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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

 

 

과거로부터 지어온 잘못은 물론 현재 생활하는 가운데 지은 모든 허물과 잘못을 뉘우치고 또다시 저지르지 않겠다고
부처 앞에 고하는 것을 참회라고 합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물론 그러하겠지만 불교에서는 특히 참회를 중요시합니다. 그것은 계(戒)란 타율적인 규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율적인 것이어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려야 하기 때문에 어렵기도 하거니와 자신마저 속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먼저 참회하고 나서 자신의 원을 세우라고 가르칩니다.

불교에는 두 가지의 참회의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보름과 그믐에 대중(스님)이 한 곳에 모여 계경(戒經)을 다시
한 번 공부하면서 조목조목 들어가면서 잘 지켰는지 못 지켰는지를 대중 앞에서 고백하는 의식입니다. 이것을 포살(布薩)이라고 합니다. 일반 재가신도들도 법회 때 포살을 겸해서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자자(自恣)입니다. 스님들이 안거를 끝내는 마지막 날, 함께 공부하던 대중들이 모여 서로 보고, 듣고, 생각하는 동안에 지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여 꾸중 듣기를 청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참회하는 법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불상 앞에서 자신의 죄악이 끊어지기를 바라는 사참(事懺)입니다.
즉 예불, 독경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는 마음으로 이치를 따져 몸과 마음의 번뇌를 끊어 죄를 짓지 않도록 스스로 다짐하는 이참(理懺)입니다.

이와 같은 참회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내밀한 마음의 죄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용서를 청하는 겸허한 태도입니다.
이는 부처님께 향하는 거짓 없는 마음의 표시인 동시에 자비를 베푸는 부처님의 마음자리이기도 합니다.
남이 강제로 시킨다거나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라는 거울에 그동안 정직하지 못했던 자신을 비추어 보고 참된 자신으로 되돌아가려는 의욕이며 갈망인 것입니다.

깜박하면 마음은 ‘칼날’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밉다, 곱다, 증오심, 욕심에 불타게 되면 사람 마음에도 번개와 천둥이 칩니다. 그것은 탐, 진, 치 삼독이라는 번뇌망상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마음을 한번 되돌려 보면 미움도 증오심도 한도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 마음 안에는 부처의 마음이 있습니다. 물처럼 맑은 마음, 바람처럼 시원한 마음, 꽃처럼 향기롭고 솜처럼 부드럽고 햇빛처럼 따스한 마음, 저 바다처럼 넓어서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그러한 마음을 여러분도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깜박하는 순간에는 깨알처럼 작어지고 칼날처럼 날카로워지고 얼음처럼 차가워집니다
그런 사람을 중생이라고 하죠. 중생과 부처가 한순간 안에 다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어떻게 주고 있습니까? 자신이 부처인지 중생인지 한번 스스로를 관(觀)해봐야 됩니다.

여러분은 매일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몸뚱이에 관심을 많이 가집니다.
아침에 거울을 보고 있을 때 관세음보살님이 따로 없죠.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남에게 잘보이고자 할 때는 보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만 거울을 봐요. 남과 다투고 화를 낼 때, 눈을 찡그리고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할 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바로 마구니 같죠. 그때 자신을 거울에 비춰 보면 다시는 그러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은 남을 많이 관하기 때문에 남에 대해서는 잘 압니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이야기 해보셨습니까? 나를 관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을 모릅니다.
그래서 남들이 너는 속이 좁다, 고집 세다 그러면 펄펄 뜁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변명을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한테 화를 냅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자신을 관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주인공을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의 모습이 번뇌 망상의 탐진치로 덮여있는 것을 모릅니다.
주인공의 상이 주인 노릇을 하는 것도 모르지요

자비의 극치를 불교에서는 동체대비(同體大悲)라고 즉,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여긴다는 것
불교가 기독교나 회교와 같은 유신론적 종교와 차이를 갖는 지점입니다.
신을 인정하는 종교의 경우 창조주를 따를 때에만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자비 역시 일체중생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그 고통을 덜어주려는 무한하고 지극한 마음인 것입니다.
불교 경전에 보면 자비에 대한 언급이 자주 등장하는데, 대승보살의 자비심과 관련된 중요한 구절이 나옵니다.

첫 번째가 중생연자비(衆生緣慈悲)로, 두 번째는 법연자비(法緣慈悲)로 제법무아의 진리를 깨닫고 베푸는 자비입니다.
세 번째는 무연자비(無緣慈悲)로 온갖 차별적 견해를 떠난 절대평등의 경지에서 행하는 자비, 곧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