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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의 곳간

마음이 가야할 길

 



그 길은 너무도 많은데 어느 길로 가야 하는가?
이 길이 맞은 듯해서 가지만 고개 돌려보니 저길도 괜찮은 듯하고

저 길로 가지만 또 이 길이 부럽네
눈, 귀, 코, 혀, 피부, 뜻으로 세상을 감응하면서 그것에 끌려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습관적으로 일체 법을 좋다 싫다 분별하게 될 때

그 분별이란 생각조차도 내지 말아야 되는데 잘 되지 않는다
당장 아프니 되지 않고!

지금 괴로우니 여유가 없고! 이겨낼 훈련을 한 적이 없으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짓게 되고 그리게 되고 꾸미면서 또 끌려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저 '강'은 움직임 없이 그대로인데 내 마음은 본래, 개골, 풍악을 그리워하는구나....

저 은둔하여 악업을 짓지 않고 중생의 이익을 위해 정진하는 스승이 보고

주는 자와 받는 자 시주하는 물건이
모두 청정하고 온 중생이 고통이 없기를 내가 중생 위해

선하게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인연 지어지기를

산중 생활은 방안에 있으나 밖에 있어도 별반 차이 없이
냉기로 몸을 휘어 감아 움츠려 드는 것을 달리 이겨내는 것이란

"무엇을 얻기 위해 정진하느냐?" 이것이 맞는 말인지 사유해본다..
"얻기 위해서라...."아니다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찰을 크고 장엄하게 꾸밈을 위해서도 아니고 신도를 많이 늘리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성품을 살피는 일이다" 그 기본은 바른 것이고 중생에게 이익을 주어야 한다...
비록 어리숙하게 보이고 바보라 소곤 돼도 상관없다....
곧장 남들처럼 이름나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문제없다
근사한 기와 법당 한채 없어도 "자성의 법당"에 의지함 다만 꾸준히 하다 보면..
"공부하는 수행자에게 제천의 모든 이들이 음식을 공양한다 하였다.."
음식과 의복 큰 사찰과 큰 스님 소리와 재물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 된다면

"딱! 그것뿐일 것이다"

주는 자와 받는 자 시주하는 물건이 모두 청정하고 온 중생이 고통이 없기를
내가 중생 위해 선하게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인연 지어지기를 발원합니다.

의식 없는 자가 있으랴 그대 의식이 있다면 잘 살필 일이다
지금 바로 생기는 의식으로 선행하면 부처와 다를 게 없고 악용하면 곧 중생이다.

그래서 참선이란!
의식을 현재화시켜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간절한 노력이라 사유한다
혹여, 내 눈과 귀와 코와 혀와 피부가 세상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그곳에서 고통과 즐거움이 나온다면

그것은 모두 내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지 세상과 환경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마음이 지금을 만들어 냄을 인정하지 못하고 드세게 마음 내는 자가 있다면...
안으로는 화병이 걸리고 밖으로는 눈 부릅뜨며 성질부리게 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내 책임이라고 인정할 일이다
스스로 욕심을 줄여 좋은 것을 얻더라도 기뻐하지 말고,

거친 것을 얻더라도 싫어하지 마라. 먹는 것이란
몸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니 탐내어 애써 좋은 것을 구하려 하지 마라.
단지 가만히 앉아 놀면서 맛만 탐내어 좋은 것을 구하기 때문에

나고 죽는 일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몸을 절제할 줄 알아서

스스로 욕심을 줄일 수 있는 이는 고요한 마음을 얻게 되느니라

"미충"이나 "태말충" 같이 살지 말자 미충이나 태말충은 같은 말이다.
미충은 원효 스님의 발심 수행장에 등장하는 벌레이고 태말충은

송나라 대혜종고 스님의 서장에 나오는 벌레다.
이 벌레는 사실 똥파리인데 이 똥파리는 더럽거나 깨끗함을 가리지 앉는다
그래서인지 깨끗한 음식에 더러운 것 묻히는 일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그것이 나쁜 행 인지도 모른다
또한 이 똥파리의 마지막은 맞아 죽는 것으로 대부분 끝난다...
그런데 이 똥파리가 앉지 못하는 곳은 불꽃 위다. 불꽃은 부처님의 지혜에 비유된다.
미충이 부처되기 위해서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니

지혜롭고자 하는 자라면 이 미충처럼 마음을 쓰면 안 된다.

