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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

보리의 마음!


보리의 마음 빈 배와 같은 자유인 대상을 높게 볼 것도 없고 낮게 볼 것도 없다
훌륭하다 해서 훌륭한 게 아니고, 높다 해서 높은 게 아니며, 낮다 해서 낮은 게 아니니 평등하게 보라
대상을 내 몸과 같이 보라. 그것이 불심이다.
부처님이 지금 내 앞에 계신다 하더라도 높이 보지도 말 것이며 개미 새끼 한 마리, 풀 한 포기라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벌레를 보고 징그럽다 하고, 오물을 보고 더럽다 하지만 그것은 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상대를 보고 어떻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형상, 그 마음이 둘이 아니니 주인공 자리에 계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
높은 산 위에 올라서서 마음을 내려다 보라. 그러면 크다 작다의 구별에 앞서서 평평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이 생활에서도 그 위치를 활용해 보라. 모든 경계의 높고 낮음, 좋고 싫음의 차이가 달라 보일 것이다
나아가 모든 경계를 텅 빈 마음으로 대해 보라. 빈 배처럼 되어 보라. 바람이 부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내세울 나가 없기에 파도에 부딪힘도 없게 될것이다. 빈 배와 같은 자유인이 되세요

‘나’라는 울타리를 허물어라!

사랑 중에 가장 지고한 사랑은 불·보살의 사랑이다.
그 사랑은 워낙 크고 넓어 대자대비요. 일체 만물을 한 몸으로 보기에 동체대비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사람들은 거의 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당연시한다.
아낌없이 주는 삶, 누구라도 감싸는 삶을 말할라치면 그건 성현의 몫이라고, 그게 어디 쉬운 일이냐고 반문한다.
자기중심적인 삶의 태도 때문에 늘 불안· 공포·고통·긴장에 시달리면서도 말이다.
그렇다면 부모와 자식 사이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건 부모가 자식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나’라는 울타리가 없기 때문이다.
아낌없이 주는 모정(母情)을 닮은 사랑, 그런 사랑이 있는 곳엔 평안과 만족이 있다.
거기엔 미움이나 적의(敵意)가 발을 붙일 수 없다. 억압·공격·학대·부정 따위가 따르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그도 사랑하지 않는다.
내가 상대를 지극하게, 사무치도록 사랑하면 그도 내게 그렇게 한다.
꽃이나 미물도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
마음이 가지 않는데 상대가 내게 응해 올리가 없다.
고로 먼저 사랑해야 한다. 누구라도 감싸고 안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자석과 자석이 감응하듯이, 물과 우유가 잘뒤섞이듯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마음과 마음이 서로 응하고 서로를 찾는다. 마음의 화답이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고로 사랑의 마음을 방사(放射)하라. 아낌없이 주는 마음을 내라. 넓힐 수 있는데 까지 넓혀라.

사랑이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정화할 수 없고 바꿀 수 없고 쇄신할 수 없다.
나를 바꿀 수도 없고 상대를 바꿀 수도 없다. 부처님의 대자대비가 우리에게 준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