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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속 세상

雪 (沈默)

 

시간은 쉼 없이 일초 이초 삼초.
재깍재깍 “한 순간 잠시도 쉬지 않고 빨리 돌아간다.
하루가 날마다 바삐 움직이며 걷고 뛰며 살아가게 되는데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만 간다.

언제쯤이면 빨리 지나갈까 하는 생각을 가운데
하루를 지나고 보면 어느덧 따사로운 봄이 마침내 찾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또다시 뜨거운 여름이 오고
마침내 가을 단풍잎이 물드는 계절과 함께
또다시 추운 한 겨울이 금방 찾아온다.

그렇게 보이지 않게 흘러가는 시간과 세월 속에
나이는 하나 둘 늘어만 가고 어느새 우리들은 청년기를 지나서
흰머리가 하나씩 늘어나는 노년이 되어
서서히 보이지 않는 죽음의 시간들을 기다리면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되돌아 지나온 세월과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서
그 긴 세월 속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루어 놓은 일은 과연 무엇이 있었고.
또 얼마 남지 않는 남은 생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라며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살아온 나날들을 되돌아보면서 생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속 세을 살아가는 생활인은 오로지 돈과 권력으로 인한 집착 때문에
욕심을 채우며 어떤 때는 진실까지 왜곡하며 살아온 날들도 있겠지만
이제 앞으로 남은 여생은 조금씩 비우며 내려놓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진실한 마음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
“生者는 必滅”이라.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음을 피할 수가 없는데
지금 닦지 않고 업을 쌓아 놓은 채 이익에 눈이 멀어
삶에 급급해서 살아가면서 예고 없는 죽음이 당장 내일 찾아온다면
어찌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지금 나는 무조건 돈을 많이 모으고 나중에
언젠가는 죽기 전에는
좋은 일을 하고 보시를 하고 죽는다”라는 말을 하는데
죽음은 어느 순간 느닷없이 아무런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행은 생각한 지금 이 순간에 바로 해야 하는 것이지
다음으로 미룬다는 것은 나중에도 할 수가 없는 일이고
미래의 일은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도 시간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흘러만 가는데
우리의 마음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쉬지 않고 가는 시간과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우리의 이 한 마음은 잘 잡을 수도 있고 멈출 수가 있다.
잠시 자리에 앉아 쉬며 한 마음을 내려놓고 보라.

‘공수래공수거 인생’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는 마지막 삶과 시간.
중생들아! 끊임없이 갈구하고 집착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만
남는 것은 한 물건도 없다네, 本來無一物이야!
이 보시게들 잘 살다 잘 노닐다가 돌아가세

겨울 맛을 제대로 느끼는 요즘
많이 춥네요 유행성 감기에 고생하고 마시고요
따듯하게 옷챙기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모든 님들 좋은 일들로만 가득하십시오

合掌 _()()()_

 

 

 

 

 

 

마음은 인연 따라 자유롭게 나타나

본래면목이 분명하다면 선(禪)이라 하든 교(敎)라 하든,
부처라 하든 중생이라 하든, 입을 열든 입을 다물든,
앉아 움직이지 않든 서서 다니든, 생각을 하든 생각을 잊든,
깨어 있든 잠을 자든 아무 상관이 없다.
따라서 일부러 선이라 할 것도 없고 교라 할 것도 없고 부처라 할 것도 없고
중생이라 할 것도 없고 고요히 앉아 있을 것도 없고 서서 다닐 것도 없다.
오히려 선이라 하든지 교라 하든지 부처라 하든지 중생이라 하든지 구분하고
차별하여 세우고 무너뜨리고 한다면 선(禪)과는 아무 상관이 없게 된다.
선은 원래 보고 듣는 온갖 일과 온갖 행위와 온갖 생각에 착착 들어맞아서
털 끝만큼의 어긋남도 없다.
그러나 생각을 앞세워 따지고 헤아려 간다면 단 한 가지 일이나 단 한 가지 행위나
단 한 가지 생각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놓아두면 본래 옳지 않은 것이 없지만,
마음을 가지고 헤아리면 한 가지도 옳은 것이 없다.
이것을 두고 털 끝만큼의 차이로 하늘과 땅만큼이나 벌어진다고 말하는 것이고,
털 끝 만한 것이라도 있으면 바로 티끌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번갯불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요컨대 본래면목은 언제 어디서나 조금도 부족하거나 모자라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생각을 일으켜 문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생각을 일으키면 상(相)을 따라 분별하고
분별하게 되면 취하고 버림이 있게 되니 가면 갈수록 더욱 어긋나기만 한다.
그러나 아무리 어긋나더라도 진실을 알고 보면 어긋남이 없다.
마치 본래 정해진 모습이 없어서 인연 따라 자유롭게 모양을 바꾸는 것이 물의 본성이어서,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겨서 어떤 모양으로 변하더라도 본래의 물은 조금도 바뀜이 없이
그대로 물인 것과 같다.
만약 물이 자신의 본성을 알지 못하고 인연 따라 바뀌는 모양에서 자신을 찾는다면
물은 결코 자신을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은 본래 모양이 없어서 인연따라 자유롭게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와 같이 인연따라 나타나는 마음이 바로 우리의 의식이요 느낌이요 의지요
지식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식이나 느낌이나 의지나 지식 등 알음알이에서
자신의 마음을 찾으려고 한다면 마치 물이 그릇의 모양에서 자신을 찾으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마음은 어디에든 나타나 있지만 스스로는 정해진 모습이 없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달았으면 모든 곳에서 마음을 볼 수가 있지만, 마음을 깨닫지 못했다면
어떤 방법을 통하여 어떤 곳을 찾더라도 어디에서도 마음을 찾을 수는 없다.

인연 따라 흘러가는 ‘이것’은 흘러가지 않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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