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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완벽한 존재 확인하는 공부[염불선]

공부 길은 바로 차 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뗏목입니다. 공부 길을 정함에 있어서 가장 고전적인 것으로는 부처님 당시의 팔정도와 삼학, 대승불교 시대의 육바라밀을 그 표준으로 해야 바람직합니다.

이것들을 참고로 해서 자신에게 맞는 공부 길을 정립해야 합니다. 공부 길은 일단 간단할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화두 하나면 된다, 혹은 아이타불 하나면 된다는 식으로 너무 간단한 공부 길을 갖는 것은 조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공부 길은 간단한 것이 좋으나 너무 간단하다는 것은 너무 건조한 것일 가능성이 있고, 복합적인 마음을 다 아울러 다스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간단하되 너무 간단하지 않게, 복합적이되 간단하고, 간단하되 복합적인 길이 중도라고 생각합니다.

불성(佛性)과 불성을 가리는 번뇌(煩惱)가 있다고 할 때, 비유법으로 설명해 본다면 태양(혹은 허공)과 태양을 가리는 구름이 있다고 할 때, 우리의 공부 길은 구름을 제거하고 태양이 온전히 태양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때 효과 세간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공부 길은 구름을 어떻게 제거하느냐 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당연하게 들립니다. 불성이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 탐진치 번뇌 때문이라면 탐진치를 제거하여 불성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바람직하게 보이는 논법입니다. 이 논법은 인류 역사와 인간의 삶 전반에 만연해 있는 삶의 원리 가운데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적으로 구름이 사라지게 하는 길은 무엇일까’하는 것이 공부인의 큰 관심사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긍정점이 절대적으로 많은데 부정적인 한 두 가지에 집착하면서 자책하는 것, 자녀들의 긍정적인 점이 무수한데 한 두 가지 문제점을 심각하게 여겨 그것과 다투면서 자녀들의 삶의 사기를 꺾어놓은 것, 자기 가정이 그만하면 그래도 괜찮은데 원하는 무엇이 좀 부족하다고 지옥을 살고 있는 것, 이 세상 이대로 거의 절대적으로 괜찮은데 개판이라고 낙담하는 것 등등… 실로 무수한 경우에 부정 시각을 세움으로써 신명 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도처에 지천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스스로 활불(活佛)인데 중생이라 여기는 점입니다. 마음공부 분상에서도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는데 바로 번뇌를 죄악시하면서 번뇌와 다투는 것입니다.

구름과 다투지 않고 구름을 해결하는 해법이 있습니다. 구름과 다투면서 구름을 제거하는 행위를 그치고 태양을, 허공을 그냥 노래하는 것입니다. 태양을 노래하라, 허공을 노래하라, 시적으로 들리니 듣기에 좋기도 합니다. 허공을 노래하고 있노라면 구름이란 그 존재 의미를 잃고 저절로 사라집니다. 마음공부 길의 주바라밀로 허공을 노래할 것을 권합니다. 우주 이대로 청정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주는 이미 시비 저편의 청정(淸淨)입니다. 곧 우주는 이미 무시비(無是非)의 대청정, 곧 부처 아님이 없고, 진리 아님이 없고, 보기에 좋기만 한 것입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 그것이요, 즉심즉불(卽心卽佛) 여즉시불(如卽是佛)이 그것이요,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가 그것이요, 지도무난유혐간택(至道無難唯嫌揀擇)이 그것입니다.

이런 식의 마음공부 길의 정립이 공부인에게 필요함은 여행자의 나침반과 같이 절대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