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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

살아 계시는 부처님!

세존이시여!

내 곁에 살아계시는 부처님이 계셔서 좋다. 그 부처님은 때론 웃음으로 때론 묵묵하게 때론 호통으로 때론 실천으로 때로는 그저 마음으로 가르침을 주신다. 그래서 살아 계신 것이다. 그 부처님은 바로 나의 스승님 이시다. 원수로 보이지 않아서 스승이고, 축생으로 보이지 않아서 스승이고 귀신으로 보이지 않아 스승이다. 사람으로 그것도 비구의 모습으로 보여주시기에 스승이시다. 천만 다행이다.
내가 눈이 침침하지 않아, 이상한 모습으로 보지 않는것이 다행이고, 내 견해가 어두어서 스승을 헛것으로 착각하지 않기에 다행스런 일인 것이다. 내 습관되어진 업식에 따라 보이는 것이다. 가령 술을 좋아하면 불단의 감로수도 술로보이고, 술마시는 스승이 멋진 스승으로 보일것이며, 노래듣길 좋아하면 법문도 그저 한가락 노래로만 들릴것이다. 그저 자신의 업식되로만 보이는 것이니 스승이 의심되거든 아래 한 가지 만으로도 충분히 스승을 모실수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명예나 재물의 이익만이 아닌 오로지 중생을 위해 모든것을 털어 주는 분이 계시다면 살아계시는 부처님이라 여기고 공경해도 될 것이다."_()_

사람들아!
남의 허물 꾸짖기 좋아하지 말고 스스로 내 잘못을 되살펴 보라, 만일 이를 알고 이와 같이 행한다면 근심, 다툼이 영원히 사라진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그 행복은 얻을 수 있는 것인가요? 이 문제는 아마도 인류시원人類始原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어온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한 문제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하여 사람들은 많은 일을 꾀해왔고 그 결과물이 우리가 맞이한 오늘의 현실이라고 말한다면 부정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삶에 대한 욕망과 환상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보다 밝은 내일을 욕망하는 것은 비단 인간뿐만이 아닙니다.
이웃집 강아지도 그러하고 밀림의 맹수도, 개천의 물벌레도 마찬가지지요. 그뿐 아니라 한 알의 씨알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긴 가뭄과 장마를 견뎌내는 (오만스런 인간들에 의하여 억울하게도 잡초라고 치부되지만) 이름 모를 작은 풀 한 포기에서도 행복에로의 욕구는 발견됩니다. 만물의 본능이랄 수 있는 행복에로의 욕구가 없었다면 이 우주에 남아 있을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이 될까요? 아무튼 만물은 행복하고자 욕망하며 그 욕망이 지금의 그 존재 그 모습을 있게 했다고 보는 것은 과히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대다수의 인간들은 만 년 전에도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었고 눈부신 과학의 발달을 이룩한 오늘날의 인류도 만족할 만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다음날 이 욕구가 충족된다는 믿음을 가질 수 없음도 자명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인류가 추구해온 행복이라는 가치관이 제대로 설정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입니다. 너무 외향적이고 말초적인 물량충족에 치우쳐 있었다는 말이죠. 이제까지의 가치관 자체가 인류가 지향하는 행복을 방해하는 큰 병입니다. 이 병을 치료하고자 한다면 이 병을 만들기까지 걸린 시간과 인간 지능이 쌓아올린 금자탑이라고 하는 물질문명을 이룩하기까지 쏟은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이 병은 반드시 치유되어야 합니다.
이제까지 욕망하고 추구해온 가치관들이 수정되지 않는 한 인류의 최대 염원인 행복과 평화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청운의 꿈이었던 사회정의와 봉사 따위를 떠올려 보지만 그 속의 풍토와 자신의 허황된 욕망은 갈등과 불안만 조장합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불행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피동적으로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많은 인간들의 삶이 위에서 살펴본 예의범주에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온통 불행하다는 신음소리입니다. 그럼에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그칠 줄도 모르고 가던 방향으로 계속 달려가니 가련한 일이지요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첫째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요, 둘째는 항상 미소를 지을 것이요, 셋째는 말을 아끼라고 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일체만유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부처님께서 미몽을 깨우쳐주시니 감사한 것이요,
부모님이 나를 낳아 키워주시니 감사하지요, 나를 욕하는 사람이 있으면 입 아프게 꾸짖어주는 것이 감사하지요,
나를 때리는 사람이 있으면 손 아프게 채찍질해 주는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될 수 있으면 말을 아껴야 합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보아도 못 본 척 항상 침묵하고 말을 조심하면 나쁜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인데, 들은 대로 본 대로 말을 쏟아낸다면 날마다 시시비비에서 벗어날 길이 없으니 행복할 수가 없지요.”

선원에서 죽비를 들고 돌아다니다 졸고 있는 수행자의 어깨를 힘껏 세 번을 내리친다.
그 죽비에 맞는 순간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이 한 생각이 번쩍 하고 일어났다. 마음 작용은 한 바탕 꿈이요 한 마음 쉰 것이 곧 잠깬 것이라. 꿈과 잠깸이 한결같은 가운데 마음 광명이 대천세계에 비추도다. 이 우주에 오직 나 하나뿐이라고 그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해야 한다

용력가중배 사력십중배(用力加重倍 死力十重倍)
힘을 쓰면 평소보다 몇 배의 힘이 나오고, 죽을 힘을 다하면 평소보다 열배의 힘이 나온다는 말이지.
사람이 신심을 내면 안 되는 일이 없어요.”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 학생이 입학할 때 마음으로 공부한다면 우등생으로 졸업 못할 사람이 없고, 결혼할 때의 마음으로 산다면 싸울 일이 없고 이혼할 일이 없을 것이며, 회사원이 입사할 때 마음으로 근무한다면 회사도 발전시키고 진급도 할 것이다.

하는 일이 시들하게 느껴질 때면 첫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돌이켜볼 일이다. 첫 마음으로 잘 살고 있는지 점검한다면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새로운 날이기에 우리는 날마다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나무 석가 모니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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