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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독한 신심을 일으켜 등불을 밝히세요 “번뇌를 지우고 지혜를 별도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번뇌가 있되 그 번뇌에 어둡지 않고 번뇌의 실상을 여실히 봄으로써 번뇌의 당처(當處)에서 지혜를 얻으라”라고 했습니다. 또한 “생사와 열반이 둘 아님 (不二)에 있어서 생사가 끝나고 열반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생사 그 자체로서 열반의 모습을 삼는 당시 당처(當時當處)의 불 이를 강조했습니다. 그리하여 장래의 어떤 시점에 중생의 몸을 여읜 부처가 새롭게 오는 것이 아니라, 즉시의 현전에서 업력으로 받은 육신인 ‘나’가 있는 그대로 이전과 이후가 아무런 다름이 없이 그대로 부처입니다. 화두도 내가들고, 망상도 내가 내고, 잠도 내가 잡니다 거짓된 나 자신과의 모든 싸움에서 이겨 참 나를 깨달아야 합니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일체의 생각들을 쉬고 一念에 들..
고요속에 밝음을... 세상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못 속입니다 “돈, 벼슬, 재주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3대 요소이지만 절에서는 자비와 지혜가 제일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는 십 시(十施)가 있는데 첫째는 법시(法施)라 하여 중생에게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둘째가 두려움을 없애주는 무애보시입니다 아픈 사람에게 약을 지어주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해 주는 것 물질로 하는 재시(財施), 밥을 해 준다거나 청소를 해주는 등 몸으로 하는 신시(身施) 눈으로 미소를 지어 주는 안시(眼施) 얼굴 가득 웃음을 지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안시(顔施) 편안한 자리를 내어 주는 좌시(坐施) 방을 내 주는 방시(房施), 좋은 말을 해주어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는 언시(言施)가 있어요 남에게 이익이 되고 깨우..
業(죄)은 외상도 에누리도 없다 업(죄)! 우리 중생들 사이에서 보기에 잘난 사람이건 못난 사람이건 많이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간에 인간은 누구에게나 부처님의 종자인 불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인류는 자비와 평등이라는 사상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우리 중생들은 한결같이 “잘 살게 해 달라”라고 기도합니다.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배부르고 몸편한것 입니까. 거기다가 맘도 편하면 더욱 좋겠고. 그러나 아닙니다. 잘 산다는 것은 인간의 완성인 성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는 “어서 성불하게 해 달라”는 기도여야 합니다. 어쩌면 세속과는 다른 출세간의 스님이나 하는 풀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이런 자세의 기도가 옳고 그름..
행복의 미혹에 빠지지 말고 놓아주기... 어느 정도 자기가 행복하다는 착각에 빠져야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진다 이것의 이유가 되고, 저것의 이유가 되어 자기도 모르는 어둡고 습습함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중량감에 동행해 버릴 때에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짓눌려 버리고 만다 가끔은 가벼운 깃털을 달고 자기만의 괄호를 치고 들어가 앉아 행복하다는 착각에 빠져 단순하게 살아내는 내가 되는 것도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알 수 없는 미혹으로 자꾸만 집어넣고 영원한 미로의 여행만을 행복이라고 치부하지 말어야 한다 현실 앞에서의 내 것을 남에게 내어주는 어리석음으로 불행에 빠져 있어야 할 겨를이 없다. 착각에 빠져 가끔은 내 것의 행복을 찾아낼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이 어떠하더라도 가끔은 착각의 여정을 떠날 필요가 있다.
因緣爵服 세상만사가 인연으로 생하고 인연으로 멸하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건만, 시간이 흐를수록 ‘복 중에서 가장 큰 복이 인연 작복’이라는 말이 참으로 실감 나게 다가온다. 좋은 인연, 그 말만 생각해도 온 천지가 싱그럽게 보이는 날 수행은 모두가 본래 부처임을 확인하는 것 수행 따로 생활 따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수행을 하면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일상과 수행이 둘이 아닌 이치를 저절로 터득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 안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불성(佛性)을 밖으로 드러내어 자유자재로 꺼내쓸 수 있는 힘이 길러집니다 수행의 힘을 생활 속에 무한히 쓸 수 있다는 말씀을 들으며 짐짓 관념적으로 다가왔던 선수행에 대한 이미지가 한순간에 타파된다 참선해서 깨친다는 말도 방편상 하는 말 수행은 우리..
