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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삶의 이야기

외적인 형상은 다르더라도 본질은 하나다

 

 

새끼든 가마니든 본질은 ‘짚’이다. 외적인 형상은 다르더라도 본질은 하나다. 그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알리는 것이 가장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부처님 본인도 아마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완벽한 행복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로 드는 것이 하나 있다. 핵심을 바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를 돕는 데는 아주 괜찮은 비유입니다. 새끼 보셨죠? 가마니 보셨죠? 그 둘은 서로 다른 제품입니다. 그런데 그 제품들의 재료는 뭡니까? 짚이죠. 제가 그렇게 강조하는 ‘공’의 핵심은 ‘짚’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제품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를 제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문제예요. 부부 간에도 서로 다른 제품이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니 티격태격할 수밖에요. 하지만 두 제품도 ‘짚’이라는 하나의 근원은 똑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공’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입니다. 수백 가지 제품이 있지만, 재료는 모두 똑같은 ‘짚’이에요. 이걸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불교입니다.

정리하겠다. 지금까지 우리는 ‘나’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나’라는 존재가 ‘공’인 줄 알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 그럼 왜 ‘공’이냐. 모든 존재와 현상들이 서로 연기법으로 얽혀있기 때문에 ‘공’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우리가 단일하게 독립돼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존재들이 개별적으로 독립돼 있다고 이해하면 집착을 하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수화풍[사대]으로 이루어져 있고, 오온[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가 생기고 존재가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공’입니다. 그럼 뭐가 중도냐. 내가 공한 줄 알고 행위하는 것, 그것은 ‘나’를 버리고 살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나’를 버리면 내가 중도로서 존재하고 있고, 중도로서 행위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일희일비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중도를 이해하면 삶이 달라집니다. 중도의 사고방식은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훨씬 지혜로워질 수 있습니다. 중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바로 중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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