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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없는 법의 말씀

집착에 이끌려 종노릇 하지마세요

 

 

고정관념 틀에 이끌려 주인자리 뺏기지 말고 마음공부하세요!
너희들이 고정관념이 만구 불 변의 법칙이라고 믿고 따라다니고 있잖으냐!  저 눈사람도.....

무슨 생각이 일어나던지 생각이 일어나고 무엇인가, 육 근을 통해서 알음알이가 움직일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곳에서 화두를 드는 것뿐이여. 망상이 일어난다고 조금도 걱정할 것이 없어. 망상 일어나는 그 찰나에 그대로 놔둔 체 턱 이뭣고, 화두만 거각하면 되는 것. 학식이 있고 없는 것도 상관이 없고, 똑똑하고 안 똑똑한 것도 없고, 남자니 여자니 따질 것도 없고, 출가 재가도 상관이 없어. 앉았을 때나 섰을 때나 슬픈 생각이 일어날 때는 슬픈 생각에 오래 잠겨있지 말고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속이 상할 때도 속 상한 생각에 왜 오래 머물러 있냐는 그 말. 속 상한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이뭣고' 세상에 이보다 더 간단하고 쉬운 법이 어디가 있느냐, 온갖 괴로움으로부터 이기고 없애는 방법이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가 있냐,

그렇게 해서 자꾸 거각(擧覺)하고 또 거각하고 "망상 때문에 잘 안 들린다 화두가 타성일편이 안된다."라고 걱정할 시간이 어디 있냐 안되면 다시 들면 그만이고, 망상이 일어난 줄 알면 이뭣고. 이뭣고 이 공안, 무자 화두하는 이는 무자, 정전백수자 하는 분은 정전백수자. 알 수 없는 이단만을 자꾸 거각해서 회광반조를 하시고 거기에 무슨 망상이 붙으며 붙어봤자 그거 그냥 놔둔 체 화두만 들면 망상은 자취가 없어지는데. 이렇게 정성을 들이고 노력을 하는 것인데 그럼으로써 거기에 공안을 타파하고 확철대오를 하는 것이다.

이 도리는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몸으로써 경험을 하고 깨달음으로써 우리에게 증명을 해주신 것이야. 이 세상에 이것 밖에는 믿을 것이 없고 이것 밖에는 할 것이 없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자식 낳기를 원하고, 재산이 없는 사람은 재산 갖기를 원하고, 명예나 권리가 없는 사람은 갖은 수단을 써서 그런 것을 구하지만 마음먹은 데로 구해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설사 구해졌다고 해도 그건 영원성이 없고 잠시 그러다가 또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가는 것,

그런데 이 일대사 문제는 자꾸 하고 또 하고 하면 아무 맛없고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만, 그 속에 신심이 나고 환희심이 나고 분심이 나고 해갈수록 더 발심이 되는 것. 내가 어쩌다 이런 좋은 법을 만났을까, 내가 이 법을 안 만났으면 내 신세가 어떻게 되었을까,
해를 거듭할 수록 이렇게 신심이 굳건해져 가고. 그렇다고 해서 급한 생각을 낼 필요가 없어. 급한 생각을 낸다고 해서 공부가 더 잘되는 것이 아니다. 초발심해서 참선을 시작한 사람은 초발심에 강렬한 신심으로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일라 그러거든. 초발심자가 그만한 분심이 있어야 하고 그만한 열의가 있어야 하기는 하지만, 차츰차츰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여법하게 해나가다 보면 그런 만용적인 우격다짐식의 그런 신심이 차츰 순화가 되고 그래서 이 몸뚱이와 생각을 완력으로 몰아붙이고 들볶고 생각을 너무 지나치게 막 몰아대고 하는 그런 것이 차츰차츰 순화가 되어서 정신을 올바르게 가다듬고 나가는 묘한 관을 스스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까지는 정말 참 열심히 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서 그럭저럭 하다 말다 해가지고선 안 되는 것입니다.

한번 본심왕(本心王)을 배반한 이래로 몇 번이나 삼악도에 들어갔더냐. 오늘 번뇌에 물든 번뇌염을 씻어버리고 인연 따라 엿을 의지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원래 본심왕이었는데 그 왕을 등져버리고 떠돌이 신세가 되어서 삼악도로 육도윤회를 돌고 돌면서 갖은 고초를 당하고 금생에까지 무량겁을 겪어왔을 뿐만 아니라, 내생에도 무량겁을 두고 거듭될 신세가 다행히 불법을 만나고 정법을 만나서 우리가 본심왕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면 이건 참 50억 인구 가운데 가장 행운아라 할까, 참 행복한 삶을 받아 낳다고 할 것입니다.

