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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속 세상

晩秋

불자들이 나누는 인사말에 ‘여여하셨습니까?’

한자로 말하면 같을 여(如)로 ‘한결같으냐’란 의미입니다. 즉 변하지 않고 속되지 않게 부처님께 귀의한 그 믿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느냐란 인사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여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여심을 흩뜨리는 것이 산란심(散亂心)입니다.

산란심에는 7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초기경전 범어본에 의하면 첫째 브야디(vyadhi)로 심신이 건강하지 못한 질병입니다. 이번 캘리포니아주 묻지 마 범행도 이런 류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범인에 의해서 저질러졌습니다. 둘째는 스티아나(styana)로 마음은 있어도 행하지 못하는 무기력을 말합니다. 셋째는 삼사야(samsaya)로 어떠한 의혹이나 우유부단을 일컫습니다. 넷째는 프라마다(pramada)로 무감각이나 무관심을 말합니다. 다섯째는 알라스야(alasya)로 게으름입니다. 여섯째는 아비라티(avirati)로서 감각적인 것에 이끌리는 욕망과 욕정을 가리킵니다. 일곱째는 브란티 다르샤나(bhranti darsana)로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믿고 주장하는 망령된 견해입니다. 또는 그릇되거나 쓸모없는 지식이나 환상을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한결같은 마음을 방해하는 요인들입니다.

그렇다면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만 한 것일까요?  부처님의 말씀은 우리의 고민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이 바라나시 녹야원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은 다섯 비구에게 설법하다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비구들이여! 내가 물을 테니 아는 대로 답하라. 육체(色)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인가, 시시각각 변해서 무상한 것인가?” “무상한 것입니다.” “무상한 것이라면 즐거운 것인가, 괴로운 것인가?” “괴로운 것입니다.” “육체가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라면 ‘ 그것은 나의 것이며, 나이며, 나의 본체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我]가 아닙니다.” “그러면 정신의 세계인 느낌(受)과 생각(想)과 의지(行)와 의식(識)은 어떠한가?” “그것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며, 즐거운 것이 아니며, 나의 것도 나의 본체도 아닙니다.” “참으로 그러하다. 그렇게 관찰하는 것이 옳다. 

모든 존재의 무상을 알고 있으므로 탐착하지 않게 되고 탐착 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을 얻게 된다. 해탈을 얻게 되면 ‘이제 미혹한 삶은 끝났다. 더 이상 미혹의 삶을 되풀이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것은 ‘법신(法身)’입니다. 법신을 보는 사람은 마음 또한 한결같이 유지합니다.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지 아니하므로 늘 ‘한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그 마음이 산꽃이고 계곡을 흐르는 물입니다. 항상 여여[茹茹]하므로 자태가 곱고 평화롭습니다. 마음이 행복하다는 뜻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하겠습니다. 여여한 그 마음이 행복을 여는 문입니다. 늘 평정심을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꽃의 향기가
제 아무리 짙더라도
그 향은 바람을
거슬러 퍼질 수 없다.
그러나 순수한
마음에서 풍기는
덕의 향기는 남는다.
순수의 마음속엔
희망이 있지만
헛된 욕망엔 희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