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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없는 법의 말씀

일체세간은 마음이 만든 심상

 

여러분의 무기는 얼굴 아니라 정신적 아름다움, 일체세간은 마음이 만든 심상 부처가 세상 만들어낸 것처럼 중생도 세상 창조주이자 주인 마음과 부처 중생 다르지 않아 중생심이 불심, 불심이 중생심 어느 정도 나이를 먹었다면 얼굴이나 몸매 앞세우기보다 정신적인 美로 세상 대처해야 아름다움은 욕망 절제서 나와 수행으로 스스로 컨트롤하길 마음에 관한 얘기에 앞서 마음의 종류에 대해 살펴보겠다.

마음의 종류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동심(動心)이고, 다른 하나는 부동심(不動心), 나머지는 전변심(轉變心)이다. 움직이는 마음은 바로 우리 마음이다. 움직이지 않는 마음은 능히 짐작되듯 부처님 마음이다. 동심과 부동심은 공기와 바람에 비유할 수 있다. 문 닫힌 방 안에 앉아 있으면 우리는 바람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움직이기 시작하면 대번 느낀다. 바람이 불어 머리카락이 날리고,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태풍이 몰아칠 때 먼지가 오르고, 낙엽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야! 저 바람 봐라” 하고 말한다. 바람이 느껴지고, 눈으로 보는 것 같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 알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 있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 우리만 모르는 게 아니라 부처님도 모른다고 한다. 부처님도 모르시는 게 없지만 오직 한 가지 모르는 것이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다.  옛 부처가 나기도 전은 부처를 보는 마음이고, 마음이 이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하기 때문에, 옛 부처가 나타나기도 전은 이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이란 의미한다. 뚜렷한 한 상이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석가모니 부처님도 알지 못했는데,  이렇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부처님도 몰랐다는 얘기가 있다.

전변심에서 전은 구르다는 것이고, 변은 변화했다는 뜻으로, 어떤 물건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 모양도 달라지는 게 전변이다. 물은 여러 형태가 있다. 그릇에 담긴 물도 있고, 호수, 강물, 바다도 있다. 형태만 여러 가지가 아니라 자기 모습도 변화시킨다. 겨울에 펄펄 내리면 눈이고, 얼음도 물이고, 구름도 물이라고 한다. 주전자에서 끓어오르면 수증기가 된다. 수증기가 되면 기체의 일부로 간주된다. 수증기는 공기량의 1000분의 1 가량이다. 법당의 1000분의 1 가량은 수증기라는 물로 채워져 있다. 공기니까 안 보이는 것이다. 기체, 고체, 액체로 모양을 바꾼다. 모양을 바꾸면 물이라고 안 한다. 얼음을 보고 물이라 하지 않고 눈을 보고 물이라 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름도, 모양도, 형태도 달라지는 게 물이다. 마음이 자기 모습을 완전히 바꿔서 다르게 나타내는 것을 전변 심이라고 한다.

전변심은 무엇인가. 법당에서 탁자 위에 올린 거룩한 부처님을 본다. 그 부처님이 우리들의 전변심이다.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심상이란 뜻이다. 법당도 여러분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고,  하늘과 땅과 온 대지는 여러분의 전변심이 구현해 낸 것이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 가지가지 오온을 그려내나니 일체 세간 가운데 만들어내지 않은 것 아무것도 없다”. 오온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우리 정신과 물질을 오온이라고 말한다. 옛날에 세상을 단순화 시켜 말할 때 형상 있는 것을 통틀어 정신, 물질적으로 나눴다. 이걸 불교식으로 세분화하면 오온이 된다.

이 세상에 있는 물질적인 것 그것이 산이든지 바다든지 허공이라도 모두 마음이 만들었다. 우리가 좋아하고 기뻐하는 감정, 갖가지 마음들을 다 근본적으로는 마음이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걸 구분하려고, 근본적인 마음을 진여심 혹은 본심이라고 말한다. 만들어진 마음을 그냥 마음이라고 하고 망령, 망심이라고 한다.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 우리 마음과 이 세계 모두를 마음이 만들어, 일체 세간 가운데 마음이 만들어내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더 나가서 여심불역이(如心佛亦爾)라고 했다. 부처님보다 마음을 먼저 내세워서 마음이 그러하듯이, 마음이 세계를 만들어낸 것처럼 부처도 마찬가지다. 부처가 이 세상을 창조해 낸 것처럼 중생 또한 그렇다. 중생도 이 세상 창조주고 주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마음과 부처 중생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중심 법문이다. 그러니까 중생심이 바로 불심이고 불심이 중생 심이다. 이 말은 곧 흔들리는 우리 마음이 흔들림 없는 부처님 마음이고, 흔들림 없는 부처마음이 흔들리면 중생마음이다. 그러니 나와 부처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깨달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것을 깨닫는 것은 초보적인 깨달음이다. 깊이 있는 깨달음은 이 세상 모든 것, 예컨대 앉아 있는 법당, 너와 나 모든 것이 나 자신이고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내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깊은 깨달음이라고 한다. 참선해서 마음에 대해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이 기회를 빌려 참선하고 도 닦는데 마음을 내 보길 부탁드린다. 오늘 만난 인연으로 해서 여러분 무기는 정신적인 아름다움이다. 정신적인 아름다움으로 세상 삶을 대처할 생각을 해야 한다. 정신적인 아름다움은 자기 욕망 절제하는데서 나온다. 수행은 자기 마음을 컨트롤해서 자기 손아래 두는 것이다. 마음을 스스로 누르고 부처 얼굴 아름다운 것은 잠깐이지만, 정신적인 아름다움은 영원하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