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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

지혜와 자비

 

위없는 지혜와 자비!

세존께서 지니신 여러 가지 많은 훌륭하신 점 가운데서도 특히나 위대하시게 생각되는 것은 지혜와 자비일 것이다. 위없으신 세존의 지혜와 중생들의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시는 현실적 자비심으로서 이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으며 허공에 떠있는 태양과 달과 같은 것으로서 태양의 빛이 만물을 성장시키듯 부처님의 지혜로서 모든 중생들이 무지의 어두움에서 지혜의 밝은 빛으로 나아가게 하며 달밤의 서늘함이 모든 중생들을 고뇌의 아픔에서 휴식을 취하게 하듯 세존의 자비가 중생들로 생로병사의 윤회고통에서 해탈의 길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지혜와 자비가 부처님을 모든 수행자나 성자들보다도 훨씬 위대하시고 거룩하시게 하였으며 부처님께서 하셔야 할 모든 임무를 완성하신 것이다. 세존께서는 언제나 모든 설법의 핵심을 생로병사 해탈에 두셨으며 이 단계에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중생들의 능력에 따라 차례로 설법하시어 마침내 결과를 얻도록 하시었다. 세존께서는 설법하심에 항상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시어 이익됨과 되지 않음, 피해가 있음과 없음이며, 어떤 길로 인도되는 것이 보다 평화와 행복이 되며 어떤 길이 그들을 불행과 고통이 따르는가 등을 확연히 구별 지으시는 분별지(分別智)로서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견해인 현상의 영원성, 인생의 행복함 자아의 존재 등, 환상적이고 착각적 전도된 생각에서 벗어나는 가장 올바른 방법으로 인간들 자신의 몸과 마음의 자연적 현상인 네 가지 물질적 요소 흙(뼈, 손발톱, 머리카락, 치아), 물(피, 고름, 눈물, 침, 가래, 골수, 대소변), 불(덥고 차가운 체온), 바람(몸의 움직임, 호흡), 작용과 다섯 모임(물질인 몸, 비물질인 느낌, 관념, 의지, 구상, 인식 혹은 마음)

그리고 여섯 문, 식, 대상(눈과 빛 안식, 귀와 소리 청식, 코와 향기 비식, 혀와 맛 설식, 몸과 접촉 촉식, 마음과 법, 현상과 의식)등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진리를 통하여 모든 현상은 항상 변화하여 일어나고 사라짐이요, 모든 생명들은 항상 정신적 육체적 불평불만, 고통, 불안 속에서 존재하며 이 모든 고통과 불평불만 등이 언제나 변화되고 있음의 진실, 그리고 법이라고 하는 것에도 自我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조건 따라 일어나고 사라짐이 있을 뿐임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이와 같은 가르치심의 법을 배운 자들이 법에 대한 실천 수행을 하며 수행의 이상적인 목표는 스스로 깨닫는 것이며 닙바나의 성취로서 마지막 해탈의 길이기도 하다. 이러한 해탈은 다른 것에 대한 믿음이나 절대자의 도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적 현상 관찰을 통한 자신의 성품을 바로 본 것이며 개인의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만이 성취되는 것이다.

자신의 수행을 통한 성취가 있을 때 마지막 해탈의 성취가 있을 때 수행자들은 비로소 부처님의 자비가 어떠한 것인가 지혜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고 이해하게 되며 왜, 세존이 모든 설법에 핵심을 해탈, 깨달음에 두시 었나 명확하여 의심 없을 것이다. 세존께서 지혜로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대는 반드시 자비가 뒷받침이 되시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지혜하면 자비가 뒤따른다.
자비는 중생들에 대한 복지와 안녕 그리고 무든 고통들로부터의 해탈로 인도하는 기본 동기이다. 그러나 중생들의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 큰 관심없이 되어가는 대로 살아가도록 모든 것은 제 업에 달려 있다고 미루어 버리게 되면 사실 그것은 너무 무책임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현실적인 자비를 함께 갖추셨으므로 잘못된 점과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점에 대해서는 절대 금하시고 훈계하셨으며, 행복을 가져오고 기쁨과 평화를 가져오는 길은 권장하시고 격려해 주셨으며, 행복하고 평화롭게 서로를 보살피고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위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신 것이다.

