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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없는 법의 말씀

관념 불교!

관념 불교!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끊으면 부처되는 길도 그만큼 가까워져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사람이다. 최고의 지혜를 갖춘 부처로서 생각하건데 인간이란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존재이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소유하려다 보면 도리어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우리는 흔히 본다. 사람의 마음은 사람에게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가장 싫어하는 네 가지의 상(相)이 있는데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다.
이 네 가지의 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며 또한 자신이 이것으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세존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신 말씀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이란 존재는 한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 다른 또 한 가지를 원하게 되고 욕망은 급기야 두 배수로 늘어나 나중에는 엄청난 탐욕을 지니게 된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고통도 상대적으로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 네 가지를 완전히 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그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그 중에서 단 한 가지만이라도 완전히 끊으려고 노력한다면 그 밖의 것은 자연스럽게 끊어지게 된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나’라는 존재는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으로 구성된 ‘아상(我相)’이다. 인간은 이 다섯 가지 존재의 실상을 믿고 생활하기 때문에 강한 집착이 생겨나게 되고, 급기야 이것을 중심으로 탐, 진, 치가 일어나 오욕과 일체의 번뇌가 생겨나게 되고 일체의 악업이 조성되어 윤회의 고뇌를 면할 수 없는 동시에 부처의 길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욕망에 사로 잡혀 사리분별을 명철하게 하지 못해 우주의 본체를 바로 보지 못하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그 다음은 인상(人相)이다. 주관을 성립시켜 놓고 보면 객관이란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듯이 ‘나’라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남’이라는 것은 의례히 따라오기 마련이다. 마치 물체가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따라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중생상(衆生相)은 공간적 인식개념으로 볼 수 있는데 다시 말해, 세계라는 횡적인 관념에만 사로잡혀 맑고 밝은 본지(本地)를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끝으로 수자상(壽者相)이 있다. 공간적인 관념에 사로잡히지 말도록 당부하였다면 의례히 시간적인 문제가 대두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오래 살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리게 되면 주관과 공간과 시간이라는 일체의 인식작용에 사로잡혀 집착과 탐욕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상에 매이게 되면 오히려 고통을 얻게 되어 수명이 짧아 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네 가지의 관념에 사로잡히게 되면 모든 [생각] 망상과 모든 번뇌의 쇠사슬 속에 얽매이게 되어 올바른 지혜를 바로 보지 못하게 된다. 결국 부처의 길도 그만큼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이 네 가지의 상에 대해 집착을 끊게 되면 부처의 길도 그만큼 가까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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