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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

돈독한 신심을 일으켜 등불을 밝히세요

 

만공스님은

“번뇌를 지우고 지혜를 별도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가 있되

번뇌에 어둡지 않고 번뇌의 실상을 여실히 봄으로써 번뇌의 당처(當處)에서

지혜를 얻으라”라고 했습니다.
 또한 “생사와 열반이 둘 아님 (不二)에 있어서 생사가 끝나고
 열반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생사 그자체로서 열반의 모습을 삼는 당시 당처(當時當處)의 불 이를 강조했습니다.
 그리하여 장래의 어떤 시점에 중생의 몸을
여읜 부처가 새롭게 오는 것이 아니라, 즉시의 현전에서 업력으로 받은 육신인
‘나’가 있는 그대로 이전과 이후가 아무런 다름이 없이 그대로 부처입니다.

화두도 내가들고, 망상도 내가 내고, 잠도 내가 잡니다

거짓된 나 자신과의 모든 싸움에서 이겨 참 나를 깨달아야 합니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일체의 생각들을 쉬고 一念에 들 수 있어야 하며,

一念에 든 나머지 一念이라는 생각조차 잊어버린 무념처에 들 수 있어야 합니다

一念에서 無念으로 無念에서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갈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공부는 모든 것으로 부터 배우겠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일체가 다 나 아님이 없다는 것을 일체로 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一切가 다 나의 스승입니다

衆生들이 愚昧한 까닭은 마음공부는 아니하고 먹고사는데 끄달려서 妄想만 익혔기 때문입니다.
 이 몸뚱아리가 나인 줄 착각하고 명리를 위해 욕심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마하가섭은

일의일발(一衣一鉢) 두타행을 하셨고

백장 스님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는 정신으로 생활했습니다.

몸이 건강하면 공부하기가 수월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몸이 건강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몸이 건강치 않은 만큼 더 절실하게 화두를 들 수도 있는 거예요

어느 정도 깊이 들어가면 먹지 않아도 사는 경계가 나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부처 자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몸뚱이가하는 것입니다

법문을 듣고 득도한 깨달은 내용을 요약하면

“사람들마다 나라고 얘기 하지만 나는 존재하는 바가 없다.”

다만 썩어서 사라질 이 몸뚱아리가 있어서 말을 하고 시비 분별심을

어 다른 사람과 다툼을 벌인다.

실제로는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삼라만상이 다 없는 것이다.

또 없는 그것은 뭣인고? 없지만 묘하게 있다 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득도를 하여 평생을 대도인으로 사셨습니다.

이렇듯 깨달음에는 남·녀 구별도 없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얼마나 간절하고 사무치게 참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보다 공부를 명확하고 수월하게 하려면 훌륭한 선지식(눈 밝은 스승)을 만나야 합니다.

훌륭한 선지식을 만나게 되면 공부기간을 크게 단축 시킬 수 있습니다.

선지식을 만난 다음에는 철저한 믿음으로써 모든 것을 스승에게 맡겨야 합니다.
금생에 눈밝은 스승을 만나는 염원(기도)하세요

만공스님은 “선지식을 믿는 정도에 따라 나 찾는 공부가 성취된다,”고 했습니다.
훌륭한 스승은 알게 모르게 제자를 해탈의 길로 인도합니다.

이러한 스승에 대한 신심을 바탕으로 하여 속절없이 윤회하는

‘나’에 대한 분심을 일으켜야 되고 다
 화두에 대한 강한 의심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근본 자리를 한번 깨닫고 난 후에도 계속 정진해서

한 두번 더 크게 깨우쳐야 합니다. 그래야 완전한 진리에 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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