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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

이보시게 다 내려놓고 가세요(하심)



잘난 척하는 마음 내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심(下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교수행의 궁극으로 삼고 있는 무심(無心)조차도 사실 하심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심이 안 되는데 무심이 될 수가 있을까요?

첫째도 하심, 둘째도 하심, 셋째도 하심 하심이란 스스로를 낮추는 마음입니다.
마음공부하는 수행자는 최고의 덕목은 하심이다
그래서 수행 당시에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허리를 꺾고 절을 하였다.
또한 부처님께 아침저녁으로 500배씩 하루에 천배를 매일 하였습니다.
이렇게 절을 하는 것은 당연히 하심을 연습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마음을 낮추는 데서 참다운 공부는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잘났다’고 생각한다면 누가 감히 나를 가르칠 수 있을까요?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항상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고 다녔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반문하였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알고 있습니까?”
소크라테스가 답했습니다. “아니요, 저도 저를 모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그럼 당신이나 우리나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결코 같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스스로를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나 자신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을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앎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잘난 척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 얼른 알아차리고 ‘이 마음이 어떤 걸까,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참구 해나 가는 것이 마음공부의 비결이 아닐까요?
진정 ‘나’라고 하는 것은 어떤 걸까요? 있는 걸까요? 없는 걸까요?
‘나의 마음’은 또 어떤 걸까요? 어떻게 생겼을까요?
이를 분명히 알지 못한다면 크게 하심하고 선지식을 찾아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선지식 스님이 계시는 곳에 안거를 지내고자 많은 수행자들이 찾아왔습니다.
당시 그 곳의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었으므로,
상당수의 사람은 돌려보내야 할 형편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떠날 기미가 없었다
어느 날, 그 스님은 법당 앞에 장작불을 피웠습니다
의아해하는 사람들 앞에서 고기를 굽고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루 이틀 사흘 이러한 행위가 거듭되자 마침내 사람들이 스스로 걸망을 싸서 가버렸다
대단한 선지식인 줄 알았더니 사람을 잘못 봤군.’ 하면서 결국 두세 사람만 남고 모두
떠나버리자, 그 스님은 그때서야 장작불을 치워버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쭉정이는 모두 떠나고 알맹이만 남았으니, 이제 공부 한번 제대로 해봅시다.”

잘난 이는 잘난 척하지 않는다. 쭉정이가 될 것인가, 알맹이가 될 것인가?
그 선지식을 자신의 잣대로만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온 온갖 알음알이, 분별심, 고정관념을 일시나마 쉬어야
눈 밝은 선지식이 보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해야 공부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자존심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 스스로를 존중하듯이 남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나의 신앙이 소중하듯이 남의 신앙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나만 잘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잘난 이로 봐주는 것입니다.
모두가 본래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진정 잘난 이는 잘난 척하지 않는다. 잘난 척하는 이는 결코 잘난 것이 아니다.”
이곳에 오시는 모든 사람들이시여!
너의 자신을 돌이켜보고 잘못한일이 있었거든 이곳에 다 버라고 훌훌 떠나시게~~~

나무 석가 모니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