 무정 물일지라도 그로 인해 내가 죽음을 당할 수도 있고
또한 그로인해 내가 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옛 스님들은 무정 물이 언제나 법을 설하고 있지만
그것을 듣는 것은 오직 성인들 뿐이라고 했다.
하찮다고 생각되는 발아래의 꽃을 신비로운 마음으로 지켜보기 위해 고개를 숙임으로써
나에게 날아오던 화살을 피하게 될 수도 있고, 밤길에 차를 타고 가다가 불쑥 나타난
토끼 한 마리를 피하려다가 사고가 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내 운명을 갈라놓을 수도 있다.
내 운명을 변화시키는 것이 반드시 인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찮다고 생각했던 무정 물이 내 생사를 결정지을 수도 있고,
내 운명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이 우주의 모든 유정 물과 무정 물들이 모두 나와 연결되어 있다.
어느 하나도 하찮은 것이 없다. 더 귀하거나 천한 것은 없다.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것은 없다.
내가 소중한 것처럼, 사람이 소중한 것 처럼, 똑같이 나무와 풀과 산과 흙과
심지어 자동차와 의자와 집과 컴퓨터 또한 소중하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섰을 때처럼, 존경하는 스승 앞에 섰을 때처럼,
부처님 앞에 섰을 때처럼, 그런 마음으로 모든 존재 앞에 서라.
유정 물이든 무정 물이든 모든 존재 앞에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마음으로 다가서라.
일체 모든 존재를 존중하며 감사하고 찬탄하며 존귀하게 여기라.
이 세상의 생명 있고 없는 모든 존재에게 무한한 공경심으로 엎드려 절하라.
매 순간 세상 만물에게 기도하라.
유정 물과 무정 물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안다면, 그 모든 것들이 인연법의 진리 안에서
동등한 입장으로 나와 인연을 짓고 있음을 안다면,
세상에는 더 이상 존귀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바로 그때 우리의 삶은 경이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이 세상을 향한 지고한 공경심, 모든 존재를 향한 평등한 자비심,
이것이야말로 모든 수행자의 이 세상을 향한 마음이다.
학창 시절에 원소, 원소주기율표라는 것을 본 적이 있지 않은가.
그때 나는 아주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간 학교에서 가르쳤던 것은 인간이 우월하다는 것
도저히 인간과 자연, 인간과 무정 물은 하늘과 땅 차이일 수밖에 없었는데,
인간과 자연, 유정 물과 무정물을 이루는 근본 원소는
동일한 것이라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동일한 원소들이 ‘어떤 인연으로 모였느냐’에 따라 인간도 되고, 동물도 되고, 식물도 되고,
심지어 자동차도 되고, 빌딩도 되고, 집도 되고, 물도 된다.
이것은 유정물과 무정 물이 그 어떤 차별도 있지 않다는 반증이 아닌가.
우리는 결국 동일한 것들이 모여서 겉모습의 차이를 만들어 낼 뿐이지,
근원적인 어떤 높고 낮거나, 귀하고 천하거나 하는 차별은 없다.
나는 때때로 많은 사람들 틈에서 호젓하게 벗어나 홀로 산 길을 걸을 때
아니면 낯설고 인적 드문 여행지를 거닐 때, 그럴 때조차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그 어떤 ‘존재’와 함께 하고 있다는 미세한 느낌을 받곤 한다
우리가 완전히 혼자 있을 때조차 사실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우주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대지와 흙과 함께 있는 것이며,
내 눈에 보이는 모든 유정 물, 무정 물이
내 곁에서 따뜻한 도반으로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이러한 통찰 속에서 우리의 삶은 매 순간이
공경심과 찬탄과 신비 속에 머문다. 어찌 이런 세상이 신비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사소하거나, 하찮거나, 귀하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이러한 통찰은 우리의 삶을 모든 존재를 향해 활짝 열려 있게 해 주며,
모든 존재를 향해 존중과 찬탄과 감사와 공경심을 갖게 해 주며,
모든 존재를 평등한 부처로써 섬기고 시봉 할 수 있게 해 준다.
자동차를 타고 멀리 출장을 갈 때 자동차를 향해 동료의식을 가지고, 도반 의식을 가지고
존중하며 감사하고 공경스런 마음을 보내라.
내 마음이 자동차를 향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을 향한 한없는 자비심과 공경심으로 넘칠 때
오늘의 운행은 안전하게 법계에서 자동차와 공동으로 도울 것이다.
설령 오늘 자동차 사고가 날 업이었다고 할지라도
모든 존재를 향한 깊은 존중과 감사와 공경심으로 조금 더 주의 깊게 운전을 함으로써
그 차량사고의 인연이 소멸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이나 식물도 사람 마음이 존중과 사랑과 자비로왔을 때
그 결정이 아름다워지고, 식물도 고요한 파장을 보낸다고 하지 않는가
또한 사람 마음에 따라 세포와 원소의 차원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그러니 모든 기도의 핵심인 감사와 존중과 공경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에게 그 주위의 모든 유정 물, 무정 물은
아름답고도 청정한 파장과 세포와 결정을 보여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감사와 공경심으로 충만한 이가 운전하는 차량이
욕심과 화와 질투로 가득한 이가 운전하는 차량에 비해
사고가 날 확률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자세가 운명을 바꾸고 업을 바꾼다는 말이다.
업장소멸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불교는 운명론이나 숙명론을 거부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그 어떤 업일지라도, 그 어떤 과보일지라도
마음에 따라, 기도와 수행과 복덕을 얼마나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완전히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받아야 할 업장을 뒤에 받을 수도 있고,
다른 방법으로 보다 미세하게 받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침 공양을 하기 전에 물과 쌀과 야채와 수저와 식탁과 이 집에게 감사하라.
길을 걸으며 길가에 피어난 들꽃과
보도블록과 신발과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에 무한한 공경을 보내라.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컴퓨터와 의자와 책상과 볼펜과 자판기와 책들과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도와주고 있음에 감사하라.
이처럼 무정 물조차 나보다 못할 것이 없는
법계의 스승이며, 도반이고, 소중한 길벗이라면 하물며 사람들 사이의 차별이겠는가
더 귀한 사람, 더 천한 사람, 더 중요한 사람, 덜 중요한 사람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아무리 위대한 성인일지라도, 바보나 정신병자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목련존자는 신통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지만
이 생에서의 인연이 다했음을 알고 이교도들의 돌에 맞아 죽었다.
그것이 바로 목련의 인연이었음을 바로 보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또한 반대로 아무리 하찮게 느껴지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에게서 내 인생의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아주 나이 어린 어린이가 내 생명을 구해줄 은인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원수였던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니 사실은 내 인생에 귀하고 천한 사람은 없다.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거나, 좋거나 싫다고 정해진 사람은 없다.
모두가 똑같은 비중으로 존중받아 마땅한 내 삶의 부처요, 관음이고, 내 생명의 귀의처다.
귀한 사람에게 귀한 대접을 하는 사람은 평범하다.
그러나 천한 사람에게 그 본질을 알고 귀한 대접을 하는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의 이치를 몸소 깨닫고 실천하는 수행자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 행하는 존중을 보내라.
나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에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을 주라.
살아있는 지혜라는 것,
깨달음의 실천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마음을 보내주는 것,
지금 내 앞에 있는 바로 그 존재에게 나의 모든 공경심을 바치는 것,
나와 함께 있는 모든 무정 물들에게 조차 찬탄과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모든 수행자의 세상을 향한 차별 없는 열린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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