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돌아보기' 석가모니 부처님 명호에서 ‘석가’는 ‘능인’으로 모든 것을 다 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인격의 최고를 의미합니다. ‘모니’는 ‘적묵’으로 침묵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구하는 게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구하는 게 있다는 것입니다. 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다른 사람을 보호하고 남이 나를 향해 불같은 성질을 내더라도 돌이켜서 스스로 침묵을 지켜라.
이러한 이치를 잘 지키면 스스로 이롭고 남에게도 이롭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침묵하고 참는 사람에게 자신이 이긴 것으로 여겨 오히려 험담을 하니, 만일 참음의 과정이 없었다면 존경받는 인물로 자리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참음. 침은 닦지 않아도 자연히 마르게 되니, 그런 때 여러분은 본생담에 나오는 인욕 인간이 침묵하지 못하는가 하면 마음속에 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비희사(慈悲喜捨)
네 가지 무량한 마음으로 중생을 감싸주는 일은 바로 계학의 대승적 기초가 됩니다. 욕망으로 담을 쌓고 극도의 이기심으로 자기를 지키려는 현대산업사회에서 적극적인 지계(持戒)의 실천은 맑고 투명한 용기로 지켜나가야 합니다. 욕망이 가득한 세상 지계의 실천은 더욱더 중요합니다. 선정(禪定)을 수습하는 일 또한 삼독을 제거하고 우리의 본래면목을 되찾는 일입니다. 회광반조(回光返照) 하늘을 올려다볼 잠깐의 여유도 없이 급격하게 변하는 정보산업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세간법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유한의 조건과 욕망의 밀도를 근거로 지탱하며 또 평가합니다. 속도는 더 빠른 속도로, 욕망은 더 큰 욕망으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유한한 조건에 얽매어 있는 현상을 불교에서는 유루법(有漏法)이라 합니다. 칼이 칼로써 영원한 승리를 얻지 못하듯이 욕망은 더 큰 욕망으로 이기지 못하며, 작은 시간을 큰 시간이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유한한 것은 유한한 것으로 정복할 수 없습니다. 선정을 수습하는 일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선정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장애를 초월합니다. 빠른 것을 더 빠른 속도로 보려 하는 것보다 정지된 고요함이 오히려 빠른 것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달리는 사람은 외경(外境)을 바로 보지 못합니다. 조금 느린 걸음은 보다 조금 더 세상을 내다볼 수 있습니다. 완전하게 정지된 경우 세상은 또렷하게 보입니다. 출렁이는 호수는 풍경을 비추기는커녕 외경을 어지럽힙니다. 고요한 수면은 삼라만상을 완벽하게 비춥니다. 선정은 보지 못하는 곳까지 보게 하며 가지 못하는 곳까지 이르게 합니다.
우리를 억압하는 시간과 공간은 오히려 마음의 범주를 객관화한 조건일 뿐 입니다. 선정을 수습하는 일은 정보화 사회에서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마음의 빛은 그 무엇보다도 빠르며 마음의 광명은 그 어느 빛보다도 밝습니다. 지혜는 수습하기보다 발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계와 선정이 불가분의 공력을 갖듯이 선정은 지혜를 수반합니다. 마치 백촉의 등잔이 백촉의 밝기를 내듯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있어서 정 등(正等)과 정각(正覺)은 불가분의 이치입니다. 개인의 구복을 위하여 기도하거나 중생을 상해하거나 괴로움을 주면서 나만의 해탈을 위해 선정에 들려한다면 바른 선정에 들 수 없거니와 바른 지혜를 얻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없는 깨달음은 대원력과 원행 없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석가세존과 모든 부처님에게는 반드시 본생담이 있게되는 것입니다. 분별의 인간 지능이 고도화되어 생명마저도 만들어내는 첨단생명공학의 시대입니다. 분별의 오류를 영원히 넘어선 선정의 수습으로 얻어진 금강반야의 대지혜광명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빛을 발해야 할 때입니다. 삼학을 수습하여 무상정등정각을 얻으신 모든 부처님은 반드시 중생을 제도합니다. 중생이 없는 부처님은 마음만 있고 몸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불교에 있어서 자비를 강조함은 이타의 선행이나 세간적 구제의 방편 때문만은 아닙니다. 깨달음의 완성은 반드시 자비를 수반합니다. 세존께서 이루신 정각의 내용 연기법은 자비의 실천이 왜 지혜의 완성인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존재함으로 인하여 저것이 있게되며 저것이 없으므로 인하여 이것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此有故彼有 彼無故此無) 이것이 일어나므로 해서 저것이 일어나게 되고 저것이 멸하므로 해서 이것이 멸하게 된다. (此起故彼起 彼滅故此滅)
모든 존재와 현상은 상의상존 불가분의 관계속에 놓여 있다는 연기의 법칙은 진보한 오늘날의 인류종교 사상사에서도 보편적이면서 탁월한 세계관으로 조망받고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신심의 기초가 되는 연기의 법칙을 확고한 세계관으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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