수행자들이 이제는 지혜와 자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어떻게 활용해야 되는가에 대해 많은 이해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모든 번뇌로부터 해탈을 얻으시고 깨달으신 정각자가 되신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특정한 사회(천상)에 접근하여 교화하시고 일반 사회인들과도 관계를 맺으며 지내셨을까?
첫째는 보살로서 多行 억겁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따라 선업을 닦으시고 수행하신 모든 공덕과 자비와 지혜의 성취 완성인 것으로 중생들이 환상과 착각에 사로잡히고 죽음의 두려움에 휩싸여 외부의 어떤 절대자(당시 브라흐마나의 신본 사상과 그에 의한 구원 사상이 절대적인 사회의 흐름이었음)를 내세워 그를 위해 생명을 희생시키는 제사 등을 하고 계급을 형성하여 절대 평등의 인간들에게 심한 차별 대우를 하는 등 잘못된 길을 걸으며 끝없는 윤회의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을 구하겠다는 큰 서원의 성취요 결과며, 깨달음의 진리를 내보여 모든 중생들이 해탈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셨다.
둘째는 깨달으신 다음 자신의 평화와 행복 그리고 안일만을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자비심을 내시어 사회에 나가셔서 설법하시고 갖가 방편으로 도움을 주신 것이다. 이는 세존 자신의 명예나 영광을 얻고, 수많은 제자들을 두어서 위대한 스승의 칭호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진실에의 사랑과 순수한 자비심에 의해서 중생들을 해탈케 하고 진정한 자유 속에 평화롭고 기쁘며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세존의 사랑이 근본 바탕이 되어있는 세존의 가르침에는 어떤 형태로든지 따르는 자들에게 물질적, 생명적, 정신적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불교의 가르침은 불교의 영광과 발전을 위해 신자들에게 희생하고 봉사하며 모든 것을 바치라 권하거나 억압적으로 명령하지 않으며 어디까지나 자율적이며 자유 의지적이기에 불교신자가 되는데도 절대 신봉의 서약이나 선서가 없이 다만 자신의 의지력에 의해서 5계와 8계, 10계, 227계 등을 받아서 실천 수행하다, 본인이 싫거나 할 수 없을 경우에는 언제라도 사회로 돌아가거나 자신이 포기 내지 뒤로 물러서더라도 세존이나 누가 벌을 준다는 위협적인 언어와 속박이 없다.

왜냐하면 불교는 자신을 깨닫고 그 깨달음은 윤회와 부조리의 두려움과 공포의 속박에서부터 진정한 벗어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은 여행자의 지도에 비유되었고 강을 건너는 뗏목에 비유된 것이다. 중생을 위한 불교며 그들의 위한 세존의 지혜와 자비이기 때문이지, 중생이 부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당당히 선언하시기를 '해탈의 문은 모두를 위해 활짝 열려 있다.' 라고 하시었고 귀족이나 천민 죄인이나 성자 등 모두를 보살피시어 그들로 하여금 해탈의 길에 이르도록 하시었다. 인도 당시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하나의 종속에 불과했으나 여성의 출가 성직자 생활을 허락하심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셨고 병들은 비구 뿌띠갇따의 피고름 가사를 직접 빨래하시고 목욕시키시며 그를 상쾌한 기분이 되게 하신 다음 설법으로 해탈케 하신 것 등은 세존의 자비가 어디까지 미쳤나 단적으로 증명하는 사례이다.

지혜는 정신적 지적 능력과 판단을 뜻하며 자비는 사랑, 친절, 인내와 고귀한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은 지혜가 모자라 지적 수준이 낮으니 정도(正道)와 사도(邪道)를 구분 못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치 못하며, 자비심이 부족하여 탐심을 내어 남을 해치고 진심내며 미워하고 증오하며 스스로 남을 괴롭고 남도 괴롭게 한다. 어떤 이는 지혜로우나 자비가 없다. 자비가 없는 지혜로운 행동은 교만하고 차가우며 독선적이요 계산적인 자기 이익 추구에 머물고 만다. 또 어떤 이는 자비로우나 지혜가 없다. 지혜 없는 자비의 결과는 지적인 면은 무시되고 정서적이며 부드러운 반면,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남을 돕는다며 활동하는 것이 곧 어리석음으로 나타나서 마음 좋은 바보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혜와 자비가 잘 갖추어지면, 수레의 두 바퀴처럼 균형 있게 되어 생산적이며 지적 차원이 높은 성품과 사랑과 친절, 인내의 고귀한 성품을 갖추게 되니 자기에게도 이익이 되고 남에게도 도움이 되어 어리석음과 치우침에서 벗어나게된다.

세존의 자비는 일체중생이 고통받는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대자비인지라 한 중생이라도 해탈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피곤함도 괴로움도 모르시고 동서남북을 누비면서 직접 전법 교화하신 것이다. 일체중생의 근기를 아시는 지혜와 모든 중생이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도록 진리로서 이끌러 주신 부처님은 어느 것에도, 태양에도 비할 수 없으리만큼 위대하신 것이니 수행자는 이와 같이 세존의 위대하심과 훌륭하심을 항상 반조하고 세존께서 지니셨던 지혜와 자비가 자신에게도 갖추어지도록 부지런히 갈고닦아야 할 것이다.
나무 석가 모니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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