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자기의 사랑 분별 따위로는 따져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병으로 얻어지는 가장 큰 공덕이라 하겠습니다.
예부터 병으로 인하여 참된 신앙에 눈 뜨게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죄악이 소멸되지 않는 한, 신앙이 없어지지 않듯이 병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한, 신앙도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인간의 존속하는 한 생명을 아끼고 죽음의 공포 에서 벗어나려는 애절한 싸움은 계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눈을 바로 돌려야 할 점은 흔히 병과 신앙의 관계에 있어서 대개 병이 신앙으로 해서 쾌유되었다는 효과가 따라붙게 마련이지만 본래 생겼다 가 언젠가는 없어질 이 몸에 들고 나고 하는 병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병이 나았거나 아니거나간에 관계없이 병을 인연하여 참된 신앙의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병으로 해서 비로소 바른 사람이 되었고 병으로 인하여 인간의 가 장 중대한 일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참된 신앙과 미신이 갈라지는 점이 어딘가. 중생들이 대개가 괴로울 때, 어려울 때, 한 성현을 의지하여 기도하다가 회복이 되면 말짱하게 잊어버리게 되는 데, 병을 고치겠다는 거기에만 고집하게 될 때에 신앙은 공리성을 띠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갖가지 여러 종교가 병이 꼭 낫는다는 실제적인 약속을 간판으로 내걸게 되고 병든 사람이 병을 고쳐 보려고 함이 당연하니 모르는 새에 눈앞에 선전 효과에 끌려서 바른 것과 삿된 것을 가릴 겨를도 없이 시키는 대로 좋다는 기도와 용 하다는 방법을 다 따르게 되며, 가진 재물을 다 바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웃을 일이 아닙니다.
지금 내 발등에 그 같은 불이 떨어졌을 때 나는 그렇지 않으리라고 미리 장담할 수 있을 사람이 그 누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생명을 유지하겠다고 바라는 인간의 지극한 정을 살펴 야 할 것이며 생명에 대한 무서운 집착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교(邪敎)나 미신(迷信)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참된 신앙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참된 신앙이나 미신이나 역시 생사에 대한 불안이 라고 하는 동일한 바탕에서 생기는 것이면서도 거기에 커다란 차이가 생기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보통의 경우 병이 들었을 때는 병 이외의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지고 생각이 흔들려 갈피를 못 잡을 때는 거기에만 사로잡혀 있기가 쉬워져서 병이 좀 오래 끌게 될 때 신경쇠약이나 불면증을 일으키기 쉬운 것은 이 같은 분별 망상 때문이니 이 런 경우에는 육체의 병보다 정신의 병이 더 중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같은 관점으로 볼 때 병을 고친다는 것은 온 생명을 재생시키는 일인 데도 불구하고 만일 병을 육체상에 일어난 부분적인 현상으로 보게 된다면 고쳐줄 수 있는 신앙과 의술이 다 공리적인 데에 떨어지기 쉬운 까닭에 병은 어떻게 나았 으나 앞으로 살아갈 기력은 잃었다는 사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선고를 받고 비로소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인생이나마 힘껏 살아 보려고 결심한 사람도 많았으니 병상에 있으면서 후세에 남을 훌륭한 일을 남기고 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약사여래본원공덕경’에 약사여래 부처님의 서원은 중생들의 병을 고쳐주실 뿐만이 아니라 병을 고치려는 염원을 통해서 중생들이 대승의 깊은 가르침에 들게 함을 본원으로 삼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병을 인연으로 하여 인생의 일대사에 눈을 뜨도록 기원하여야 할 것이며, 각자가 자기 앞에 닥쳐온 생명의 위기를 통해서 커다란 참된 생명을 깨달아야 할 것이니 그러한 최고의 기회가 건강한 사람보다 훨씬 가까이 눈앞에 있음을 병든 사람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병은 참나를 발견케 해 줄 것입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