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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의 곳간

인욕과 지족

 

참고 견디는 것이 제일 장사요, 족함을 아는 것이 제일의 부자고 병 없음이 제일의 이익됨이며
좋은 벗이 제일 친한 이요, 열반이야말로 제일의 즐거움이니라.

이 중에서도 인욕과 지족은 누구에게나 가슴 깊이 새겨두어야 할 가르침, 모름지기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스스로 족할 줄 알고 마땅히 참을 줄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참을 줄 모르면 화를 불러오기 마련입니다. 원망으로써 원망을 갚으면 마침내 원망은 쉬어지지 않아요. 오직 참음이 원망을 쉬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욕을 행복의 열쇠라는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인욕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우리의 삶은 그렇지 못함 누구에게도 지려하지 않으며, 내 행복을 위해 남을 힘들게 합니다.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어요. 문제는 다 자신의 내면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일어나는 탐심과 진심과 치심에 따라 행동하고 말하거든요. 평생을 삼독심이 원하는 대로 끌려 다니다가 인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그러나 인욕이라는 것은 바로 탐·진·치 삼독을 여의는 것이고, 이는 곧 생활 속의 수행인 것입니다.

지족은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만족할 줄 아는 지혜입니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부자라고 할지라도 지족 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그 사람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의 재물과 돈을 쌓아놓고도 더 많은 이익을 바라는 것이 과연 행복이겠습니까.
진정한 행복은 재화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것에 있어요.

자연을 보세요. 산에는 새가 있고 강에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새는 숲에 둥지를 트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고,
물고기는 연못을 유유자적 노니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요. 그런데 인간들은 숲에 있으면서 연못을 얻으려 하거든요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을 앞세우면서 만족에 있다한들 만족할 수 있을까요?
자연은 사람들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어떤 작용을 하더라도 그저 그렇게 있을 뿐, 달라지는 것은 만족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욕심입니다. 자연이 스스로 만족을 알 듯 작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지니면 웃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지족을 모르는 이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런 이가 나누며 살리는 만무합니다. 자기만 잘 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 과연 옆에 있는 거지가 눈에 보일까요?
그러나 지족하면 보시의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게 됩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진짜 부자는 아닙니다. 그런데 재산 많은 것을 부자라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불쌍한 사람입니다. 재산이 많아서 불쌍한 것이 아니라 만족할 줄 모르고 더 많은 재산을 모을 생각만 하기 때문에 불쌍한 것입니다. 이롭게 쓸 줄 모르기 때문에 진짜 부자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를 공부하면 진짜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흔히 생각하는 재물의 부자는 아니지만,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부자는 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지족 제 일 부’라고 했으니, 이것이야말로 행복한 부자가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이라면 모름지기 인욕과 지족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이유는 인욕과 지족에서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청정한 마음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본래 성품을 드러내는 힘도 인욕 하는 가운데 지족을 알아야만 생기는 것이지요.

몸이 있고 마음이 있다보면, 어떠한 느낌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것이 또 다른 마음을 내는 원인이 된다.
그럴 때마다 극하게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잘 살펴 조절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상태가 평정심을 잃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이고 평정심이 없으면 극단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이어져 고통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기쁘고 즐겁다 " 하더라도 자신이 너무 극하게 기뻐하여 몸과 마음이 들떠 있는지 살펴야 한다.
"외롭고 슬프고 우울하다" 하더라도 자신이 너무 극하게 가라앉아 몸과 마음이 쳐져 있는지 살펴야 한다.
이렇게 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원수를 내 가족으로 착각하게 되며, 내 친한 이를 원수로 여기게 된다.
또한 버려야 할 것을 간직하게 되고, 간직해야 할 것을 버리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고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몰라 되려 상대를 원망하게 된다. 이것들은 허물로 다가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위험요소가 되며 고통이라는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니 익숙하지 않아도 날마다 잠자기전 5분이라도 하루를 살피는 명상을 한다면 도움이 된다. 이러한 명상들은 마음을 조절하는 미세한 힘이 되며 이것을 마음 살피는 "정지력"이라 한다.

거울을 보며 대하는 자신이 한치의 꾸밈도 없는 내 모습 이듯이. 세상을 보는 또는 상대를 대할때 느껴지는 갖가지 마음 역시 거울 속 자신을 보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한치의 꾸밈도 없이 자신이 만들어나는 마음임을 인정하고 그렇듯 내가 내 자신을 대하는 마음도 너무나 중요하다.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고난과 행복이 따르는 거 같다. "자신을 과소평가 하지 말자"
상대를 해하는 일이 아니라면 망설이거나 두려워 말고 하고자 하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누군가를 해롭게 하는일이 아님에도 일이 되지 않는 것은 스스로가 망설임이 있었고 두려움이 있었으며, 자신을 무능하다고 미리 판단하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바르다.. 바르지 않다 를 어떻게 알 것인가?
바르게 사는지 보려면 지금 나의 행동을 보면 된다. "나만을 위하는지 중생을 위하는지" 거울에 비친 자신과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해보라 묘하게 드러난다. 갖가지 그럴싸한 핑계로 합리화시켜 마음 쓰지 않고 행동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그저 그렇게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지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삶이 아니다. 지금도 않된다면 앞으로 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언제 행동으로 옮겨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만을 위한 도둑질을 한다면 그 만한 과보가 뒤따를 것, 중생을 위한 봉사를 한다면 그 만한 과보가 뒤따를 것이다. 그들을 위한 그 과보는 불안과 두려움 없는 평온이요. 누군가를 시기하지 않아 적이 사라지는 평화이다..

하지 않는자는 게으름이 원인이고,
하는 자를 '위대한 수행자'라 부릅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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