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땅 위에 사람을 세운다 세상을 사는 순리가 있다면 그것은 믿음에 의해서 사람 관계가 좋은 사이로 유지되는 것일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먼저 사람의 마음에 감정의 균열이 생기며, 의심과 조바심이 일어나 불안감마저 조성되게 된다.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질 때는 스스로의 마음에 믿음이 생길 때이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내가 너를 믿는다는 자기의 예상대로 상대의 행위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두고 흔히 쓰는 말이지만 알고 보면 그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불교에서의 믿음이란 범어 ‘스라다(sradha)’를 어원으로 가지고 있는 말이다. 이 말은 몰랐던 사실을 알고 났을 때 내 마음속에 ‘아! 그렇구나.’ 하는 이해와 확신이 생기는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것이 그런 것이었다.’ 하고 이해했을 때 고개를 끄떡이며 수긍이 가는 상태의 마음을 믿음信이라 한다.
그래서 경전에서는 믿음을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흐린 물이 맑아지듯이 마음에 혼탁한 생각이 없어지고, 맑아진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보살본업경에 “믿음이란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信者令心淸淨)라고 정의 내려놓은 구절이 있다. 믿음의 문제를 종교에서는 신앙이란 형태로 변화시켜 때로는 맹목적으로 무조건 믿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믿음의 본질을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서 비롯되는 잘못된 맹신이 되고 만다. 맹신적인 신앙이란 미신과 다를 바가 없다. 이런 믿음은 인간을 이해하는 덕이 결핍되기가 예사다. 사람이 지니는 인덕(人德)이 있는 것처럼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신덕(信德)이 있는 법이다. 여기서 말하는 ‘덕’이란 교양 있는 태도로 남을 배려하면서 사람 사이의 화목을 잘 이루어내는 것을 말한다. 믿음이 사람의 마음에 갖춰지는 덕이라면 믿음 때문에 불화가 조성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대 사회의 병폐를 일컬어 불신의 시대니 불화의 시대라고 말한다. 사회의 각 계층이 불화를 이루고 있고, 종교 간에도 불화를 이루고 있다. 다원화 사회의 조화와 협력이 부족하고 계파별로의 이기적 아집이 남을 무시하고 일방적 자기 우위를 주장하려는 어처구니없는 형태가 판을 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굳이 그 이유를 분석해 말하라면 진정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스스로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자기의 내면 정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탐욕과 우월주의로써는 남에게 호의를 베풀 수 없고, 사회를 위한 진정한 봉사를 할 수 없다. 사람은 자기의 믿음 속에 바로서야 한다.
내 마음의 땅에 올바른 신근(信根)이 박혀 참된 진리를 따르는 추종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자신의 마음부터 닦아가는 자기 수행이 선행되어야 하며, 눈을 한 번 돌려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져 보아야 한다. 거울을 보듯이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밝혀 놓은 내용이 증일아함경에 나온다. 이 가운데 사람들을 믿음의 땅에 서게 하겠다는 말이 있고, 보살의 마음을 내지 않은 사람에게 보살의 마음을 내도록 하겠다는 말이 있다. 믿음의 땅에 사람을 세운다는 말은 진리의 세계 안으로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겠다는 뜻이고, 보살의 마음이란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정신 곧 남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뜻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길이 있다. 동시에 다른 사람도 그 사람이 가는 길이 있다. 나는 내가 갈 길을 잘 가고 남은 남이 갈 길을 잘 가도록 서로 위해 주는 것이 인간적인 모습이다. 서로의 가는 길이 다르지만 고속도로에 나들목이 있듯이 내 길과 남의 길도 인간의 마당에서 통해지는 나들목이 있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이 소통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다만 서로가 스스로의 신념을 굳건하고 아름답게 가지고 내 길을 가면서 남이 잘 되도록 기도해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내가 나를 믿게 되는 것이다. 나를 바로 믿으면 남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은 스스로 알아진다. 믿음의 공덕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믿음이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다.” (信爲道元功德母) [화엄경] <현수품>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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