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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물처럼 마장과 싸워이겨내라

우리는 세세생생 버릴 줄 모르는 집착의 세계에서 살아왔습니다.   『능엄경』에는'오십종변마사(五十種辯魔事)'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색 · 수 · 상 · 행 · 식 5 온의 각각에 해당되는 열 가지씩의 마구니의 일을 곱하면 오십 종 변마사가 됩니다. 곧 쉰 가지의 마구니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 일상생활이 전부 여기에 해당됩니다. 심지어 머리를 깎고 절에 계시는 큰스님들이나 큰 절의 조 실 스님이라도 이 오십 가지 마구니의 장애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능엄경』에서는 무섭도록 마장에 대해 아주 세밀하게 밝혀놓았는데, 그것들은 과연 어디로부터 생겨난 것일까요? 이 마구니 모두가 내 마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내 부모, 내 자식, 내 남편, 내 아내가 지워진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가 '나는 그 모두를 지울 수 있어!'라고 한다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중생에게 있어서는 가족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참으로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참으로 '얽혀 붙는 번뇌'가 되어 무섭도록 우리를 핍박하지만, 반드시 이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능엄경』의 오십 종 변마사를 공부해 보면 그 마장의 내용들이 일반불자들의 일상생활 가운데에서도 모두 체험되고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염불, 주력, 화두, 경전공부, 참회, 절 등의 기도나 수행을 할 때 오십 가지 마구니의 일이 벌어집니다. 그때마다 그 고비에 흔들리지 말고, 결국에는 극복해서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오십 종 변마사를 비롯한 팔만사천 마구니 모두가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별심이요 망상 심이며, 이 모두가 바로 애착하고 집착하는 데서 비롯되는 일들입니다. 소리도 빛깔도 냄새도 모습도 없고 잡을 수도 떨칠 수도 없는, 불교에서 불성, 원각, 진아라고 이야기하는 이것이 바로 원점인데, 언제부터인가 버릇이 들고 물이 들어 자꾸만'무엇을 붙들고 싶고 의지하고 싶고 당기고 싶은'집착을 주춧돌로 삼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출발점은 어디인지 모르는데, 한 번 붙들고 두 번 붙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익어져서 버릇이 붙어버린 것입니다. 마치 처음에는 너무 속상해서 몸에서 받아주지도 않는 술을 억지로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이것이 습관이 되어 저절로 술을 퍼마시게 되고 나중에는 술 없이는 살 수 없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것이 우리의 버릇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버릇이 붙고 집착이 붙어 어떤 일에도 망상으로 추측하고 짐작할 뿐,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수 백 가지, 수 천 가지의 습관이 붙어 '속지 말아라 속지 말아라' 고끊임없이 외쳐도, 집착과 번뇌에 끌려 다니고 허상에 속으며 살뿐입니다. 다른 일은 그만두고라도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것만 한 번 돌아보십시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겉으로는 자식을 위하고 부모를 위하고 배우자를 위하는 것 같지만 , 사실은 전부 내 욕심을 채우는 일일 뿐, 진짜 자식을 위하고 배우자를 위해주는 사람은 참으로 드뭅니다. 곁에 붙은 내 욕심이 장난을 하고 꾀를 부리고 나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나의 나쁜 습관을 하나씩 하나씩 없애 나가는 노력들이 자리를 잡아가야 하는데, 자꾸만 내 욕심이 얽혀서 사건을 더 크게 키우고 있는 것이 우리 중생들입니다. 우리는 세세생생 붙들면 놓을 줄을 모르는 집착의 세계에서 살아왔고, 집착의 세계에서 익힌 버릇 때문에 모든 것에 대해 착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내 몸이라는 것이 거짓부렁이요 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는 이 마음이라는 것을꼭 어떤 물체의 형태로 우리 몸속 어딘가에 있다고 착각합니다. 억지로 이해하기 쉽게 '마음'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은 그 이름에 집착해서, '내 마음' '너 마음' 또는 '김 아무개의 마음, 박 아무개의 마음'하면서 '마음이 있다'라고 착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결국 모양이 없는 것이 마음임을 모르기 때문에 생사윤회를 하게 됩니다. 이름뿐인 '나, 마음, 부처...........'갖은소리를 다 하고 여러 이름을 붙여놓은 이것을 멀리 떼어 내버려야 하는데 떼어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주 맑고 맑은 투명체의 구슬이 하나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구슬은 자체가 아주 깨끗하기 때문에 붉은 환경에 처하면 붉은 색깔을 띠어 붉게 보이고, 푸른 환경을 만나면 푸른 색깔을 띠어 푸르게 보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구슬이 본래 붉다고 생각하고 이 구슬이 본래 푸르다고 생각합니다. 깨끗한 진리의 세계에는 이런 색이나 모습들이 없는데, 진리 속에 이런 색이나 모습이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맑은 구슬은 붉은 환경에 가면 붉게 보이고 푸른 환경을 만나면 푸르게 보일 뿐, 본래 구슬 자체에는 붉고 푸른 빛깔이 없습니다. 우리의 성품 또한 깨끗한 원각자리, 본래 청정한 부처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형체 있는 이 몸을 주춧돌로 삼아'본래 청정한 부처' 까지도 꼭 어떤 모양을 가진 것으로 상상하게 됩니다.

