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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

일체만물은 한몸 남을 해칠수 없어요

 

너와 나 관계없다 생각할 때 ‘악’ 싹터 

一切男子가 是我父요 一切女子가 是我母로다 故로 六道衆生이 皆是我父母로다. 모든 남자가 나의 아버지요 모든 여자가 나의 어머니로다 그러므로 육도의 중생이 모두 나의 어버 이로다.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영원히 변치 않을 진리의 말씀이지요. 일체중생이 내 아버지 어머니요, 형제 동생이 된다는 이 말씀은 ‘내 혈통’ ‘너의 혈통’이 아무 의미 없는 구분임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金가니 李가니 朴가니 하는 것은 사람들이 살기에 편하도록 인위적으로 姓을 갈라놓은 결과일 뿐이에요. 근원적으로는 혈통의 구분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전세(前世)의 인연으로 인해 잠시 어머니 뱃속을 빌어 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어머니가 낳고 싶어 낳는 것이 아닙니다. 천지만물이 동원되어 내 몸을 만들고 어머니를 통해 세상에 몸을 내게 합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인위적인 작용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중생은 내 부모요 모든 사물은 내 몸이라’고 하는 말은 천하만물이 그대로 너와 내가 되고, 너와 내가 다른 사람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천지(天地) 만물은 곧 나(我) 요 나는 곧 천지만물이라’는 말을 종교적 교육적 차원에서 아들 손자들에게 잘 가르쳐야 합니다. ‘네 것’ ‘내 것’ ‘박가’ ‘김가’하는 식의 개인주의와 극단적인 개별주의,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방종주의가 이 세상을 망치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천지만물이 나와한 몸’ 임을 가르친다면 잠재의식 속에 사람과 사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쌓여 남을 해치거나 자기만을 위하는 혼탁한 세상을 만들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인간 생활에서 나타나는 만악(萬惡)이 ‘모든 인간이 한마음 한 몸’이란 사실을 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과 감정을 가지면 거기서부터 모든 악이 싹트게 됩니다. 반면에 ‘너와 내가 한마음 한 몸’ 임을 깨닫게 된다면 모든 일이 이해가 되고 질서와 순서가 잡힙니다. 든 이해관계가 없어져 ‘네 것’ ‘내 것’하는 소유욕이 사라지게 될 겁니다. 그러나 너와 나, 자연(自然)이 전연 별개의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대립과 투쟁으로 점철된 이 사회는 죽고 사는 문제로 만악이 횡행(橫行)하는 아수라(阿修羅) 장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자’느니 ‘이웃을 위해 자비심을 내자’는 말들이 모두 공염불(空念佛)과 구두선(口頭禪)으로 끝나고 말지요. 3천 년간 ‘자비를 실천하자’ ‘이웃을 사랑하자’는 외침은 끊임이 없었지만, 과연 지금의 이 세상이 사랑과 자비로 가득 찬 세계인지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형제와 이웃 간에도 이해타산만 따지는 오늘의 현실은 공동체 안에서도 자비심과 일체감을 잃은 모습을 여실이 보여주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이 같은 뿌리요 한 몸’ 임을 실감하고 소신(所信)을 가진다면 불신의 사회에서 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 가르침을 인식하고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한 사랑과 자비를 아무리 부르짖은들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을 진실로 깨닫는다면 미움을 강요하더라도 사랑이 저절로 베풀어질 것입니다. 도인들의 각 어록(語錄)에도 ‘천지는 동근(同根)이요 만물은 일체’라는 말이 나옵니다. 道를 성취한 지혜의 눈으로 보면 나와 대립된 존재는 없습니다. 산천초목과 동물·식물계, 광물계가 모두 뿌리를 같이 합니다. 만물을 동물·식물·광물계로 구분하던 것이 해방 후에는 동·식물계와 광물계로 이분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광물계에서 조차 유기물(有機物)이 발견되어 예전의 구분이 무의미하게 되고 있습니다. 과학이 40년~50년 전에 발견한 만물의 원소(元素) 내지 소립자(小粒子)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부처님께서는 3천 년 전에 말씀하셨습니다.

불교는 우주과학입니다. 물리학과 생물학 등을 모두 포함하는 우주과학입니다. 우리는 과학시대에 부처님의 위대성과 혜안(慧眼)을 다시금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대과학은 한사람의 피가 60억 명의 혈통을 지닌 채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컴퓨터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 흐르는 피가 양친(兩親)의 피만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부모에게서 피를 받았듯이 우리의 부모님도 조(祖) 부모의 피를 받았을 것이란 말입니다. 이런 원리로 따져 나가면 2代째는 6명의 피가 흐르고, 3대째는 14명의 피가, 10대에는 2백46명, 20대에는 1백1만 명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숫자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30대의 조상을 가진 후손들은 21억 조상들의 혈통을 지닌 채 태어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옵니다.

