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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안의 곳간

자비로운 신심!

 



“뭔가 새롭게 해야겠다” 발심하고 실천합시다
“혹한의 추위가 없으면 저 눈 속에 핀 매화가 어찌 사람의 시선을 끌 수 있는 향기를 얻겠는가”
설중매(雪中梅)가 아름다운 꽃과 향기를 얻기 위해서 혹한의 겨울을 견뎌내듯이 우리 중생도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이것을 절집에서는 발심(發心)한다고 합니다.
뭔가 새롭게 해야겠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된다 해서 새롭게 마음을 내는 것이 발심입니다. 발심하기까지가 어렵다고 했어요.
마음을 내고 각오만 가지면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며 편안이며 안락함을 전부 이룰 수 있어요. 그렇게 발심을 했건만 아직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처음의 발심을 잘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요.

이번 겨울이 몹시 힘들 겁니다. 추위도 추위지만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의 고통도 심할 것이고, 대학을 가지 못한 고통도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은 잘만 사는데, 다른 이들은 행복한데 왜 나만 이런 고통을 겪을까 하는데 실제 우리가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 이웃 사람들도 다 나름대로의 고(苦)를 가지고 삽니다.

화엄에서는 이 세계를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세계라 해요.
중중무진이라는 것은 거듭거듭 중첩되고 중첩돼 있고, 겹치고 거듭되는 것이 끊임이 없고 다함이 없다는 말이에요.
그러니 어떤 행복이나 고통도 자기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고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자비입니다. 자비를 표현하는 방법 중 첫째가 보시입니다.
보시를 통해서 서로서로 억눌리고 움츠려 들고 외롭고 두려운 마음을 없앨 수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재보시지요.
또 법보시가 권장되고 있는데 꼭 책을 나눠주는 일뿐 아니라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도 포함이 됩니다.
또 무외시, 즉 두렵고 무서워할 때 그 두렵고 무서운 마음을 없애주는 것도 보시행입니다.

보시는 너와 나의 만남의 시작입니다. 사실 보시 행위가 이루어지는 시간은 지극히 짧습니다.
보시를 하는 시간은 찰나지만 그 보시를 함으로써 얻어지는 공덕은 무한히 깁니다. 진정한 보시는 마음의 찌꺼기를 다 없애야 하지만 보시 후 생기는 기쁨은 번뇌가 아니라 공덕심입니다. 그래서 십 년, 이십 년 뒤에, 임종직전에도 그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요.
이것이 보시의 공덕입니다. 보시라는 게 베풀고 어떤 결과를 내 눈으로 확인해 물질로 받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받는 것이고, 또 그것이 무한히 오래가는 것이지요.

누가 달라고 하면 무조건 주세요, 이유 따지지 말고. 그렇게 주다 보면 받는 사람도 미안한 마음이 들게 돼요.
미안한 생각이 들어 나도 남에게 뭔가를 베풀어야지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마음에 잠들어있던 불성이 눈을 뜹니다.
다른 의미로 보면 보시라는 것은 간탐심, 즉 욕심을 버리는 것이에요, 자꾸 욕심을 퍼내다 보면 과거세월에 지은 가난한 업이 녹아집니다. 빈궁업이 없어진다는 말이지요. 보시의 궁극적 목적은 반야의 세계로 가기 위한 것입니다.
반야가 지혜 아닙니까. 지혜의 눈을 뜨고 보면 이 세계는 다 중중무진, 나와 무관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 하나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 나의 발심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괴롭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있더라도 절을 하고 경을 읽고 하다 보면 마음이 차차 안정이 됩니다. 그래서 수행이 필요합니다.
옛날 스님들은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한다고 했어요. 이 어려운 시기를 그냥 속상해만 하고 지낸다면 이중으로 시간을 소비하는 겁니다. 더 큰 웃음과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올 가을을 지혜롭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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