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위 없는 법의 말씀

和顔愛語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나 증오는 곧 그 사람의 표정으로 나타납니다.

얼굴 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든지 호흡이 거칠어지는가 하면 눈도 충혈되고, 온몸을 부르르 떨기도 합니다.

이렇듯 변한 우리의 모습이 바로 나찰 귀신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일단 화가 나면 대부분의 경우 이성을 잃기 십상입니다. 평소 와는 달리 거친 욕도 하고,

심한 경우 폭력을 휘두르는 이도 있습니다. 이런 우리 의 모습이 바로 나찰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나 자신일 수 있다는 사 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겠습니다.

나찰이나 야차 같은 귀신들이 결코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분노로 일렁이고,

욕심으로 한없이 요동을 치고 있 을 때 내가 바로 야차요, 나찰인 것입니다.

또한 이같은 분노와 욕심이 맘껏 채워지지 않아 속이 상하고 이것 때문에 얼굴이 달아 오르고 호흡이 거칠어져 괴로우 니

그것이 바로 지옥의 상황과 꼭 같습니다.

말 한마디일지라도 평상시의 행동들 도 항상 바르게 선하게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화안애어란 말이 있습니다. 온화하고 자비로운 표정과 부드럽고 사랑스 려운 말씨로 수행을 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온화한 표정은 몸으로 짓는 행위라 할 것입니다. 또한 부드러운 말씨는 바로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 행위들 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잘 다스림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첫걸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물결이 잔 잔한 호수는 사물을 본래 모습 그대로 또렷이 비추어 줍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안정되어 있으면 삶도 평온하고

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물결이 일렁이듯 마음에 탐진치 삼독심이 생겨나면 더 이상 삶은 행복스러울 수 없습니다.

“나쁜 말, 이간하는 말을 좋아 하여 남의 과실을 들추어내는 사람은 모든 악을 짓게 된다.” <화엄경>의 한 귀절입니다.

농담이 진담 된다고 합니다. 행여라도 나쁜 말을 하여 쓸데없이 악업을 지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더러 친한 친구 사이니까 이해를 하 려니 여기고 심한 말들을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얼마간은 장난으로 서로 거친 말 을 주고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생각지도 못한 오 해가 쌓일 수도 있습니다.

한번 생긴 오해는 또 자신들도 모르는 새에 눈덩이 불 떠나듯 커져 끝내는 우정을 깨뜨릴지도 모릅니다.

더러 장난 삼아 욕지거리를 하는 이들도 봅니다. 다소의 위트를 섞어 짖궂게 해대는 그런 말들이 어느새 습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버릇이 없다거나 예의가 바르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받게 된다면

이 역시 크게 잘 못된 일임에 분명합니다. <보살본업경>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차라리 진실한 말을 해서 적을 만들지언정 비위 맞추는 말을 해서 친구를 만들지는 말라. 차라리 바른 말을 해서

고통을 만들지언정 그릇된 말을 해서 즐거움을 얻지 말라.” 항상 명심해 들어야 할 가르침입니다.

무릇 세상의 모든 죄는 다 우리들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댓가는 언제고 반드시 치러야만 합니다.

세 상의 이치가 이럴진대 말 한마디인들 섣불리 해서야 되겠습니까. 우리 속담에도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는다’했습니다.

이왕이면 아름다운 말, 좋은 말로 우 선 내 마음을 정화시키고, 이웃과의 관계도 화목하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혹 화 가 나거나 짜증 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 순간을 잘 참아 스스로 나찰로 떨어지고,

지옥을 겪지 않도록 항상 애써야겠습니다. 화안애어(和顔愛語) 함으로써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더 실천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찬탄(讚歎)’입니다. 몸가짐을 밝게하 고 좋은 말을 하는 삶 가운데

항상 찬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찬탄 은 맹목적인 추앙과 찬양이 아닙니다.

찬탄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경의와 기쁨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사는 이웃과 모든 자연 환경에 대한 겸 손과 감사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찬탄할 줄 모르는 사람은 오만스럽고 자기본위의 삶을 살 뿐 이웃과 자연을 생각할 줄 모릅니다.

그것은 중생계를 지옥계로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는 중생계를 극락으 로 가꾸길 발원한 부처님의 제자들이니 늘 찬탄하며

사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찬탄도 생활 속의 수행일 수 있습니다. 찬탄하는 삶은 즐겁습니다.

나 혼자 즐거운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모든 중생이 함께 즐겁습니다.

우리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인색합니다. 생각해 보 면 살아가는 순간순간 감사해야 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단지 감사해야 할 일만 많은 것이 아니라 찬탄으로 감사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온몸이 원만하게 갖춰진 것도 사계절이 순조롭게 변화해 가는 것도 우리는 찬탄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순리를 거스르지 말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은 매일 아침 일어나 첫마디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사람마다 날마다 각각 다를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좀 바꿔 봅시다. 찬탄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자는 겁니다.

어제의 피로를 말끔히 씻고 새로운 하루를 맞았으니 참으로 좋은 아침인 데 어찌 감사의 말 한마디가 아깝겠습니까..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도 찬탄해야 합니다. 내 이웃은 또 다른 나입니다.

이웃이 불 안하면 나도 불안하고 이웃이 즐거우면 나도 즐겁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데에는 이웃의 삶이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으니 그들을 찬탄하며 그들을 기쁘게 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항상 환하고 즐거운 빛으로 남을 대하고

정과 사랑이 담긴 말로 대화하고 찬탄으로 겸양을 드러내는 삶의 자세를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 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 사바계는 즐거운 땅, 극락이 될 것입니다. _()()()_

'위 없는 법의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록 적게 가졌어도 나눌줄 알아야 보살”  (1) 2023.05.15
허공계가 다 하는 날까지  (2) 2023.03.26
無念  (1) 2023.03.23
“매사 긍정하는 마음 파동이 곧 극락”  (0) 2023.01.31
연의 존재  (0) 2023.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