하루에 단 오분이라도 앉아서 오늘 하루 어떤 마음 썼는지 살핀다면 악습을 버리고
지혜를 개발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를 낮추는 일 이거 정말이지 잘 되지 않는다. 노력은 하지만 전생 습이 두터워서 잘 되지 않는다
왜, 무엇 때문일까? 말하다 보면 내 자랑이고 세상사 불교, 정치, 문화, 이념.. 내 고집의 드러남이다.
내 생각이 마치 정답이고 진실인 듯 심취해 구업을 짓고 있다
경전 몇 구절 안 다고 고개 빳빳이 들면서 마치 내 철학처럼 뱉어내고
정치 지식 조금 있다고 누구는 좋고 누구는 정말 나쁜 놈이다.라고 정의해 버린다
내 생각이 언제나 우선이고 내 생각이 다 맞다고 착각하고 산다.
하다못해 걸인들에게 천 원짜리 하나 주는 것도 교만심으로 가득 차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마치 대단한 일 한 것처럼 포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 잘못하거든 판단 말고 그냥 나두라. 그들 또한 그 인과를 정확히 받는다
무엇이 혹여 잘 되었거든 너무 좋아 말라 그것 역시 때 되면 그 인과를 정확히 받는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때 되면 나보다 더 잘하는 이가 나오게 마련이다.
영원히 잘할 수 없는 일이니 잘한다고 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충 할 수도 없는 일이니 난감하다.
이렇게 해보자 "복 밭을 가꾼다!!"라고 사유하자
잘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하는 일이 있다면 복밭을 가꾸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복'이라는 것이 자전거 페달과 같아서 돌린 만큼 전진하게 돼있다

꾸준히 가고자 한다면 꾸준히 돌려야 한다.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자전거 페달과 같은 것이 있다.
필요한 이들에게 물을 공급해 줄 것, 다리를 만들 것,

험한 곳에 길을 낼 것, 효도할 것, 병든 이를 돌볼 것,
가난한 이를 도와줄 것, 삼보에 공양할 것,

설판 시주자가 되어 누구나 법회를 들을 수 있게
스승을 모셔 법문을 청할 것 등이다...                
당신의 하는 일이 잘 안된다면 많은 중생들의 이익을 위해

하나라도 부지런히 또 간절하게 해 보라
남과 이웃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자신 스스로를 보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도 나처럼 하셨을까?라고 사유해 보라

무지한 자에게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생겨난다면
그가 만든 그러한 업은 크거나 작거나 무릇 자신이 받아야 하며 남이 받을 수 없다.
악한 짓은 스스로 죄를 받게 되고 바른 일을 한 사람은 절로 복을 받게 된다네.
또한 각각 인연이 익게 되면 죄와 복은 스스로 대신하지 못한다네.
선을 익히면 선업을 얻게 되는데 역시 달콤한 보리종자를 심은 것과 같으니라.

저 피안의 다리 세 심교 - 피안교, 해탈교, 극락교, 세 심교, 세속의 다리
이 언덕(此岸)의 괴로움을 지나

저 언덕(彼岸)의 해탈과 열반에 도달하는 곳,
다리 노아 월천공덕 지어보세_()()()_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행하는
오만하고 방일한 자들, 그들에게 번뇌는 늘어만 간다.

탐욕에 빠져 살아가는 이는 누애가 고치를 짓는 것과 다를게 없다.
지혜로운 자는 이것을 알아서 탐욕을 미련없이 끊고 자유로워지느니라.

사람은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과보를 받는다.
착한 일 하면 착한 과보를 받고 악한 일 하면 악한 과보를 받는다.
비유하면 종자를 심는 것과 같으니 종자에 따라 그 과보 얻듯이
괴로움의 종자 심으면 나중에 저절로 받으리라.

이 세상에 무엇이 영원하리오!
우린 나서부터 죽음의 길로 뛰고 인간 쾌락을 좋다 하나 허무한 순간들
부귀영화 누렸어도 허전한 마음은 채울 수가 없다

벗어남의 맛을 알고 내려놓음의 맛을 아는 이는 근심과 악행에서 벗어나 진리의 기쁨을 만끽한다
시시각각 바뀌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마음은 자기 생각대로 정처 없이 헤매고 다닌다.
그러므로 이 생각들을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멋진 일이니
지혜로운 이는 생각들을 다스려 행복을 찾는다.
하지만 마음이란 얼마나 미묘하기에 이렇게도 포착하기가 어렵단 말인가!
그러니 해야 할 일은 생각들을 고요하게 만드는 것.
행복이란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찾을 수 있는 것.
성실하게 한 목표로 매진함으로써 지혜로운 이는 자신의 생각들을 종식시킨다.

그리하여 자신의 방황을 끝내고 가슴속 동굴에 자리함으로써
그는 자유를 찾는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