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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묵이 마음이다

우리의 목전에 전개되고 있는 모든 것은 그대로가 허상입니다. 이 허상이 바로 허깨비입니다. 허깨비이기 때문에 거품 같고 안개 같고 구름 같고 연기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허무한 것입니다. 이 허무한 것에 마음을 두고 산다는 것 자체가 일장춘몽입니다. 즉 거북이의 털, 토끼의 뿔입니다.

여기에는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현실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지 현실을 벗어나면 어떠한 문제도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여기에서 산승이 하는 말 모두가 거짓입니다. 그러나 거짓 가운데 진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법입니다. 이것은 허무한 말과 뜻과 생각이 아닙니다. 도를 이룸으로 법을 알 수 있는 것이지 말로써는 절대로 깨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도는 선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법이다, 선이다, 도다, 하는 이것이 바로 진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을 뜻으로 헤아려서 알려한다면 이것은 헤아리는 것이지 결코 법이 될 수 없습니다. 선은 생각이 아닙니다. 생각을 내거나 일으키게 되면 생각을 내고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될지언정 결코 선이 될 수 없습니다. 도와 선과 법은 이름이 다를 뿐이지 내용은 차이가 없습니다. 즉 삼위일체입니다. 이 도와 선과 법이 서로 상응하여 도를 이루고, 도를 이룸으로 해서 안목이 열리므로 확철대오하지 않고는 우리 모두의 근본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선과 도와 법이라고 하는 것은 깨침을 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체만물을 보지만 제눈을 제가 볼 수 없는 것처럼 깨침이라는 것은 깨침 자체에 가서는 깨침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둠이 있을 때 밝음이 있는 것이지 일단 밝고 나면 어둠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확철대오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으면 깨침도 없고 깨침 자체가 성립될 수 없습니다. 깨침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법, 선, 도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높이와 크기와 넓이와 그 모양이 비슷한 가설이 필요합니다. 이 가설은 본 건물을 짓기 위한 임시조치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이 건물이 완성되면 가설은 자연히 소멸돼 필요가 없게 됩니다. 도와 선과 법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깨침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고 존귀한 부처님의 깨침입니다. 그래서 깨치면 바로 부처요. 깨치지 못하면 중생입니다. 우리 모두가 똑같이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이 곧 부처(是心卽佛)입니다.

우리의 마음, 이 마음은 과연 어떤 것인가. 현재 우리가 앉고, 눕고, 가고,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 즉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바로 마음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바로 알고 하나가 될 때 그것이 깨침이고 부처고 도고 선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입니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존재하지 만약 내가 없으면 동시에 모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있으면 모든 것이 있고 마음이 없으면 모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모든 것의 근본이요, 모든 것은 마음으로 인해서 성립되기 때문에 마음밖에서 다른 무엇을 찾아서는 안됩니다.

우리 마음은 절대평등하고 이것은 어떠한 장애와 걸림이 없기 때문에 마음 자체 그대로가 자재무애하고 상주불생(常住不生)하고 상주불멸(常住不滅)하는 것입니다. 영원불멸의 생명체입니다. 마음이 마음을 알지 못하면 그대로 미혹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절대평등한데 마음을 모르면 그대로 불평등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불평등이 되면 이로 인해서 모든 갈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이 그대로 변질됨으로써 업에 끄달려 나고 죽는 등 우리의 근본과 아무 상관없는 결과를 초래하여 자기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사생육도라 합니다. 중생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원력과 지혜와 자비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와 자비, 원력, 이 셋이 바로 팔만사천의 법문입니다. 팔만사천의 법문은 중생의 근기가 모두 달라서 근기에 맞게 말씀하다 보니 이처럼 방대한 논설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한 파도로 인해서 천파만파가 생기는 것인데 이 천파만파라고 하는 것은 각기 모양은 다를지언정 그 내용인 짠맛에는 하등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법문이 바로 우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문이 마음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가리키는 손가락인데 마음을 보아야지 마음은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고 있는는 것이 중생이지요. 이렇게 되면 마음하고 아무런 상관없이 또 하나 마음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마음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의 근본사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자신을 알지 못하는 것이 큰 불행이고 부처님의 진정한 법을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불행한 것입니다. 모든 불자는 이런 점을 크게 뉘우치고 대오각성하여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한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담아서 갈 수 있는 사람이 불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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