이 정법, 최상승법,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이 한 생각 한 생각, 한 걸음 한 걸음을 헛되이 지내지 아니하고 본참화 두를 잘 거각하고 단속하고 회광반조를 함으로써 우리의 본고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 고향을 모를 때는 갈 곳도 없고 가봤자 별 목적이 없어 그러니 우선 잘 먹고 보자, 잘 입고 보자. 나중에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우선 부자로 살아보자, 좋은 차도 가져보자 하지만 고향이 있는 곳을 알고 돌아가는 길을 알았다면 한시바삐 고향길을 향해서 계속 걸어야 해, 입는 것도 얼어 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먹는 것도 굶어 죽지 아니하면 족하고 어떻게라도 한걸음이라도 빨리 고향을 향해서 걸어가는 것 밖에는 어디다가 시간과 힘을 허비할 것이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았지만 실지로 가보면 많은 장애가 있어.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못 돌아가게 하는 장애가 얼마든지 있단 말이야. 물이 막힐 수도 있고, 산이 막힐 수도 있고, 다리가 끊어질 수도 있고. 또 가는 길에는 도둑놈도 있고, 사기군도 있을 수 있더라.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많은 마구니들이 우리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를 친다. 그럴 때 어떻게 그 마장을 극복하고 나가느냐? 그건 참 대단히 중요할 일입니다.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 마왕 파순이다 하고 나오는 경우는 없어. 방해 친 사람이 친구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나와 인연 없는 사람은 나를 해치는 법이 없어, 반드시 나와 인연이 깊은 사람이 직접 간접으로 나를 해치게 되는 것이고, 6.25 때 인민군 몰려올 때 그 집 덕을 본 사람이 원한을 품고 사람을 죽이고, 알게 되면 친하게 되고 친하게 되면 원수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옛 조사도 원수를 만들고 싶지 않으면 사람을 알고 지내지 말아야, 사람을 알고 지내면 정이 들고 친하게 되면 그것이 나중에 원수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부터 누구든지 원수처럼 봐야겠다.

그런 분은 안 계시겠지. 인간은 다 정으로 살아간다. 이 정이라 하는 것이 부모자식 간의 정, 부부간의 정. 정이라 하는 것이 정이 없을 수가 없지만 정이라 하는 것이 참 고약한 것이다.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면치 못하고 그런 정 때문에 많은 신세를 망치고 큰 일을 그르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정이라 하는 것은 너무 깊이 관여하고 깊이 관여하다 보면 거기 얽매이기 되는 거예요. 얽매였다 하면 헤어날 수가 없어. 그래서 자식이나 부부를 원수로 볼 필요는 없지만, 죽고 못살고 그러지 말고 반만 덜어서 참선하는 데다 정열을 쏟고, 그저 세속적인 정은 담박하게 사는 것이 좋다.

담박하게 살고 피차 인생은 만나면 헤어지게 돼, 생이별 아니면 사이 별하게 되는 것이거든, 그러니 너무 정을 붙일 것이 못돼, 속세 인연이 되어서 만나게 되었으니 정법을 믿고 정심으로 담박하게 살아갈지언정 거기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면 도도 못 닦고 결국 육도윤회의 근본 밖에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생의 업연으로 만난 것이 남편이고 자식이고 아내야. 업연으로 만났기 때문에 좋은 일보다는 근심걱정 속상한 일 더 많아. 내가 지어서 만났고 내가 지은 업연으로 받게 된 것이니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고, 대번에 끊을 수도 없고 또 그렇게 끊는다고 하면 가정이 파탄나고 큰일 나는 것이니까. 정법을 믿는 마음으로 해나가면 자연히 모든 것이 다 풀려가는 거예요.
속상한 일이 생겨도 속상한 마음을 함부로 노출시키고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면 하루도 가정이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니, 속상하고 언짠하더라도 그 생각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스스로 그 마음을 안정해 나가면 자연히 다 해결될 것이다. 억지로 참고 또 참는다고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참고 참다가 쌓이고 쌓여서 터질 때는 자기도 감내를 못하고 막 일통을 저지르고 무서운 결과가 오는 것이니까,