또한 더 오래된 40대의 조상이 있는 후손들은 1백억의 혈통을 가졌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는 현재의 지구인구를 훨씬 넘는 수치이지요. 물론 이 계산은 컴퓨터를 통해 도출된 것입니다. 우리는 혈통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 이 세상 이웃이 나와 같은 형제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즉 혈통적인 입장에서 보면 전인류가 남이 아닌 수많은 조상의 피(血)가 섞여서 자손을 번창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 민족이 오랜 옛날 우랄 알타이민족의 피를 지닌 채 더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다 정착한 곳이 바로 한반도입니다. 이렇듯이 지구상의 60억 인구는 오랜 옛날부터 혈통이 섞여지면서 궁극에는 같은 피를 공유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외향만으로 피를 따질 수는 없습니다. 같은 형제도 어릴 때 헤어지면 같은 혈육임을 알 수 없듯이 ‘피’란 눈에 보이는 걸로만 판단할 수가 없는 겁니다. 흔히들 우리는 얼굴이 조금 노랗다고 흑인을 무시합니다. 백인들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무시합니다. 이는 못된 습(習)과 악업(惡業)을 지으면서 평생을 사는 일입니다. 부처님은 ‘일미진중 함시방(一微塵中 含十方) 이리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그만 티끌 안에도 천지만물이 담겨있다는 말씀이지요.

이는 피 한방울에도 1백억 명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과 어긋나는 점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이치를 따르게 되면 남을 죽이는 것이 곧 나를 죽이는 일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의 세상은 제 피를 자신이 죽이는 어리석은 일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일체 동근(一切同根)의 도리를 자녀들에게 잘 가르치면 자손과 이웃이 함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게끔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원(內園) 마당의 장미꽃 한 송이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저절로 피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만물이 총동원되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그 장미꽃 한 송이입니다. 장미꽃이 씨만 심는다고 피는 게 아닙니다. 싹이 돋으려면 땅과 습기와 따뜻한 태양과 공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야말로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총동원 되어야 장미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땅이 ‘지’에 해당된다면, 습기는 ‘수’에, 따뜻한 태양은 ‘화’, 뿌리에 통하는 공기는 ‘풍’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장미 한 송이를 피우는데도 작게는 지구 전체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머니 뱃속에서 수태(受胎)가 이뤄지는 과정도 부모의 뜻대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억 개의 정자(精子) 중의 1개가 시공(時空)의 한 순간에 적절한 환경을 만나 난자(卵子) 1개와 결합하면서 이뤄지는 것이 소중한 한 생명체입니다. 인간 역시 대우주가 총동원되어 탄생됩니다. 아름답고 생생한 내 모습은 내가 마음먹은 대로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대우주의 총체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람이든 장미꽃이든 제 혼자 컸다고는 아무도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하늘을 거역하는 자가 되지요. 옛말에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고 했습니다. 역천자는 사리(事理)를 어기고 사는 사람입니다. 우선 성공하겠다고 힘을 내세워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은 천지의 질서에 어긋나면서 살기에 결국에는 몰락하게 됩니다. 이는 교통질서를 어기며 길을 건너다가 뜻하지 않은 봉변을 당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내 몸 하나가 질서를 어기면 이 사회 전체의 질서가 어긋나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마치 콩가마니 속의 콩 하나가 썩으면 가마니 전체의 콩이 썩는 이치와 같지요. 한 사람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더불어 사는 모든 이를 나락(奈落)에 빠뜨린다면 이 책임은 얼마나 큰 것입니까. ‘나는 나요 너는 너’라는 인식은 옳지 않습니다. ‘천지가 동근이요 만물이 동체(同體)’라는 인식을 하면서도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과 이기적인 생각을 갖는다면 이는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 증거입니다. 부처님은 ‘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 多卽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하나는 전체와 다름이 없고, 전체는 하나와 같다’는 이 말씀은 우리 중생을 행복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탐욕과 업장(業障)에 가려 믿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전체와 개인을 균형되게 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주위의 이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마음데로 돈을 쓰고 사는 것은 전체의 입장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만을 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돈 떨어지고 삶이 방탕하게 되면 드디어는 사회에 해를 끼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회의 공륜(公倫)을 지켜야 합니다. 이는 전체와 개인을 위해 지켜야 하는 우리의 의무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살행을 실천하면서 주위를 건전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자기만 편하려고 하기 보다는 주위부터 먼저 편하게 해주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길에 지나가는 개미도, 가마니 속의 콩도 무의미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람의 시야가 좁고 생각의 폭이 얇기에 개미, 쥐, 곤충 등이 나와 아무런 관 계가 없는 줄 알지만 생태학이나 환경론에서는 사람이 혼자서는 살 수 없음 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물속의 세균 하나, 티끌 하나도 남을 편하게 존재케 하는 원리가 들어있습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나’와 ‘내 집’만을 생각해서 살아서 는 안됩니다. 모든 악이 ‘천지가 한마음 한 몸’ 임을 모르는 사실에서 일어 남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바른 불교를 알 수 있습니다.

一切萬物이 是我體요 自他主客이 本是無로다.

일체만물이 내 몸이요, 나와 남과 주관과 객관이 본래 無로~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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