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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바라지 말고 나눔의 복밭을 일구세요

발원!

불 보살님에게서 빛과 에너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불보살님은 우리 중생들에게 끊임없이 빛과 에너지를 쏟아붓고 계십니다. 불보살님의 무한한 에너지를 오롯이 받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바로 ‘발원’과 ‘참회’ 말입니다.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에게 빛과 에너지를 입는 것을 가피라고 표현합니다. 가피(加被)란 말 그대로 더함을 입는다는 의미이지요. 이것을 단순히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닙니다. 능동적인 원을 세워 실행하고자 노력하되 불보살님의 도움을 입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능동적인 원을 세우되, ‘~해주십시오.’하는 식의 구걸형이 아니고, ~하겠습니다. 하는 식의 발원형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아주 힘들 때, 혹은 아직 어릴 때는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마음이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부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소원을 빌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해달라고 빌기만 할 것입니까? 이것은 어린 마음이며 종의 마음입니다. 주인의 마음가짐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편안함으로 인하여 종 노릇에 안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살겠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먹겠습니다. 부자가 될 수 있도록 넉넉한 마음을 베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발원하면서, ‘불보살님께서 지켜봐 주시고, 도와주십시오.’라고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본인이 주체가 되고 불보살님의 가피를 입는 것은 무조건 소원성취만을 바라는 종속적인 삶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염원을 세우면 불보살님과 주파수가 맞게 됩니다. 불보살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신 의미는 중생제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와 유사한 염원을 가질 때 불보살님께서 도움을 주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컨대, 한 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아버지는 훌륭한 의사로서 많은 사람들의 병고를 치료해왔고 앞으로도 그러한 의미로 세상을 살아나가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아들 또한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자신도 훌륭한 의사가 되고자 열심히 노력한다면 얼마나 대견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누구보다 훌륭한 의왕이시며 중생들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비록 부분적으로나마 중생제도의 염원을 함께 할 때 엄청난 가피력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아가 참회 또한 필요합니다. 불교의 참회는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회개와는 다릅니다. 회개는 스스로를 죄인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에게 용서를 구하지요. 하지만 궁극적 참회는 결국 모든 존재자체가 공함을 깨치는 데 있습니다. 죄에는 자성이 없습니다. 다만 마음 따라 일어날 뿐! 만약 마음이 사라지면 죄도 따라 사라집니다. 죄도 사라지고 마음도 소멸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참회인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은 참회해야겠지만 남의 잘못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용서해야 합니다. 남을 용서할 때 나도 용서받게 됩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해치는 결과를 낳습니다. 실제로 분노심이 일어날 때, 심박수나 혈압 혹은 뇌파는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결국 분노는 쌓이고 쌓여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분노에서 벗어나게 되면 몸과 마음은 편안하게 됩니다.
웬만한 질병은 이렇게 남을 용서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치유되지요. 남을 미워하게 되면 분노의 독소가 자신의 마음에 쌓이고, 자신의 몸에 쌓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남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알고 보면 나와 남이 본래 둘이 아니므로 사실상 용서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이지요.

자신의 업장은 참회하고, 남의 업장은 용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지름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편안을 빌기보다는 스스로의 허물을 돌이켜 참회하고 남의 허물은 용서할 때, 불보살님께서도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한 걸음 물러나 애정 어린 눈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면 될 뿐입니다. 사랑하십시오. 관조적인 사랑 말입니다.

나눔!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나누며 살고 있는가를 돌이켜 보고, 자신의 깊은 심연에서 울려 나오는 전율과도 같은 삶의 의미를 느껴 보세요. 오늘도 여러분은 부처님 앞에 몸을 숙여 3배를 하며 무엇인가를 빌었을 겁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지라도 여러분이 부처님께 빈 것은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우리가 바라는 행복이란 것, 나는 오늘 여러분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방법 하나를 제시할까 합니다. 누구나 잘 아시는 것처럼 불교는 인과(因果)의 종교입니다.
씨앗을 뿌리면 싹이 나고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 간단한 원리가 바로 인과입니다.
원인과 결과의 관계만 잘 파악하면 최고의 불자가 될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제가 훌훌 나뭇잎들을 떨구어 내는 저 가을 나무들을 보고 겨울을 준비하는 우주의 흐름을 응시하라고 한 것도 바로 원인과 결과의 엄연한 관계를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무성하던 잎을 떨쳐 내는 버림의 결단이 없이 어떻게 메마른 겨울을 견디고 봄날의 새 잎을 향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우주의 흐름도 결국 인과의 굴레 속에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삶도 인과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인과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거기에 순응하고 나아가 좋은 인(因)으로 좋은 과(果)를 창조해 내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원하는 행복이란 것도 인과의 법칙 속에서 추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행복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스스로 행복의 씨앗을 뿌리지 않고 아무리 부처님께 행복을 빌어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겁니다.
부처님께 행복을 빌기에 앞서 먼저 행복의 씨앗을 뿌리고 그 뿌린 씨앗이 어긋남이 없이, 왜곡됨이 없이, 삿된 마장에 걸리지 않고 올곧은 결실을 맺도록 해달라고 비는 것이 진정한 기도인 겁니다.

여러분은 이제 어디에다 행복의 씨앗을 뿌리겠습니까. 우주 법계 어느 한 곳도 복전이 아닌 곳이 없습니다.
복의 밭은 넓고 넓습니다. 그 밭에 행복의 씨앗을 뿌리십시오. 그 씨앗을 바로 자비희사(慈悲喜捨)입니다.
자비로운 마음과 기쁘게 던질 줄 아는 마음으로 복밭을 일구십시오. 복밭 가운데 가장 으뜸의 복밭은 인간이란 밭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의 주변, 바로 내 이웃이 가장 으뜸의 복전입니다. 이 겨울 내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갖지 않았나 하는 자기반성과 남을 위해 나누는 자비의 마음을 내야 합니다.

나무 석가 모니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