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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

無處所

묘한 진리의 체는 원래의 처소가 없어 어디에는 진리가 있고, 어디에는 진리가 없고,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참 불교의 진리는 천상천하 두두물물이 묘체 아님이 없어 전부가 다 어느 곳, 어느 때를 막론하고 진리의체는 이 허공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온갖생각이 퍼 일어나는데 그 한량없는 생각을 바로 중생을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은 그 체가 공한것입니다.

그 끊임없이 일어나는 생각의그 본체는 무엇이냐 하면 공이거든요.
확실히 그 생각의 본체가 진공이라고 하는 사실을 요달한 것이 그것이 바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적의 이치를 이미 깨달아 버리면 실로 한 중생도 제도받은 자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도리인것, 자성 중생이거든. 자성중생서원도요!
한량없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심으로써 보면 날마다 불 보살의 화현을 친견할 수가 있을 것 입니다마는
탐진치삼독이 가득찬 그 눈으로는 날마다 불보살을 친견하면서도
불보살인줄 모르고 지나쳐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돌이킨 것이 한 생을 돌이킨 목숨을 돌이킨것과 맞먹는 것입니다.

몸뚱이의 생사만을 생사로 아는 사람은 범부중생이고
,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이 몸뚱이는 본래 공한 것이요.
한 생각 돌이킬 줄을 알 때에 비로소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다.
내 마음에 맞는 순경계가 머지 않아서 뒤집혀져 가지고 역경계로 변하는 것입니다.
어떤 역경계를 만나서 있다 하더라도 그 고비를 잘 참고 견디면서
노력을 하다보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어서 '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경계 순경계에 놀아나지 말고 어떤 경계를 닥치든지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닌 것을 깊이 인식하고 항상 어느때 어느 곳에서도 이뭣고,역경계 순경계에 끄달려서 울다 웃다 하는 사람은 항상 경계에 속아가는것입니다. 삼라만상이 내생명 무아와 자비사상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문제가 발생하는 1차적 원인은 무지와 오해인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무지와 오해에 근거한 사고와 삶의 태도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 결과는 모순과 혼란을 재생산해 내고 되풀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 세상에 나아닌 것은 무엇일까요. 나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 바로 무아사상입니다.

존귀성을 강조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와 함께 오직 우주 삼라만상 모든 것이 곧 나다 내 생명 아닌 것이 없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고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입니다.
삼계개고 아당안지’는 곧 자비심입니다. 탄생게는 지혜와 자비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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