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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의 곳간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

 

내가 살아오면서 저지른 행위의 씨앗, 오늘날처럼 격동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큰 방황 속에 동요하고, 실상을 등지며 현상에 따라 움직이는 행복과 명예를 무조건 소유하려고 하는 미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행복과 불행의 결과는 자기 스스로가 심어놓은 종자의 결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기복에만 정신을 소비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종교가 갖는 특징 중에 하나가 내적인 수행으로 바른 마음을 갖는 데 있다고 할 때, 오직 이기적 요구만을 내세워 기도하는 것은, 이 타행을 가르치신 부처님의 본 뜻과는 멀리 떨어진 어리석은 수행일 뿐입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불교를 자신들의 안일한 삶의 행복과 기쁨만을 추구하기 위하여 기원하고 소원하는 기복 신앙에만 옭아매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한 기복이 오로지 개인적인 부귀와 영화만을 위한 것이라면 사실 종교라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올바른 일(선업)도 많이 하지만, 나쁜 행위(악업)도 많이 하게 됩니다. 이러한 잘못된 행동을 깨닫게 하고 바르게 바꾸어 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작은 것에 집착하여 그것만이 최고라고 고집하던 것을 자라서 어른이 되어 그 당시를 되돌아보면 참으로 부끄럽고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탐욕과 어리석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이러한 욕심과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는 노력이 수행입니다. 꾸준히 수행을 계속하면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그리고 어리석은 마음번뇌가 사라져 반야의 지혜가 솟아납니다. 그래서 불교를 흔히 지혜의 종교라고도 합니다. 비록 원수 사이라도 입장을 바꾸어 보면, 원수로 여기던 사람과 함께 차 한잔 나눌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살이에서 일어나는 대립과 갈등의 원인을 잘 관찰해보면, 그 원인이 다른 사람에도 있지만 결국엔 우리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먼 훗날 그것이 다 부질없는 것이 되었을 때 돌아보면 당시의 집착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두가 자기 욕심에 탐착하여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막는 무명과 무지 때문입니다. 자신의 무지가 모든 불행과 비극의 시초임을 인식했으면 남을 나처럼 생각해 주는 것이 불자의 진정한 도리입니다. 따라서 형식과 형상에만 도취되어 부처님의 참 가르침을 외면한 체 자기애적인 기복신앙으로 나간다면 그건 신앙이기 이전에 미신에 불과하며, 맹목적인 추종으로 인한 맹종과 기복은 올바른 신행이 아닙니다.

불교는 현재를 살리는 종교입니다. 그러면 현재를 살리는 길은 무엇입니까? 현재를 살리는 길은 현재 내가 몸과 마음을 다해서 뛰는 겁니다. 여기에서 불교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또 하나의 차원이 등장하는데, 현재를 살리는 행동을 뭐라고 부럽니까? 그것을 보살행이라고 부릅니다. 보살행이 바로 현재를 살리는 겁니다. 현재를 살리는 행동. 나와 더불어 사는 내 이웃들을 지금 이 순간에 살리는 행동을 하는 겁니다. 나만을 위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바라밀다행을 하는 것입니다.

심리적 육체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탓으로 업장을 소멸하지 못하면 한없이 윤회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불자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마음에서 자비심을 일으키고 행동으로 보살행을 실천하는 ‘이타적’인 수행에 더욱 관심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업을 쌓지 않은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참회해야 하겠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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