우리가 비록 진리의 세계를 체험하지는 못했다고 할지라도진리의 세계에는 '내 몸이다 · 내 마음이다'라고 하는 어떤 물질적 세계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만은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해하여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만약 착각 속에 빠져 있으면 진리에 대해 문답을 해도 엉뚱한 답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착각을 주춧돌로 삼아 살다 보면 눈앞의 모든 헛된 것을 놓아버리지 못합니다. 착각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지금의 상태를 버리기는커녕 더욱 붙들고 늘어지게 됩니다.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자꾸만 집착을 덧붙여 나가서 더욱 얽혀 들고 있는 것입니다. 내 몸뚱어리를 있는 그대로 두고 미련도 떨어져 나가거나 집착도 떨어져 나가거나, 내 가족을 그대로 두고서 이별을 할 수 있는 차원이 되면 참된 보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질체와 상대해서 이별을 할 수 있다고 하면, 모든 애착이 떨어져 버리고 미련이 떨어져 버리고 망상심이 떨어져 버린 차원입니다.

실제로 이 경지를 체험을 하게 되면 지금처럼 미련이나 집착으로 뒤엉켜서 범벅이 된 상태가 아니라 홀가분하고 부담이 없는 세계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도 자꾸 집착을 하고그 공부에 대해 엉뚱한 기대를 걸게 됩니다. 도를 깨친다고 하면 여태껏 모르던 세계가 다 알아지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도를 깨치고 나면 영어, 독일어, 일본어를 저절로 다 알게 되고, '하늘천 땅지'의 천자문도 저절로 다 알아진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공부를 해서 도를 깨치고자 하면 무엇보다 먼저 집착을 떨쳐버리고 착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지금의 내 몸뚱어리를 그대로 두고 집착을 떨쳐버릴 수 있고 눈앞에 있는 모든 모습에 구속을 받지 않는 차원을 얻으면, 그 어떤 것 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청정한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때의 청정한 세계는 더러워진 것을 때를 닦듯이 닦아내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지금의 있는 상태를 그대로 두고,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고 견줄 수도 없는 깨끗한 것을 체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리 다리는 짧고, 학의 다리는 긴, 그대로가 평등이고 그대로가 청정입니다. 대우주세계 그대로가 우리의 마음이 나타난 상태입니다. 진리가 따로 있고 지금 나타나 있는 모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그대로 현재의 모습이 요 현재 모습이 그대로 진리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중생들아! 나무아미타불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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