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과 지옥은 자기 스스로 만듭니다
마음자리 찾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
“만법이 마음에서 일어나니 어려움 이겨내는 지혜도 마음공부 통해야 얻어요”
‘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늘 ‘나’와 함께 있으면서도 중생들은 ‘나’의 참모습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어떤 것을 ‘마음’이라고 합니까. 마음속에는 우주법계 삼라만상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마음을 나 합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바로 내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모르고는 내 근본을 알지 못하고, 더 나아가 모든 것을 알기 힘듭니다.
자기을 모르는데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쓴다고 한들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마음’의 정체를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불교의 가르침은 ‘마음’ 이 핵심입니다.
부처님 말씀의 골조가 이 ‘마음’이고 수행의 근간이 되는 것도 이 ‘마음’입니다.
본래 마음자리는 청정무구합니다. 그리고 본래 마음자리는 그 마음이라는 것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생이어서 마음을 움직여 8만4천 번뇌와 망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마음을 찾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가 참선입니다.
참선을 통해 마음을 밝힐 수 있습니다.
불자들은 아마 이 말을 너무나 많이 들어 질리고 식상해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빼놓고 불교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마음’을 밝히는데 참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참선을 뺀다면 허수아비와 다름없습니다.
보리의 마음 빈 배와 같은 자유인이 돼라, 대상을 높게 볼 것도 없고 낮게 볼 것도 없다. 훌륭하다 해서 훌륭한 게 아니고, 높다 해서 높은 게 아니며, 낮다 해서 낮은 게 아니니 평등하게 보라 대상을 내 몸과 같이 보라. 그것이 불심이다. 부처님이 지금 내 앞에 계신다 하더라도 높이 보지도 말 것이며 개미 새끼 한 마리, 풀 한 포기라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벌레를 보고 징그럽다 하고, 오물을 보고 더럽다 하지만 그것은 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상대를 보고 어떻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형상, 그 마음이 둘이 아니니 주인공 자리에 계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
높은 산 위에 올라서서 마음을 내려다 보라. 그러면 크다 작다의 구별에 앞서서 평평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이 생활에서도 그 위치를 활용해 보라. 모든 경계의 높고 낮음, 좋고 싫음의 차이가 달라 보일 것이다
나아가 모든 경계를 텅 빈 마음으로 대해 보라. 빈 배처럼 되어 보라. 바람이 부는 대로, 물이 흐르는 대로 내세울 나가 없기에 파도에 부딪힘도 없게 될 것이다. 빈 배와 같은 자유인이 돼라
보리심!
나는 나는 보리마음 내기가 원입니다.
모든 윤회 끊어지고 온갖 고통 벗어나서
현실 생활 태평하고 안락국토 바로 가서
고해중생 도우면서 불국낙원 이루어 연꽃 피는 자비동산 불화상에 모이기를 엎드려서 비옵니다. 두 손 모아 비옵니다.
나는 나는 깨달아서 이 세상 빛이 되어 외롭고 슬픈 중생 인로왕 보살되어
부처님의 넓은 신 품 해탈하여 고해중생 모두같이 저 고향에 건너가길 엎드려서 비옵니다. 두 손 모아 비옵니다.
나무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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