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현재 사람의 몸을 받아 살고 있는 나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아득한 옛적부터 수많은 몸을 받으며 윤회를 거듭해 왔습니다.
수백 생 벌레로 살았다가 수천 번 짐승이 되었다가 수만 번 남자로 혹은 여자로
부모로 자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그 무수한 생애를 통하여 갖가지 버릇, 갖가지 용심(用心)을 키우며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입니까?
수많은 생애동안 익혔던 버릇과 용심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나"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나"에게는 벌레 때의 행동도 터져 나오고, 짐승 시절의 버릇도 터져 나옵니다.
인간으로 살면서 얽히고 설키고 가슴에 숯이 박히고, 서로 해치고 못살게 굴었던 행동과 마음 씀씀이가
수시로 바깥으로 표출됩니다.
겉모습만 지금의 모습과 같은 사람의 가죽을 덮어썼을 뿐,
대부분 전생의 버릇과 용심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를 진짜 "나"라고 할 수 있습니까? 참으로 믿을 수 있는 진짜 "나"입니까?
잘 돌이켜 보십시오.
실제하는 지금의 "나"는 인연의 흐름이요 껍데기일 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무아(無我)다, 공(空)이다"라고 정녕 윤회의 결과로 "나" 앞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나"라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인연의 흐름일 뿐입니다.
인연 있는 분들을 어떻게 편안하게 해 드리고
어떻게 받들어 드리고, 어떻게 저분들에게 이바지해 드릴까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속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야 합니다.
향상의 길로 나아가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의 몸을 받았을 때
주위의 모든 환경과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서 업을 녹이고
깨달음을 열어가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일상삼매(日常三昧), 일행삼매(一行三昧)를 하게 되면 일을 즐길 수 있게 되고, 그러면 무엇이든 열심히 할 수 있게 됩니다
‘일상삼매’란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 한 눈을 팔지 않고 온 사력을 다해 집중하면서 쥐구멍을 노리는 것과 같아요.
만약에 고양이가 조금만 딴생각을 한다면 쥐 사냥은 실패하게 됩니다
일상삼매란 바로 생활 속에서도 이렇게 하라는 것이지. ‘일행삼매’는 어미닭이 알을 품듯이 하라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계란이 병아리가 되기 위해서는 어미닭이 오랫동안 알을 품고 있어야 하지. 때가 되면 알이 부화하듯이, 모든 일에도 때가 있는 법입니다. 때를 기다리며 몰입할 수 있다면 그것은 큰 즐거움이지.” 선의 궁극적인 목적은 견성성불이다.
하지만 부처를 이루기 위한 과정은 얼마나 험난한 길인가.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자기마저 놓아야만 가능한 일, 그것을 어찌 즐길 수 있다는 것일까.
“결과에 매달리면 그것은 벌써 실패한 것. 집착하는데 무엇을 얻을 수 있겠나. 무심(無心)해야 얻을 수 있어요.
‘무심’이란 무념무상과도 같은 말이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고 있는 일 외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무심’입니다. 무심해지면 고통이 즐거움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을 즐길 줄 알아야 선에 세간이 어디 있고, 출세간이 어디 있어,
세간에서도 무심을 얻으면 출세간이요, 출세간이라도 무심을 얻지 못하면 세간과 다를 바가 없는 것.”
“선에는 화두를 드는 선도 있고, 염불 하는 선도 있고, 묵조하는 선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수행법을 찾는 일이지. 평생 관세음보살만 외던 사람에게 화두를 들게 하면 오히려 역효과야. 지적(知的)인 사람에게는 화두를 드는 선이 좋고, 의지가 강한 사람에게는 묵조선이 적합해. 화두 없이 그냥 앉아서 자기를 비추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거든.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염불선은 누구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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