사랑이라 하지요 모두 준다는 것이 사랑이라 하지요 베풀어 욕심 없는 것이 사랑이라 하지요 그렇게 간 님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을 사랑이라 하지요 돌아선 뒷모습이 차가워도 따스한 눈길로 떠나보내는 것이 사랑이라 하지요 지척에 두고 못 뵙는 님 피고 지는 잎새에 반백된 머리보고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도 사랑이라 하지요 정에 매어 속절없는 울음도 준비 없는 마음 여의고 기약 없이 떠난 허전함에 휘영청 밝은 달만 쳐다보며 우리는 사랑이라 하지요
大自然이 가르치는 공부 청옥빛 하늘. 바람 속을 걸어 산길을 오른다. 조붓한 산길을 걸으며 산 허리를 밟는다는 표현이 얼마나 적확한 표현이었나를 다시금 깨닫는다. 선이 진 얇은 허리처럼 산을 감고 돌아 돌아 정상으로 뻗친 길. 그 옆의 능선으로는 단풍나무 벚나무 등 이름도 알 수 없는 나무들과 대숲을 곁에 두고 길은 돌돌돌 흐르는 계곡물 소리 도란도란 이어져 어머니의 눈길처럼 정답다. 산길은 대개 그윽하고 좁아 성급한 사람을 거부하고 욕심 많은 사람을 거절한다. 산길은 또 조용하고 은밀해 수행자의 발걸음을 꼭 안고 가난한 연인들의 발길을 도닥여 준다.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산길에 이르러 그 길의 좁음에 산길을 떠나고, 성급한 사람은 그 길의 아득함에 다시 산을 버리고 돌아서기 일쑤다. 좁은 산길은 길을 느끼는 자에게만 가슴을 ..
빈 집 나의 주소록은 텅 비어 있다 나의 벗들은 주소를 가지고 있지 않음으로 이미 멀어진 벗들의 주소는 망각의 언덕에서 눈을 감고 새로운 벗들은 지상의 그림자 집을 지니고 있다 집을 가진다는 것은 자유를 잃는 다는 것일까 나의 도반들은 하늘에서 내리고 아득한 지평선으로부터 다가와 골의 숲을 울릴 뿐 옛날 나의 벗들이 구속의 신음소리를 낼 때 불현듯 떠올리던 그들의 문패 나의 주소는 아픔 속에서만 건져지고 구속의 틀 속에서만 유효한 것임을 벗들의 슬픈 눈동자는 알고 있었다 비벼 뜨는 눈 속에 아련히 박히는 문 그 들은 문패의 아침을 위하여 못처럼 박히는 자유의 봉쇄를 견뎌야만 했다 지금 나의 옛 벗들과 도반들은 주소가 없다 본시 가진 것이 없기에 달아야할 문패도 없이 내 텅빈 집의 주소록을 쉬었다 갈 뿐이다 _()_
노을진 강 어덕에서... 심천 강변에서..... 머나먼 여정의 노을 진 강 어덕 무심히 흐르는 금강의 깊은 물은 푸르른 자태를 눈가에 아르 거리게 한다 서산 노을은 아름다운 모습을 넓은 허공아래 너울지지만 오늘도 길 나서는 나그네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강 언덕에서 노을 벗 삼아 꿈꾸리라 길 떠난 나그네 길 사바의 긴 터널 속 멀기만 하구나 그러나 지고 가는 걸망은 왜 이리도 가벼운가 도도히 흐르는 깊은 강물 누가 보았는가 어허라 도반들아 은하수 푸른 물줄기를 맛보았는가 모두가 공이로다 공 인 세상이로다
수행의 실체 부처님께서는 중생제도를 위하여 49년동안 법문을 하셨는데 그 실체는 중생으로 하여금 수행을 통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아라한인 여래(如來)가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은 가아(假我)가 주체역할을 하는 중생이 수행을 통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인 진아(..
불법 모임은 깨지지 않는다 일이 적은 것을 즐겨하고 일 많은 것을 좋아하지 말며, 침묵하고, 잠을 적게 자고, 패거리를 만들어 잡담을 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칭찬하지 말고, 나쁜 사람을 멀리하고, 산이나 숲에서 한적하게 침묵하고 있는 것을 즐긴다. 여래에 대한 믿음이 있고, 자신의 죄를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
다라니 수행》 한국 불자들이 조석으로 외우는 《천수경》! 그 가운데, 불자들이 가장 널리 외우는 《천수경》의 핵심 진언(眞言: 주문) 신묘장구대다라니! 이를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다라니수행 관세음보살님이 설하신 이 신묘장구대다라니(천수대비주=대비주=천수다라니=대다라니)는 무량억겁전 천광왕정주여래께서 처음 수행을 시작한 초지(初地)의 관세음보살님과 일체 중생을 위하여 설하신 진언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수지독송 하게 되면, 보살 십지과위(十地果位)의 여러 단계를 차례로 거치지 않고, 즉시 본래의 마음자리에 들 수 있다, 빨리 오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보살의 모습으로 나투고 계시지만 이미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 전에 성불하신 부처님이십니다. 명호는 ‘정법명 여래’라고 하시고, 일체중생을 성숙시켜..