참는다기 보다는 그 생각을 돌이켜. 숨을 깊이 들어마셔가지고 내쉬면서 이것이 무엇인고.... 몇 번만 그렇게 하면 그 치밀어 오르던 게 스르르 가라앉게 되거든, 모든 사람과의 관계 모든 일을 그렇게 처리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자연히 거기서 스스로 하심(下心)을 하게 되고 스스로 하심을 하게 되면 만복이 다 돌아오는 것이고, 하심을 못하고 그놈을 진심(嗔心)으로 해결하려 하면 백가지 장애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생사의 바닷속에서 살아가는데, 그리고 이 세상이 전부 생사의 바다요, 우리의 마음속도 생사심의 바다 속이다.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그 생사대해인데, 그 생사대해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면 죽는 것, 어느 귀신이 잡아가는지 몰라, 정신만 탁 차리면 반드시 살아갈 길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 호숫가에서 버스가 뒤집어져가지고 다 죽었는데, 그중에 참선하는 비구니 스님이 턱 화두를 들고 차가 뒤집어져가지고 물에 빠진 그 속에서 화두를 들었단말이다. 그러니까 환하니 문이 보여 헤쳐 나와 보니까 애기가 물속에 떠서 허우적하고 있어 그래서 애기를 건지고 두 사람 딱 살아났는데. 지금 그 비구니 스님이 살아있었어요. 그래서 용궁에 갔다 왔다 해서 별명이 용궁스님인데 화두를 들면 그런 경우에도 살아나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아납니다.

틀림없이 생사 속에서 정념을 잃지 아니하면 바로 그 사람을 대력보살이라 했다. 정념이라 하는 것이 뭣이냐. 턱 화두를 드는 것, 지금 우리는 뭣이 정이고 사고 따질 겨를이 없이, 화두 하나만 챙겨버리면 사심이 거길 붙지 못해, 그렇게 하다 보면 저절로 순일무잡한 타성일편 경지에 들어가면 거기 망념이 붙들 못하니까 무념경지에 들어가서 탁 의단을 타파해 버리면 자기 본래면목을 보는 것이다.

따로 정진을 하려고 마음을 내지 말고 자꾸 화두만 들어. 화두만 들면 저절로 망념은 거길 붙지 못하고 거기에 무슨 삿된 생각이 붙을 것인가, 조 실 스님 법문 가운데 의리선을 하지 마라, 사량분별로 따지고 하지 마라, 아무 소용이 없어. 1,700 공안을 따져서 자기 나름대로 결론을 얻어서 이 공안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고 저 공안을 물으면 저렇게 대답하고 제법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법담을 척척하고... 어디다 쓰는 것이냐 그 말이, 아무 소용없거든,

물론 금생에 어린 나이로 선방에 나오셔서 정말 생명을 바쳐서 하기도 했지만, 어떤 스님은 조 실 스님 보고 전생공부라고 하신 것을 듣기도 했지만 하여튼 금생에 여법하게 해 놓은 공부는 금생에 설사 깨닫지 못했어도 전혀 헛것이 아니고 내생에 일찍 툭 터지는 것, 여법하게 하는 것뿐, 깨닫고 못 깨닫는 것은 기다릴 것도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가질 것이 없리, 설사 일생동안 참선해서 공안 하나를 대답 못해도 상관이 없고, 여법하게 정진해 나가면 반드시 금생에 타파하고, 설사 금생에 확철대오를 못해도 금생에 숨 거둘 때에도 턱 화두를 들고 이단 하나로써 숨을 거두어보라 말이다.

게으른 사람이 항상 뒤로 미뤄, 지금은 자식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딸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영감 때문에 공부를 못하고, 영감만 여의어 버리면 선방에 가사라, 밤낮 뒤로 미루고 핑계를 대거든, 그것이 게으른 사람이 하는 짓이다. 발심을 철저히 깨닫지 못하고 무상을 철저히 깨닫지 못한 것. 누구 탓할 필요 없이 아직 시집 장가도 안 간 처지라면 출가하면 되겠지만, 이미 다 저질렀으면 어쩔 수가 없고 부처님은 결혼도 하셨고, 아들도 낳으셨고, 왕이 될 처지에서도 일도양단으로 끊으셨고 그런 모범도 보이시긴 했으나 내가 만약 가정을 버리고 출가하라 하면 당장 나한테 빗발치듯 전화가 와서 야단이 나기 때문에 그렇게 권고는 안 합니다. 본인이 발심해서 출가한 거야 아무도 막지 못하는 것이고, 뒤로 미루지 말라 이겁니다.

이렇게 해서 생사의 바닷속에서 생각생각 돌이켜 이뭣고를 하면 그 속에서 한 공부는 정말 생사를 이길 수 있는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시끄럽고 복잡한 속에서 익혀놓은 공부는 좀 어렵지만 정말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을 받지 않게 되고 정말 힘 있는 공부를 하게 될 뿐 아니라, 복과 혜를 겸해서 받게 되고 마움공부까지 그 속에 다 포함되는 것, 그러니까 뒤로 미룰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턱턱 챙겨나가라, 그렇게 공부를 해놓으면 금생에 출가를 하던지 선방에 나오시면 문제가 없고, 금생에는 영영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내생에는 정말 출가해서 오직 이 한 일만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여건하에 태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나무 석가 모니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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